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공공임대.. 가족과 살기엔 좁고 서울과도 대부분 멀어

정순우 기자 2021. 9. 3.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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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공실률.. 실수요자 왜 등돌렸나

30대 주부 윤모씨는 지난해 경기도 한 행복주택에 당첨됐지만 계약을 포기했다. 그가 당첨된 집은 전용면적 37㎡(공급면적 15평형)로 방 1개와 거실, 주방과 화장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윤씨는 “시세보다 저렴해서 일단 신청했는데 평면도를 보니 아기는커녕 남편과 둘이 살기에도 불편해 보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1일 경기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인 동탄 공공임대주택에서 살고 싶은 임대주택 현장점검에 나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인 변창흠 LH사장과 함께 단층 세대 시찰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 임대주택 공급이 대폭 늘었지만, 정작 무주택 실수요자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을 외면하고 있다. 수요자들은 내 집이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넓고 쾌적한 주거 시설을 원하는데, 정부는 ‘최저 주거 기준’이라는 낡은 규정에 맞춰 전용면적 40㎡(공급면적 17평형) 미만의 집을 대량으로 공급했기 때문이다.

◇작년 공급된 공공 임대 17%가 빈집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공공 임대주택 102만5316가구 중 4만1811가구(4.1%)가 비어 있다. 3년 전(2%)보다 공실률이 배로 늘었다. 2019년 LH가 공급한 공공 임대 7만6543가구 중 6144가구(8%)가 올해 5월까지 빈집으로 남아있다. 작년에 공급된 7만2349가구 중 아직 입주자를 못 구한 집은 1만2029가구(16.6%)에 달한다. 국토교통부는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의 수요가 저조했고 코로나로 입주자 모집 절차가 지연된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 임대주택 공실이 늘어난 이유는 다양하다. 화성, 파주 등 입지가 수도권 외곽인 경우가 많아 민간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임대주택에 대한 기피 심리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좁은 공간’이다. 신혼부부·사회초년생 등 청년층에게 공급하는 공공 임대 ‘행복주택’의 경우, 지난해 전체 물량(6만7711가구)의 97%(6만5760가구)가 전용 40㎡ 미만이다. 사실상 원룸인 전용 30㎡ 미만인 집도 전체의 63%(4만2937가구)에 달한다. 행복주택 공실 자료를 보면, 전용 40~50㎡는 2%로 빈집이 거의 없지만, 전용 10~20㎡는 12.5%에 달한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전체 공공 임대주택에서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전용 60㎡(공급 25평형) 이상 주택은 11.6%에 불과하다. 임대주택 면적은 정부에서 정한 ‘최저 주거 기준’을 기준으로 책정되는데, 4인 가족 최저 주거 기준은 전용 43㎡로 부동산 시장에서 ‘국민 평형’으로 꼽히는 전용 84㎡의 절반 정도다. 현행 최저 주거 기준은 2011년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그대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국민이 원하는 주거 눈높이에 맞추려면 최저 주거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며 “공공 임대주택을 아무리 많이 지어도 질적 개선 없이는 공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규제 풀고 민간 역량 활용해야

전문가들은 공공 임대주택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민간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규제 완화, 인센티브 등을 활용해 민간의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고 늘어나는 주택 일부를 공공 임대로 확보하자는 것이다.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수요자 눈높이에 맞는 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어 훨씬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민간 역량을 활용한 공공 임대의 대표적 사례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과거 재임 시절이던 2007년 도입한 ‘장기전세주택’이 있다. 서울 도심의 재건축·재개발 아파트에 용적률 완화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일부를 기부채납받아 무주택 서민에게 시세보다 20% 이상 저렴하게 제공한다. 민간 아파트와 같은 수준의 임대주택이어서 수요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기업형 임대주택 ‘뉴스테이’도 양질의 임대주택이란 평가를 받는다. 민간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어 8년간 임대하다가 분양하는 방식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뉴스테이가 폐지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공공 지원 민간 임대주택’으로 이름을 바꾼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공공성 요건이 강화된 탓에 기업들의 참여는 저조하다.

정부는 지난해 ‘11·19 전세 대책’으로 전용 60~85㎡ 중형 임대주택 6만3000가구를 2025년까지 공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파트는 없고 빌라, 오피스텔 중심이어서 시장 수요를 충족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아파트에 버금가는 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면 전세난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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