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단속나선 北.. 옷차림·헤어스타일·중고 의류까지 통제

김명성 기자 2021. 8. 3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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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당국이 지난 5월 내부에서 제작·방영한 ‘혁명적인 사상문화로 비사회주의와 퇴폐적인 사상문화를 깨끗이 쓸어버리자’는 선전영상물에서 북한 청년이 외국산 중고옷을 입은 모습/탈북단체 제공

북한 당국이 한국 영화·드라마와 한국식 말투 등 한류(韓流) 단속에 나선 가운데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외국산 중고 의류까지 통제하는 정황이 31일 확인됐다.

장마당에서 한국산 제품과 외국물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을 겨냥해 “이색분자” “이적행위” “단호히 색출” 등의 표현을 사용해 강력한 법적 통제를 주문했다.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청년층에 대한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코로나 19’ 방역을 이유로 국경을 봉쇄한 북한 당국이 이번 계기를 ‘한류 소멸’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당국이 지난 5월 내부에서 제작·방영한 ‘혁명적인 사상문화로 비사회주의와 퇴폐적인 사상문화를 깨끗이 쓸어버리자’는 선전영상물에서 북한 내 한류 확산 및 한국 제품 거래 현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평양과 인접한 평성 등 평안남도 주요 도시들에서 발생한 ‘비사회주의’ 사례들이 소개됐다.

영상에선 “평성시에서 장마당에 들어가는 입구까지에서는 괴뢰의 상표가 붙은 각종 상품들이 단속일군들의 눈을 피해가면서 버젓히 판매되고 있다”며 “석면동 32인민반 김정란, 도로여단 노동자 김정란은 제주머니를 불구는데만 신경쓰면서 괴뢰상품을 팔면 안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팔다가 단속됐으니 이동무의 불순함을 빨리 파헤쳐봐야 한다”고 했다.

또 “사꾸라 꽃이 새겨진 자전거 펌프를 팔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골목장에서 암거래로 판매하고 있으니 불순 이색분자들을 단호히 색출해 내야 한다”며 “자본주의 나라 사람들이 입다가 버린 쓰레기 중고옷도 버젓히 판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인들과 단속성원들 간 유착관계도 언급됐다. 영상은 “더욱히 한심한 것은 규찰대원들이 있으나 장사꾼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장사꾼들이 규찰대를 회롱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문제도 좀 파혜쳐보고 빨리 대책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외국제품을 거래하는 청년들과 상인들을 향해 “적들이 던져주는 미끼를 아무런 꺼리낌 없이 받아물고 적들이 하자는대로 놀아대고 있다”며 “이것은 적들을 도와주는 이적행위”라고 경고했다.

영상은 자본주의 문화에 물든 청년층을 비판의 주요 타켓으로 설정했다. 평성시에 거주하는 한성민이라는 청년이 십자가가 새겨진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젊은 여성들이 외국 글자가 새겨진 옷을 입은 것을 두고 ‘제국주의사상문화 침투의 안내자 선전자가 되고 싶은가’며 몰아세웠다. 이들의 거주지와 실명·얼굴까지 공개했다.

한류의 영향을 받은 청년들이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모방한 것을 두고, ‘날라리풍조’ ‘변태적인 취미’ ‘해궤망측한 머리단장과 옷차림’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소학교 학생들과 교원들도 이상한 그림과 글자가 새겨진 옷과 스키니(쫑때바지), 진바지를 입었다며 옷차림을 문제삼았다. 이들의 행동을 방치한 부모와 당·청년동맹 조직을 질타하기도 했다. 영상은 “조선식이 아닌 날라리 풍조를 모조리 잡아벗겨버리고 신성한 우리거리에 활개치지 못하도록 강하게 투쟁하고 단속해야겠으나 그냥 내버려두고 이런 괴상한 몸단장이 하나의 추세나 유행처럼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이냐”고 했다.

이어 가정주부들이 윤곽이 드러난 속옷과 진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을 ‘해궤망칙’한 옷차림이라며 다음번엔 이들의 남편들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한류를 모방한 결혼식과 돌잔치 등 관혼상제도 문제로 지적됐다. 영상은 “결혼식날에 신부의 첫날옷을 여러벌씩 갖추어놓고 시간별로 장소별로 갈아입고 있으며 우리식이 아닌 이색적인 머리단장과 장단에 춤을 추는가 하면 아이들 돌생일상도 어른들 결혼식상처럼 크게 차려놓고 술판, 먹자판으로 사회주의생활 풍조와 우리식의 고유한 민족적풍속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다음 달 최고인민회의에서 ‘장마당 세대’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단속하는 ‘청년교양보장법’을 논의·결정한다. 앞서 지난해 12월 남측 영상물 유포자는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다. 고위급 탈북민A씨는 “’코로나 봉쇄’ 기간 청년 세대에 만연한 한류(韓流)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것”이라며 “대북제재와 코로나 봉쇄 장기화로 경제난을 겪는 가운데 강력한 통제로 청년세대의 동요를 막고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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