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80만원 vs 전세대출 이자 23만원..전세로 기운 '월남전선'

진명선 2021. 8. 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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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난의 본질② 전세 초과수요 왜?
정부 지원, 전세에 집중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쓸 때
1억4천만원 월 이자 23만원
비슷한 조건 월세는 60만~80만원
재개발·재건축발 이주수요
최근 3년 서울 22만호 지었는데
멸실이 11만호..저렴 주택 줄어
재건축 주민 이주도 전세수요 자극
임대차법 실거주 조항 악용
임대인이 '내가 살겠다' 하면
임차인 '2년 더' 갱신권 무력화
허위 거절로 일시적 수급 공백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재건축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연합뉴스

“체감상 많이 줄었죠. 2년에 한번 옮기는 게 정상인데, 갱신권을 써서 (임차인들이) 거의 다 눌러앉았어요. 8월 중순이면 9월 입주 손님이 돌아야 하는데…. 봄 특수, 가을 특수가 사라졌어요.”

지난 5일 찾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ㅎ공인중개사사무소의 ㅊ 대표는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 시행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묻자 ‘이사철 특수’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평년 같지 않은 봄을 이미 경험한 그는 8월 중순이 아직 멀었는데도 ‘9월 입주 손님’이 많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눈치였다.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임대차 공급이 줄었지만 그만큼 수요도 줄어드는 ‘축소 균형’이 현장에서는 ‘이사철 특수 실종’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ㅊ 대표가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것은 전세 수요가 전세 공급을 초과하는 ‘시장 불균형’ 상태, 이른바 ‘전세난’이었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2억원대 전세 매물을 찾는 문의 전화를 받아 “그 가격대 전세 매물 자체가 없다”며 “월세는 2000에 70에서 80, 오래된 집은 2000에 60”이라고 월세 매물을 소개했다. “요새는 전세대출이 70%까지 나오잖아요. 전세가 3억이면 자기 돈 1억만 있어도 가능해요. 전세는 찾는 사람이 많아요. 월세는 공실인데 전세는 품귀예요.” 다가구와 다세대가 밀집한 저층 주거지에서는 전세는 초과 수요, 월세는 초과 공급인 시장 불균형 상태가 ‘전세난’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30여년 만에 임대차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 새 임대차법이 시행 1년을 맞은 가운데, ‘전세난’과 ‘전셋값 급등’과 같은 부작용을 들어 새 임대차법을 폐지하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게 임대차법 탓이다’라는 단순 논리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전세난을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만큼 민간 임대시장의 불균형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①월세 80만원 vs 전세대출 이자 23만원

 현장에서 전세 초과 수요가 발생하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 월세보다 전세에 집중되어온 탓에, 전세가 월세보다 주거비 부담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후암동에 2억원대 전세 매물을 문의한 임차인 사례의 경우 주택도시기금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신혼부부, 1.8~2.4%, 연 소득 6천만원 이하)을 이용해 2% 금리로 1억4천만원을 대출받을 때 월평균 이자가 23만원으로, ㅊ 대표가 소개한 비슷한 조건의 주택 월세 60만~80만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20년 1~9월 정부 정책자금 이용 부동산 대출 통계 자료(김진애 전 의원실)를 보면, 주택도시기금이 지원한 전세대출 상품을 이용한 가구는 14만631가구(10조2266억원)였으나 월세대출 상품은 293가구(14억원)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특히 전세대출은 이용 가구의 66.5%(9만3507가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전세대출이 확대되면서 서울의 임대차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서울부동산정보광장)은 2015년 45.0%까지 올라갔다가 2019년 36.3%까지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김기태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전세대출이나 구입자금대출은 시중 이율과 정부 지원 이율 차이만큼 현금을 지원하는 개념으로, 사실상 대출을 더 많이 받을수록 정부로부터 더 많은 현금 지원을 받는 효과가 있다. 시장 전체로 보면 수요자들이 전세와 매매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부동산 시장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월세 쪽으로도 확대되어야 균형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후암동과 같은 저층 주거지도 월세가 소진되고 있어 아파트에서 시작된 전세난이 전면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서울의 단독·다가구 월세수급지수(한국부동산원)는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에도 100을 밑돌았으나 결국 지난해 11월 100을 넘겼으며 올해 들어 99~101을 오가다 지난 6월 103을 찍었다.

②재개발·재건축 수요 자극하고 공급은 감소

“반포 재건축 때문에 이사하시는 분이 있어서 최근에 20억에 전세 계약했어요. 원래 시세가 16억~17억 했거든요. 지금 용인에 마포, 서대문까지 전세가격 오른다고 하는데 반포 재건축 이주 수요가 움직이는 걸 무시할 수 없어요.” 신용산역 인근 신축 주상복합 아파트의 ㅅ공인중개사사무소 ㅇ 대표는 최근의 민간임대시장 불안에 새 임대차법 말고도 서초구 재건축 이주 수요의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반포주공1단지 가운데 1·2·4주구(2120가구)가 6월 이주를 시작한 뒤 서초구 등 전세시장이 불안해지자 서울시와 서초구는 3주구(1490가구) 이주 시기를 9월로 조정하기도 했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이주 수요(3610가구)는 올해 서울 전체 재개발·재건축 이주 수요(7637가구)의 절반(47.3%)에 이른다.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난해 하반기에도 서울 전역에서 1만1388가구의 이주 수요가 발생했는데, 이때 이주 당사자들도 갱신으로 인한 전세 매물 감소를 ‘전세난’으로 체감했을 가능성이 높다.

재개발·재건축은 수요뿐만 아니라 공급 측면에서도 민간임대시장 불균형을 초래한다. 재개발·재건축으로 기존 주택이 멸실되면 그만큼 저렴한 임대주택 공급이 감소한다. 특히 재개발 임대주택 의무비율 완화 및 재건축 연한 축소 등 부동산 경기 부양 종합선물세트였던 2014년 9·1 대책 이후 재개발·재건축 붐이 일면서 멸실 주택이 급격히 늘었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의 멸실·준공주택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10~2014년 준공 대비 멸실 주택 비율은 평균 31.0%였으나 2015~2019년에는 48.3%로 크게 뛰었다.

특히 ‘공급은 충분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언이 무색하게도 2017년 이후 2019년까지 3년 동안 신규 공급된 서울 주택 22만3711호의 절반(50.7%)에 달하는 11만3363호는 멸실됐다. 서울의 멸실률(50.7%)은 같은 기간 전국 평균(21%)의 2배를 훌쩍 넘는다. 서울 아파트도 같은 기간 멸실률이 29.0%로 전국 평균 5.8%의 5배에 달했다.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주거안정연구센터장은 “시장 수급에서는 ‘순공급’이 중요하며, 멸실이 많은 현재의 수급 상황에서는 전세 품귀나 전세가격 상승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시장 수급에는 대단히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모든 것을 새 임대차법의 문제로 돌리면서 시장 자율에만 맡기게 되면 수급 관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③갭투자 시장에서 새 임대차법 ‘실거주’ 조항 오작동

새 임대차법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면서 ‘임대인과 직계존비속이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갱신 거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은 현장에서 임대인이 “실거주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임차인의 갱신권을 무력화하는 ‘입법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용산구가 임대차 3법 관련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위촉한 마을공인중개사로 활동하는 보광동 ㅇ공인중개사사무소 ㄱ 대표는 특히 ‘허위 갱신거절’이 판을 치는 이유로 ‘갭투자’를 꼽았다. 그는 “갭투자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유가 있어서 산다기보다 대출을 끌어서 어거지로 사는 경우가 많다”며 “2년 전에 3억에 임대한 집이 5억5천만원으로 올랐으면 전세보증금을 올려 받아 대출을 갚거나 자신도 전세로 사는 집 보증금이 오르면 그것도 올려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전세가를 알면 부동산 투자가 보인다>(매경출판)를 쓰는 등 평소 전세시장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을 분석해온 이현철 작가는 “실거주를 한다고 임차인을 퇴거시키지만 실제 임대인이 들어가는 경우는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본다”며 “나머지는 임차인을 속이기 위해서 상당 기간 공실로 있으면서 시장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공급을 대단히 위축시키고 시장이 완전히 교란되어버리면서 폭등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대 국회 때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들(윤후덕·김상희)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갱신권을 보장하면서 ‘실거주’는 갱신 거절 사유에 포함되지 않았고,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발의안에는 실거주를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윤후덕), ‘실거주하여야 할 객관적 사유’(박주민·박홍근)로 입증 책임을 임대인에게 부여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작 통과시킨 법안은 가장 후퇴한 형태의 법안이었던 셈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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