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인터뷰 >오주한 "도쿄선 마라톤 결승선 통과 못했지만.. 3년후 韓에 금메달 안길 것"

박현수 기자 2021. 9. 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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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선수는 별세한 오창석 감독과 관련한 질문을 하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다 말을 이어 갔다. 그는 “‘꼭 우승해 메달을 감독님 영전에 바치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쉽게도 목표대로 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열심히 훈련해 다음 경기에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곽성호기자
지난달 24일 충남 청양군 ‘오주한 캠프’ 입구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는 오주한 선수. 그는 “마라톤 메달의 꿈을 도쿄에선 이루지 못했지만 내년 항저우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올림픽 시상식장에 반드시 대한민국 태극기를 올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고 말했다. 곽성호 기자
오주한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승리의 태극마크 팔찌를 훈련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늘 차고 다닌다”고 했다.곽성호 기자

■ 케냐 출신 귀화 마라토너 오주한

황영조·이봉주 잇는 ‘유망주’

이름 의미도 ‘韓 위해 달린다’

삿포로 레이스 13㎞ 지점서

허벅지 통증 느껴 중도 포기

“응원해준 국민께 송구한 마음”

태극마크 달게한 오창석 감독

올림픽 석달 앞두고 세상떠나

“메달로 보답하고 싶었는데…”

“韓은 내삶 바꿔준 고마운 나라

마라톤 강국 되도록 기여할것”

청양 = 박현수 기자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은메달을 딴 ‘국민 마라토너’ 황영조·이봉주에 이어 25년 만의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케냐 출신 다문화인 오주한(33·청양군청·케냐명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이 도쿄올림픽에서 허벅지 통증으로 기권한 것에 국민의 반응은 싸늘했다. 2000년 이봉주가 세운 한국신기록(2시간7분20초)보다 2분7초 빠른 기록(2시간5분13초)으로 우승한 2016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를 비롯해 국내외 8개 국제대회를 석권한 세계 정상급 선수이기에 더욱 그랬다.

반면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4관왕을 차지한 미국의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24)가 도쿄올림픽에서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4개 종목 중 한 종목만 뛰고 나머지 경기를 포기하자 대부분 언론과 팬은 “용기 있는 기권”이라며 지지했다. 바일스는 “온 세상의 무게가 내 어깨에 얹어진 것 같았다”며 올림픽이 주는 중압감에 크게 흔들렸다고 했다. 팬들은 선수의 기록과 결과보다 선수 내면의 목소리를 더 높이 평가한 것이다.

지난달 8일 도쿄올림픽 폐막식 날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마라톤 경기에서 초반 선두 그룹에 포함돼 순조롭게 레이스를 펼쳤던 오주한 선수가 레이스 도중 기권하자 국민은 크게 아쉬워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투혼의 완주를 기대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중계방송을 하던 MBC 윤여춘 해설위원이 “찬물을 끼얹었다”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방송을 지켜본 사람 중엔 ‘오주한이 살이 쪄 보인다. 훈련을 제대로 안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래서 귀국 후 14일간 격리생활을 마친 지난달 24일 오주한 선수를 만나러 충남 청양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는 키 178㎝에 체중 63㎏의 마른 체형이었다. TV 화면 퍼짐 현상으로 살이 쪄 보였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춘천마라톤에서 네 차례나 우승한 엘리자 무타이(43) 코치와 오임석(50) 청양군청 마라톤 트레이너 도움으로 케냐어와 영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진행됐다. 우선 도쿄올림픽에서 기권을 결정한 배경이 궁금했다.

―메달을 기대했던 국민이 오주한 선수가 도중 기권한 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했다.

“컨디션도 매우 좋았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레이스 도중 13㎞ 지점에서 왼쪽 허벅지 통증을 느껴 어쩔 수 없이 잠시 멈춰 좋아지기를 바라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바로 달렸으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져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저를 받아주고 사랑을 보내준 대한민국 국민께 정말 송구한 마음뿐이다.”

―대회 전부터 부상이 있었나.

“케냐에서 전지훈련할 때는 부상이 없었다. 대회 9일 전 삿포로에 도착한 후 연습 도중 약간 이상 증세가 있었다. 대회 이틀 전에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에 통증을 느꼈고 곧바로 김재룡 국가대표 감독에게 말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마라톤도 늘 크고 작은 부상을 피할 수는 없다. 삿포로 날씨가 너무 덥고 습해서 연습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물론 모든 선수가 다 같은 조건이었지만 유독 나에게 불행이 따라온 것 같다.”

오주한은 통증을 참고 계속 달려 더 큰 부상으로 키우기보다 올림픽 이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일보 후퇴하는 쪽을 택했다고 했다. 그의 감독이자 ‘한국 아버지’인 고(故) 오창석 당시 백석대 교수가 올림픽을 불과 3개월 앞둔 지난 5월 5일 갑자기 별세한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오창석 감독 별세로 케냐에서 훈련할 때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다 말을 이어 갔다.) 감독님의 별세 소식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고 매우 힘들었다. 훈련에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올림픽 경기까지는 시간이 있었고, ‘오직 올림픽 우승만 생각하면서 열심히 훈련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감독님의 평소 말씀을 떠올리면서 훈련에만 집중했다. ‘꼭 우승해 메달을 감독님 영전에 바치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쉽게도 목표대로 되지 않았다. 마음이 몹시 아프지만, 앞으로의 경기에 집중할 작정이다. 열심히 훈련해 다음 경기에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오 감독은 지난해 1월 오주한과 전지훈련을 위해 케냐로 출국했다가 비자 만료로 지난 4월 11일 일시 귀국했다. 당시 열이 있어 감기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으나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알려졌고 그게 폐렴으로 악화되면서 60세를 일기로 그만 세상을 떠났다.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를 앞두고 선수에게 3개월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는 오 감독을 잃은 상실감으로 훈련에 차질이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설상가상 막바지 훈련 기간 중 오 감독 부재로 인해 훈련비 지급이 중단돼 재정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강화훈련 운영지침에 따르면 ‘강화훈련 기간 지도자는 선수와 함께해야 한다’고 돼 있다. 대한체육회는 이 규정에 따라 훈련비 지급을 중단한 것이다. 케냐 현지에서는 현금을 주지 않으면 스태프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훈련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감독은 별세하고 훈련비는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김재룡 감독이 케냐로 급파된 것은 지난 6월 15일. 오주한은 마음을 다잡고 연습에 몰두했지만, 최고의 컨디션 회복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25년 만의 메달 획득 기대감은 큰 중압감으로 그를 짓눌렀다.

―오 감독은 어떤 지도자였나.

“감독님은 리더십이 매우 뛰어난 전문적인 지도자셨다. 저를 선택해 짧은 훈련 기간에 국제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고, 마라톤을 정말 사랑하고 마라톤에 헌신하신 분이다. 모든 면에서 저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제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해 주신 매우 친절한 분이고, 제게 동기부여도 계속 해주셨다. 케냐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훈련이 끝나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다. 그래서 희망을 갖게 됐고 꿈도 꿀 수 있었다. 평생 그리워할 것이다.”

오주한과 고인은 부자지간 이상의 관계를 유지했다. 오 감독은 자신의 성을 따고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 주한(走韓)도 지어줬다. 청양 오씨 시조가 된 것이다.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한데, 한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어떤가.

“한국과의 인연은 정말 특별하다. 첫 번째가 오 감독님을 만난 것이고, 두 번째는 저도 간절하게 바랐던 귀화를 한 것이다. 지금까지 8번의 국제대회 우승 가운데 7번이 한국에서였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한국 음식도 입에 잘 맞는다. 불고기, 김치찌개,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다. 한국은 제 삶을 바꿔준 고마운 나라다.”

오주한은 기초적인 한국어 대화와 애국가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애국가를 불러보라고 하자 발음은 어눌했지만 힘찬 목소리로 거뜬히 불렀다.

―가족은 케냐에 살고 있는데, 한국에 와서 함께 살 생각은 없나.

“아내와 아들, 딸 등 우리 가족들은 오 감독님 말씀대로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 한국으로 이주하려고 계획했지만, 감독님의 부재와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서 지켜보는 중이다. 감독님 가족들과 이주 시점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상의하고 있다.”

오 감독은 오주한 가족이 한국 이주 시 함께 살 수 있도록 청양에 있는 현재 캠프 내에 별도의 방도 마련해 놓았다.

―마라톤을 잘하는 비결은.

“마라톤은 끊임없는 트레이닝이 중요하다. 그리고 좋은 코치와 훈련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

“오는 10월 8일 경북 구미시에서 열리는 2021년 전국체전에서 1만m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 9월에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각종 국제마라톤대회, 2024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한국에 바치도록 노력할 각오다. 또 은퇴 후에는 마라톤 침체기에 있는 한국이 마라톤 강국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고, 한국 선수들을 돕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도쿄올림픽은 어느 마라톤 대회보다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대회였다. 오 감독님께 금메달을 꼭 바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긴장했는지 배번 이름도 거꾸로 붙이고 달렸다. 비록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했지만, 앞으로 계속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셨으면 한다. 시상식장에 반드시 대한민국 태극기를 올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

오주한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여 훈련하고 있는 케냐 훈련센터에서 훈련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육상경기연맹, 청양군의 안정적인 지원과 다문화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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