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전까지, 평양역은 '국제역'이었다"

2021. 9. 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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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평화통일시민강좌 퇴근 후 학교] 진천규 통일TV 대표
[황남순 평화통일시민행동 사무국장]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2021평화통일시민강좌 퇴근 후 학교'를 연재합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는 평화통일시민강좌는 북한바로알기, 평화와 통일의 걸림돌, 통일방법론을 주제로 4월 15일부터 12월 16일까지 매월 세번째주 목요일 저녁 7시반, 6.15남북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회의실에서 진행됩니다.

아래는 지난 8월 19일 "직접 가본 북녘"을 주제로 진행된 진천규 통일TV대표 강의의 주요 내용입니다.

저는 2017년 10월부터 코로나로 북측의 국경이 폐쇄되기까지 18번 방북취재를 했습니다. 2010년 5.24 조치 이후 남측 민간인의 방북은 불허되고 있지만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저는 5.24조치에 구애받지 않고 방북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북측 사람들을 만나거나 이메일 혹은 전화를 하려면 사전에 통일부에 신청을 해서 허가를 받아야 됩니다. 정부는 허가를 내줄 수도 있고 안 내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북측을 방문하려면 북측 초청장을 포함한 여러 가지 서류를 제출하여 통일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해외 동포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생략됩니다. 방북 전에 사전신고를 하거나 바쁘면 사후신고를 해도 됩니다.

저는 제3국의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덕에 대한민국 분들이 쉽게 가지 못하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남미나 아프리카보다도 가기 어려운 북측을 다녀왔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저는 청와대 출입기자로 정상회담 수행취재를 위해 방북을 하였습니다. 6월 14일 저녁 8시 평양시 목란관에서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동선언을 구두로 합의하고 그냥 박수만 치고 끝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청해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맞잡은 두손을 들어올리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진 촬영이 끝나니 "기자 선생, 우리 출연료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2017년 10월 개인 자격으로의 첫 방북취재를 성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김대중(왼쪽)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양역은 국제역이었다

2017년 10월 방북때는 중국 단둥에서 기차를 타고 갔고 그 뒤로는 션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들어갔습니다. 코로나 발생 이전까지 션양에서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는 주 4회 왕복 운항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인천행 비행기 표를 끊고 인천으로 들어와서 제주도나 설악산도 가고 서울에서 경제활동도 하는 것처럼 평양행 비행기 표를 끊으면 일단 평양으로 들어가서 금강산도 가고 개성도 가고 판문점도 가고 하면서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대한민국 사람과 미국 시민권자(미국은 2017년부터 미국시민권자의 조선여행을 금지시켰다. 단 영주권자는 제외되어 방북이 가능하다), 일본사람들만 북축 여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못가니 북측을 폐쇄국가나 은둔국가로 아는 경우들이 많은데 코로나 이전인 2019년까지 200개 나라 100만 명이 북측을 다녀왔습니다. 대한민국만 섬 아닌 섬으로 갇혀 있습니다. 평양역은 국제역이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월 6회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운행되었습니다.

말이 통하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평양 공항에 내리면 반가운 우리 글들이 보입니다. 우리는 한글이라 하고 북에서는 조선말이라고 합니다.

2017년 10월과 11월 두 차례 방북 취재로 수천 장의 사진과 수십 시간의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그 이후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저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요. 첫 번째 질문이 2000년 방북 때와 비교했을 때 2017년의 평양은 무엇이 가장 크게 변화했는가였습니다. 저는 깜짝 놀랄 정도로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많아졌다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방북을 해서 좋았던 점이 무엇이었는가였습니다. 저는 "첫째는 말이 통해서 좋았습니다. 두 번째는 음식이 입에 맞고 아주 맛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남과 북은 조금 세월이 흘러서 달라진 말 몇 개가 있습니다. 오징어를 낙지로 한다거나 야채를 남새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말로 무슨 뜻인지 물어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말로 대답을 해줍니다. 말이 잘 통합니다.

말이 통하는 걸 뼛속까지 느낀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북의 정상들인데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이 70년 동안 갈라져 살아왔지만 만나보니 우리는 같은 핏줄, 한 민족임을 뼛속까지 느끼셨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멀지 않은 시기에 북녘땅에 가게 되면 말이 통하는 것에 깜짝 놀랄 것입니다.

▲ 진천규 통일TV대표 ⓒ평화통일시민행동

남북을 막론하고 택시를 타는 이유

제가 평양에 갔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 중에 하나가 택시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앞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란봉공원에 갈 때 택시를 이용했었는데요, 우리가 남산공원에서 택시를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처럼 모란봉공원에도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혹자는 북녘사람들이 월급을 얼마나 받는다고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이용하겠느냐, 외국인이나 특권층이 택시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제가 평양에서 택시를 탔을 때 물어봤습니다.

"기사선생, 이 택시는 하루에 몇명이나 탑니까"

"하루에 40-50명 봉사를 합니다."

"누가 택시를 탑니까?"

"첫번째로는 몸이 불편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힘든 사람들이 택시를 탑니다. 두번째는 짐 보따리가 많은 사람들이 타고 세번째는 다른 도시에서 와서 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탑니다. 네번째로는 바쁜 사람들이 탑니다."

우리와 똑같습니다. 택시는 북측에서 대중교통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북측의 아이들과 학생들을 취재하기 위해 직접 학교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유치원부터 소학교, 초급, 고급 중학교, 대학교까지 본관에는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구호가 적혀 있습니다.

▲ 선교초급중학교 본관 건물에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구호가 눈에 띈다. 북의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다. ⓒ진천규 통일TV 대표

제가 북녘의 유치원이나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선생님이나 학생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러면 학교측에서는 미리 조직을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기관을 갈 때에도 예약을 하고 취재 허락이 있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냥 가서 사진 찍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학교측에서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도 학교에 취재를 위해 기자들이 온다고 하면 옷도 깔끔하게 차려입고 청소도 더 하고 누가 인터뷰를 할지 미리 정해놓지 않습니까. 그래서 북측에서 찍어온 영상을 보고도 '저거 다 연출 된 거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편향된 인식일 뿐입니다.

▲ 유치원 복도에 조선반도(한반도) 지도가 붙어있다. 용맹스런 호랑이 형상이 눈에 띄고, 서울과 제주도는 물론 울릉도와 독도가 또렷이 표기돼 있다. ⓒ진천규 통일TV대표

제가 소학교 교실을 방문했을 때 놀랬던 것 중에 하나가 '한반도 지도'였습니다. 지도를 보니 제주도는 말할 것도 없고 독도와 울릉도, 광역시가 다 표시되어 있습니다. 휴전선 북쪽만의 지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의 지리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또한 소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졸업하는 5학년 때까지 그대로 계속 담임선생님을 하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5년 간 보아온 아이들의 특징과 장단점을 잘 알고 나중에 부모들과 함께 진로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당시 3학년 국어수업을 하던 교실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학생의 노트를 소개시켜 주고 싶습니다. 5월 4일 개학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가 3학년이 되는 날. 나의 마음은 나는 새라도 된 듯 더없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은 남북을 막론하고 모두 맑고 명랑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전교생이 업간체조(수업 중간 체조)를 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줄서서 음악에 맞추어 체조를 하며 나른함을 이겨내는데요, 이것은 직장에서도 점심시간마다 진행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체조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신나고 재미있습니다.

중2 여학생의 당당한 요구, "얼굴 찍지 마세요"

제가 학생들 지나가는 길에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학생들이 제게 와서 자기네 허락 없이 왜 사진을 찍었냐며 삭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제가 아주 혼났습니다. 곁에 있던 안내원 선생이 제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진선생님, 우리 공화국에서는 이 사진에 민감합니다. 진선생님은 누가 봐도 남조선 기자로 알지 않겠습니까? 남조선 기자들에 대해서 우리 아이들조차 아주 불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기자들이 북에 와서 본 장면들을 왜곡하고 비틀어서 기사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억울한 부분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남쪽 기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건물 유리창이 깨지면 다시 이사 가기 전에 비닐로 막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사진을 찍어가서 북측의 건물들이 다 낡고 형편없다고 보도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사진 찍는 것에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30년 기자생활 하면서 객관적인 보도를 하려고 노력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북측에도 어렵고 힘들고 누추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의 북측 모습을 아직도 자료사진으로 쓰면서 북측의 어렵고 힘든 모습이 강조되는 기사들을 많이 봐았습니다. 저는 그런 시각에서 탈피해서 보편타당하고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합니다.

북녘의 스마트폰과 택시가 많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그 무슨 북에 대한 체제선전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정치, 군사 등의 복잡한 내용보다 학교생활은 어떠한지, 북녘 사람들은 결혼식은 어떻게 하는지, 피로연에는 무엇을 먹는지, 그리고 휴일은 어떻게 보내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남측의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습니다.

안방에서 TV로 보는 통일TV

그래서 안방에서 보는 250개 채널 중에 하나로 통일TV를 등록하고 개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창>이나 <통일전망대>는 일주일에 한번 <조선중앙TV>의 일부 내용을 정리해서 보여주는데요, 통일TV에서는 매일 브리핑을 하려고 합니다. 또한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되는 자연다큐멘터리나 문화, 음식프로그램, 역사드라마, 관광프로그램 등등을 소개시켜 줄 계획입니다.

탈북자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저는 그래도 취할만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북에서 남쪽의 드라마를 보고 노래도 들었다'입니다. 남측의 드라마나 가수, 배우들이 북에서 아주 인기가 많다는 기사는 여러 번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측사람들이 북측의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북측 사회에 대해 아는 것보다 어쩌면 북측 사람들이 남측사회를 더 많이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북측이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북측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남녘은 통일해서 같이 잘 살아야 할 한 동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방송만이라도 남북교류를 통해서 북녘을 정확하게 알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측이 한 몇가지 부탁, 특종거리도 아닌데 안들어 줄 이유가 없어

<JTBC>와 인터뷰를 할 때 손석희 앵커가 북측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니 자유롭게 찍은 것 같던데 검열은 없었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질문했습니다. 저는 자신있게 "수천 장의 사진과 수십시간의 동영상중에서 단 한장의 사진과 일초의 동영상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대신 몇가지 부탁이 있었습니다.

▲ 만수대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서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와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진천규 통일TV 대표

우리와 정치 체제가 다른 북측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장군을 매우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만수대언덕에는 거대 동상이 있고 거리에도 두 지도자의 사진들이 있습니다. 북에서 두 지도자의 동상이나 사진들을 찍어서 내보내 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습니다.

관광객들이 자기 위주로 사진을 찍다 보면 두 지도자의 동상사진들이 완전히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오히려 찍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찍었을 때에는 어딘가가 짤리지 않고 완전하게 내보내 달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군인들과 군부대사진들은 촬영 금지입니다. 이것은 남측이나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엄벌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간곡한 부탁인데요, 나이 드신 분들이 머리에 짐을 이고 가거나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 등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사진들은 찍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진들이 뭐 대단한 특종도 아니니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황남순 평화통일시민행동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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