예능·드라마 '위문 → 풍자 → 리얼' 진화.. 군대는 변화했습니까?

안진용 기자 2021. 9. 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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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콘텐츠는 (위 사진부터 반시계?향으로)‘우정의 무대’와 같은 위문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유머의 소재로 풀어낸 ‘푸른거탑’, 하이퍼 리얼리즘을 앞세운 ‘D.P.’ 등으로 변모해왔다.

■ 화제의 드라마 ‘D.P.’로 본 軍콘텐츠 변화상

‘위문열차’ ‘우정의 무대’등

軍긍정기능 부각·위로 방점

병영문화 개선 여론 커지며

軍예능 초점, ‘풍자’로 이동

‘동작그만’ ‘푸른거탑’ 대표적

가혹행위·폭력 대물림·방관…

최근엔 ‘리얼리티’가 대세

“거기(수통)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1953,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군대를 소재로 삼은 넷플릭스 ‘D.P.’에서 조석봉 일병이 내뱉는 이 한마디는 군내 부조리를 바라보는 정서를 함축한다. ‘D.P.’의 배경은 2014년. 병사들이 휴대전화도 소지하는 지금은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D.P.’를 둘러싼 담론이 한창이던 지난 2일, 공군 병사 2명이 후임병에게 유사성행위를 강요하다 적발돼 징계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보도됐다. “공짜 왁싱을 해주겠다”며 후임병의 음모를 라이터로 지지고, 자위행위를 시키는 ‘D.P.’ 속 묘사가 과연 지나친 것일까? 하이퍼리얼리즘(극단적 사실주의)을 표방하는 ‘D.P.’는 ‘리얼’에 열광하는 MZ세대를 겨냥한 표현법인 동시에, 군내 부조리를 ‘방관자’의 문제로 바라보는 연출자의 의도를 담았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숱한 방관자들 =‘D.P.’ 속 가혹행위는 기수별로 선임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후임병을 괴롭히는 데서 시작된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다. 윤종빈 감독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에서는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전화 받는 예절을 가르치며 “관사 번호가 어떻게 되지? 너 내가 다 외우라고 했지? 뭘 외운 거야? 친구들 전화번호 외운 거야?”라며 손을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원활한 군 생활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무언가를 강요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진 폭력은 점차 그 수위를 높여간다.

군내 가혹행위와 부조리는 사회면 단골 뉴스다. 복무 기간이 짧아지고, 병사들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고, 월급이 올라도 끊이지 않는 화수분 같다. 왜일까? 이에 대해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은 6부의 제목인 ‘방관자들’로 답한다.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고 있다. 같은 내무실 병사뿐만 아니라 간부들도 인지하지만 침묵한다. 하지만 병사들은 “나도 당했으니까” 혹은 “제대할 때까지만 참자”는 속내고, 진급에 눈이 먼 간부들은 “시끄럽게 하지 말고”라며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한 감독은 “나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면서 입대한 세대다. 군부조리를 특정 누군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분명히 짚고 싶었다. ‘방관자들’이라는 제목은 교훈을 주기보다는, 누군가가 책임지고 바꾸려 한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감독은 “대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누구보다 착해 ‘간디’라 불리던 조 일병은 지속적인 가혹행위 속에 스스로 괴물이 된다. 선임의 괴롭힘 속에서 후임들에게 폭력을 가하다 결국 그 분노를 제대한 황장수 병장을 향해 터뜨린다. 황 병장을 납치한 조 일병은 “저한테 왜 그러셨습니까?”라고 물었고 겁에 질린 황 병장은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내가 고참 되면 모든 걸 바꿀 거야”라던 이승영이 정작 선임병이 된 후 똑같이 가해자가 되는 ‘용서받지 못한 자’와 일맥상통한다.

한 감독은 “‘나도 군대에 있을 때 방관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면서 “슬프지만 인간사에는 폭력이 만연해 있다. 다만 어떻게 해야 조금이나마 더 나아질 것인가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軍 콘텐츠, 긍정과 부정 사이 = 대다수의 대한민국 남성이 군대를 경험하고, 여성들도 그들의 가족·친구로서 간접적으로 군대를 접한다. 게다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특성상 6·25 이후 군대는 항상 미디어의 주요 콘텐츠였다. 그 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위문 혹은 풍자다. 1961년 10월 포문을 연 국내 최초 군대 콘텐츠인 국방TV 음악 프로그램 ‘위문열차’를 비롯해 MBC ‘우정의 무대’(1989)와 KBS 1TV ‘TV 내무반 신고합니다’(1998) 등은 위문에 초점을 맞춘다. 군대의 긍정적 기능을 부각하며 노고를 위로했다.

경직된 병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면서 군대 예능의 초점은 풍자로 옮겨 갔다. KBS 2TV ‘유머1번지’의 코너 ‘동작 그만’이 대표적이다. 군대 내무반에서 벌어질 법한 일을 과장된 대사와 몸짓으로 그린 이 코너는 2004년 ‘개그콘서트’에서 부활하기도 했다. 2013∼2014년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의 군대 시트콤 ‘푸른거탑’ 역시 군 생활을 코믹하게 비틀어 주목받았다.

이후 ‘리얼’한 관찰 예능이 인기를 얻으며 군대 예능도 다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육군본부의 지원을 받은 MBC ‘진짜 사나이’는 연예인들이 실제 부대에 입대해 훈련받는 과정을 보여주며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로 패러디됐고, 시즌당 5000만 회가 넘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올해는 전·현직 특수부대원들의 경쟁을 다룬 채널A ‘강철부대’가 관심을 모았다. ‘가짜 사나이’의 경우 가혹행위가 강조되며 ‘밀리터리 포르노’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D.P.’가 공개된 후에는 “실제 군 생활이 더 참혹하다”는 반응이 뒤늦게 나오는 모양새다.

군대의 부정적인 면만 지나치게 강조된다는 우려도 있다. ‘D.P.’ 속에도 잘못을 바로잡아가려는 안준호 이병, 한호열 상병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전우애도 강조된다. ‘푸른거탑’ 역시 “어머니 뵙는데 깨끗하게 다려진 옷 입고 나가야지”라며 첫 휴가 가는 신병을 챙기는 분대원과 “대대장이건, 국방부 장관이건 다 연락해라. 내 새끼들 다치는 꼴 절대 못 본다”는 행정보급관의 모습이 명장면으로 꼽히곤 한다. 군대가 갖는 긍정적 요소가 분명한데,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되면서 인식이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수긍이 간다.

이재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은 “군대라는 소재는 전형화하기 쉬운 아이템일 수 있다. 군대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그리는 것도 하나의 오류일 수 있다”면서 “전형적인 담론 방식을 택하기 이전에 인간과 사회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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