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빌트 워크(built work)이어야 하는가?' 건축가 임동우(下)

효효 2021. 9. 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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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96] 도시에 대한 이해는 세밀히 작은 스케일, 넓은 시야로 보는 등 다양한 레벨에서의 관찰이 필요하다. 'MINI-MICRO-NANO'는 인프라나 공간 구조가 마이크로 스케일의 요소들과 함께 이야기될 때 도시는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건물 밖으로 나온 덕트, 에어컨, 중간중간 보이는 교회 첨탑 등을 주제로 하는 부가적 리서치를 말한다.

MINI-MICRO-NANO / 사진제공 = PRAUD
프로젝트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지어진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PROJECTIVE REALITY', 종종 건축 프로젝트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드로잉이나 렌더링, 혹은 상상력 자체이기도 하다는 주장이다.

프로젝트는 지금의 구축 환경에 새로운 레이어를 얹는 과정이다. 프로젝트는 도시적 맥락, 역사, 문화 등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수렴의 가치는 종종 드로잉이나 렌더링, 기타의 표현 방식으로 나타난 상상력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PRAUD에게 프로젝트란 물리적인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통의 수단을 실험하는 과정이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대중, 전문 집단들과의 대화를 생성해낸다. PRAUD는 전시나 출판, 강연 등을 통해 그들의 건축, 도시, 디자인에 대한 내레이션을 공유해 리서치를 발전시킨다. 전시나 출판은 건축 프로젝트가 담아낼 수 있는 이상의 것들을 설명해준다고 본다. 이 구성화된 내레이션 'CONSTRUCTED NARRATIVES'는 대중과의 소통 사이에서 새로운 상호작용을 만들어낸다.

임동우는 출판물을 통해 학생들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베끼는 차원에서 벗어나 프로젝트의 차이를 다이어그램(diagram) 작업 등을 통해 체득하기를 바란다. "동서를 불문하고 건축 교육의 전근대성은 존재한다. 교육이 도제 관계로 이루어져 전수 문화가 있다. 예전에 비해 상향 평준화되었으나 인증제로 인해 학교별 특징이 사라지고 있다."

임동우가 대학원을 나온 미국의 역사 도시 보스턴에도 프라우드의 작품이 있다. 450㎡ 대지에 완공한 3층 다가구주택 'EEgress House'(2018년)는 통념의 경계를 넘는다. 건물은 반드시 출입(egress) 계단을 2곳 마련해야 하는 법규를 적극 활용해 이왕 만들어야 하는 기능적 요소인 계단을 건물의 얼굴로 내세워 형태적 요소로 활용했다.

EEgress House / 사진제공 = PRAUD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도 귀가할 때는 '독립적인 내 집 현관'에 들어서길 원한다. 2층 거주자용 계단 출입구는 서쪽에, 3층 거주자의 계단 출입구는 동쪽에 내고 각각 한 층 아래에서 '내 집 현관'의 느낌을 경험한 뒤 올라오도록 설계했다."

계단 하부 얼개는 건물 전면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 부분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칠했다. 기능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이 건물의 형태적 차별성을 높이는 요소로도 작용하였다. 임동우는 "공간 시스템을 새롭게 구성하는 데 집중하면서 그 결과가 형태적 요소로 연결되도록 하는 접근법"이라고 했다.

전남 순천시 신청사는 총사업비 1800억원을 들여 장천동 현 청사 용지를 동쪽으로 확장해 대지면적 2만6758㎡, 연면적 4만7000㎡,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로 건립할 예정이다. 청사 외부에는 중앙공원을 비롯해 6개의 작은 공간이 꾸며지고, 내부에는 북카페, 다목적 강당 등 시민이 자유롭게 즐기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과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사무공간을 마련한다.

순천의로 조감도 / 사진제공 = PRAUD
프라우드의 공모 당선작 '순천의로(順天의路)'는 정원의 도시 순천의 이름에 걸맞게 청사 안에 6개의 중정과 옥상정원, 곳곳에 포켓 정원을 품고 있다. '순천의로'는 도시를 이루는 길을 청사 내로 끌어들여 주변과 어우러지면서 원도심과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구성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윤승현 심사위원장은 "어번 매트(urban mat)라는 개념을 제안해 시민의 활동을 담을 수 있는 열린 청사를 구상했고, 이러한 공간의 활동이 실내까지 확장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순천 지평'이라는 지역 프로젝트에 지명을 자의적으로 붙인 '어번 매트' 공간이 청사 용지 전체를 감싸고 있다. 원도심 도시 경관의 지평이 되는 지점에 여러 공간을 평평한 매트 형식의 길을 통해 연결하여 도시의 소통 공간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순천 원도심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원도심 건물들은 대부분 저층으로 밀도 있게 배치되어 경관을 형성한다. 주변 건물의 경관 속에 녹아들어 가는 듯 신청사의 낮은 건물들을 배치하고, 그 사이로 정원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의 공간을 담았다.

'순천의로'는 리처드 마이어의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Museu d'Art Contemporani de Barcelona·1987~1995)의 배치를 연상케 한다. 미술관은 주민들의 주거 지역인 라발(El Raval)에 위치한다. 반면 건축적 형태는 미술관 전면 광장이 라발 지구의 촘촘한 거주 구조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어 많이 다르다.

순천시청 메인 로비 / 사진제공= PRAUD

임동우는 '건축(architecture)이 빌트 워크(built work)이어야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시한다. 예를 드는 게 1988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에서 가진 '구성적 해체주의 건축' 전시 내용과 참여했던 이들의 면면을 든다.

필립 존슨(1906~2005)과 마크 위글리가 공동으로 기획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한 전시에 피터 아이젠먼(1932~ ), 베르나르 추미(1944~ ), 프랭크 게리(1929~ ), 자하 하디드(1950~2016)), 쿱 힘멜브라우그룹, 렘 쿨하스(1944~ ), 대니얼 리버스킨드(1946~ ) 등 건축가 7인의 10가지 작품을 모델과 계획안으로 전시하였다. 이들 건축가 모두 2000년대 신자본주의 시대의 '스타 건축가'가 되었다.

전시회 이후 이러한 경향의 건축을 '해체주의(Deconsructivism)'라 불렀다. 전시회에 출품한 팀 중 프랭크 게리(1989년), 렘 쿨하스(2000년), 자하 하디드(2004년)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쿱 힘멜브라우, 피터 아이젠먼, 대니얼 리버스킨드, 베르나르 추미 등 4팀도 자신들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이에 훨씬 앞서, 아이젠먼은 건축의 형태를 카테시안 건축(Cartesian Architecture)에서 해방시킨다는 생각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던 유럽 출신의 추미, 리버스킨드, 렘 쿨하스와 해체주의 건축 요람인 IAUS(Institute for Architecture and Urban Studies)를 만들어 활동한다. 추미는 아이젠먼의 친구인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지원을 받아 1982년 프랑스 파리 라 빌레(La Villette) 공원 설계 공모에 당선되어 이름을 알린다. 리버스킨드는 리처드 마이어의 사무실에서 잠깐 일했고 아이젠먼의 IAUS에도 잠시 머물렀다.

영국 AA(Architectural Association)에서 공부를 시작한 렘 쿨하스는 IAUS에서 객원교수로 머무르며 '정신나간 뉴욕(Delirious New York·1978)'을 집필하였다. 이 책을 통해 메트로폴리스 맨해튼의 건축과 도시를 논하면서 모더니즘의 기능성과 프로그램, 카테시안 건축에 이의를 제기한다. 자신이 만든 로테르담의 OMA에서 AA 제자인 자하 하디드와 같이 일한다.

하디드는 AA에서 강의한 추미를 만나기도 했다. 데리다의 후기구조주의 철학 이론을 앞세운 해체주의 추종자들은 새로운 형태와 공간(form and space)은 모더니즘을 해체해야 발견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렇듯 AA에서 공부한 하디드의 주변에는 해체주의 추종자들이 늘 배회하고 있었다. 전시 후 28년이 지난 2006년 모마가 '자하 하디드: 건축가로서의 30년'전을 선보였다.

해체주의 수장 피터 아이젠먼는 바우하우스 운동을 주도했던 발터 그로피우스의 건축가협동체(TAC)에서 1957년부터 활동했다. 1970년대 초 카드보드(cardboard) 아키텍처로 학문적 관심을 끌면서 마이클 그레이브스 등 뉴욕의 젊은 건축가 그룹인 뉴욕 파이브(New York Five)에 잠시 참여한 후 결별한다. House Ⅰ, Ⅱ, Ⅲ, Ⅳ, Ⅹ 등 실험적 주택과 건축 이론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건축 이론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0년대 이후 아이젠먼은 새로운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명성에 비해 작품 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실무 건축가이면서 학자와 이론가로서의 연구 활동에 주력했다.

서양 사상의 형이상학과 구조주의를 로고스에 의지하면서도 비판·해체하려 한 데리다의 태도를 '해체주의'라고 했다. 데리다의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 '해체주의 건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필립 존슨도 당시 전시회 카탈로그 서문에서 해체주의 건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에 대한 해체주의적 현상과 그에 대한 해석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쿱 힘멜브라우는 1968년 울프 디터 프릭스, 헬무트 스비친스키, 미하엘 홀처가 오스트리아 빈에 설립해 독일 영국 미국 중국 등에 지사를 두고 건축, 도시계획, 디자인, 미술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디자인 회사이다.

1988년 해체주의 전시는 사건이자 계기였을뿐 IAUS와 AA스쿨이 이들 건축가 중심으로 뭉칠 수 있게 해주었다.

임동우는 당시 이들은 기획자, 이론가, 페이퍼 건축가, 실무 건축가들이었으나 이후 다들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명실상부한 건축가이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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