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집, 진진가

매거진 2021. 8.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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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건축가의 집+조경가의 집+디자이너의 집 / ③-1



우아한 곡선과 절제의 절묘한 조화가 균형을 이룬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디테일 마감에는
건축가의 치열한 고민과 세심함이 그대로 녹아 있다.
진진아키텍츠 김연희 소장의 집이다.


모퉁이 부분은 안으로 오목하게 곡선을 내어 입면에 재미를 주었다. 도로에 접한 면의 창은 최소화했다.



자신의 집을 지으며 화려한 독립을 알리는 건축가들이 왕왕 있다. 이때 보통은 그 집이 첫 주택 포트폴리오가 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 주택을 주로 작업하는 사무소에서 차곡차곡 쌓은 경험치와 감각적 취향을 응축해 지은 건축가의 집이 등장했다. 잘 정비된 주택 단지, 도로에 면한 모퉁이 땅에 단정한 흰색 건물이 시선을 끈다. 오목하거나 부드럽게 감싸는 곡선, 디테일이 최소화된 매끈한 입면은 각도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과연 그 속은 어떨까, 호기심이 차오르던 차. 집주인, 진진아키텍츠 김연희 소장을 만났다.


깨끗한 입면과 부드러운 곡선이 만나는 집의 첫인상. 길게 열린 옥상 파라펫이 개방감을 더해준다.


길 모퉁이를 돌아 안쪽에 자리한 대문. 주차할 때는 전체가 슬라이딩으로 완전히 열린다.


근사한 갤러리에 온 듯하다. 특히 곡선 계단이 인상적인데    
주택을 설계할 때 이런 곡선을 쓰기가 쉽지 않다. 네모반듯한 아파트 주거 경험이 대부분인 건축주들은 대개 곡선을 어색해한다. 그런데, 동선을 생각해보면 사람이 직선, 직각으로 움직이진 않지 않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페인 건축가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했지만, 도로에 접한 모서리를 역으로 오목하게 하고 거기에 계단실을 두어 곡선 계단이 생겼다. 층별로 똑같은 곡률이면 좁고 높게 느껴지니까 곡률을 달리하다 보니 더 많아지기도 했다. 내가 원래 곡선을 많이 쓰는 건축가인 줄 아는 분도 있는데, 아니다. 우리 집에 제일 많다(웃음).    

그런데 과하다는 느낌이 없다
단독주택에는 천장의 높이 차이로 다양한 변화를 주기도 한다. 이 집에는 곡선이 많아 천장은 일자로 평평하게 가고, 대신 바닥에 단차를 주었다. 가능하면 공간이 심플하고 미니멀했으면 했다. 늘 추구해온 디자인 지향점이기도 하다.    

미니멀의 정점은 외관 아닌가 싶다    
도로에 접한 외벽에는 창과 환기구를 최소화했다. 1층에는 복도 창만 있고, 2층은 꼭 필요한 환기창 위주로 냈다. 가장 큰 창은 안방 고측 창으로, 딱 하늘만 보이는 창이다. 창 계획만 해서는 이런 입면이 나오지 않는다. 보일러 연도나 도시가스 배관, 우수관 등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현관문이나 마당 쪽으로 연결하거나 벽에 매립했다. 나중에는 옮기기 힘들기 때문에, 설계자가 꼼꼼히 챙겨야 할 부분이다.


툇마루가 있는 한옥을 닮은 마당에서 캠핑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


이 집을 지으면서 건축사사무소를 열었다고   
정림건축, 조성욱건축사사무소를 거쳐 2년 정도는 프리랜서로 일했다. 집을 짓게 되면서 도중에 프로젝트 수주가 되면 사무소를 오픈하고, 아니면 다시 직장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세 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모두 우리 집 공사 막바지일 때 현장에 와서 보고 계약하게 됐다. 집이 복덩이다.     

주택 전문 건축사무소를 다닌 경력이 있는데    
경력 10년 차 정도 되었을 때, 주택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조성욱건축사사무소에 들어갔다. 나중에 독립해 사무실을 차린다면 주택 규모의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많이 배웠다. 조성욱 소장님은 내게 멘토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무이동’을 지었던 소장님처럼 나도 언젠가 내 집을 지어서 그 자체가 포트폴리오가 되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위, 아래) 현관부와 마당에서 바라본 주택. 현관과 마당 쪽 외벽 모두 이페로 마감했는데, 햇볕 노출이 많은 외벽 부분은 규화제를 발라 자연스러운 색 변화를 유도했다.


이제 그 꿈이 실현되었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 여겼는데, 대출 등의 여러 방법을 모색하면서 가능하게 됐다. 원래 이 근처에 살아서 오가며 이런 택지가 있는 것만 봤다. 그러다 더 알아보니 조용하고 아이 학교도 가깝고 서울도 멀지 않았다. 도심 속 주택은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동시에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땅이 마침 ㄱ자 중정형이 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여러모로 가성비가 아주 좋은 땅이다.      

내 집을 직접 설계하는 일은 어땠나         
그동안 했던 요소들을 마음껏 넣으면 곧장 공사비와 연결되는 걸 아니까 처음에는 드로잉 자체를 못하겠더라. 공사비 때문에 착공까지 약 1년 걸렸는데, 설계만 8개월 정도 한 것 같다. 오가며 차 안에서 스케치도 하면서 내 집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 수정에 수정을 거쳐 설계가 많이 정리되었다. 1층은 거의 그대로지만, 2층 레이아웃은 초안과 많이 달라졌다.  

가족의 요구사항은 없었나    
아이는 특별히 없었고, 남편의 요청으로 마당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미션이었다. 다행히 이 지역 도로에는 인접 대지 이격만 있어서, 건물을 도로 쪽으로 최대한 붙일 수 있었다. 또 대지가 북쪽이라 정북 일조의 영향도 받지 않아 다른 집보다 마당이 넓은 편이다. 그 외 소소한 요청과 협의가 있었다.


현관에는 센서 조명과 가죽 벤치를 공간에 맞춰 제작했다.


집 안으로 들어오면 긴 복도를 지나 거실로 진입하게 된다.


HOUSE PLAN

대지위치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대지면적 ≫ 235m2(71.08평)  
건물규모 ≫ 지상 3층  |  거주인원 ≫ 3인(부부 + 자녀 1)  
건축면적 ≫ 112.3m2(33.97평)  |  연면적 ≫ 226.97m2(68.66평)  
건폐율 ≫ 47.79%  |  용적률 ≫ 96.58%  
주차대수 ≫ 2대  
최고높이 ≫ 9.73m  
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철근콘크리트  
단열재 ≫ 준불연 비드법 단열재 135mm(가등급)  
외부마감재 ≫ 벽 - STO 외단열시스템, 이페 위 규화제 / 지붕 –컬러강판  
내부마감재 ≫ 벽·천장 - KCC 친환경 도장 / 바닥 –1층 : 비스타 수입타일, 2층 : 더존 원목마루  
욕실 타일 ≫ 바스디포 수입타일  
욕실기기 ≫ 수전 - 콰드로 / 욕실기기 - 아메리칸스탠다드  
주방 가구 ≫ 우림퍼니처(도어 - 퀄커스 건식무늬목, 주방 상판 - 덱톤 세라믹 타일)  
거실 소파 ≫ 잭슨카멜레온  
식탁 ≫ 로이스토 제작  
조명 ≫ 다이닝 - 비비아 플라밍고1550 / 안방 - 루이스폴센 PH3/2 / 욕실 - 아르떼미데 디오스쿠로이  
계단재·난간 ≫ 롤카펫(유앤어스) + 각파이프 도장 난간  
현관문 ≫ 단열방화문 제작  
중문 ≫ 금속자재 + 도장 마감 + 강화유리  |  방문 ≫ MDF + 퀄커스 건식무늬목
붙박이장 ≫ 리케 Join System  
스위치·콘센트 ≫ 융(jung)  
창호재 ≫ 아키페이스 시스템창호(알루미늄, 3중 유리)  
열회수환기장치 ≫ 경동 나비엔 청정환기 시스템  
에너지원 ≫ 도시가스  |  조경석 ≫ 사괴석, 마사(10mm 이하)  
데크재 ≫ 참우드 THK19 이페  
설비 ≫ 삼정설비, 한양전력  |  구조설계(내진) ≫ 은구조  
시공 ≫ ㈜자담건설  
조경·설계·감리 ≫ 아키텍츠진진 02-6084-2244 www.architectszinzin.com


마당과 연계된 11자형 주방. 자연스러운 질감의 오크로 가구를 제작했다.


ㄱ자로 마당을 감싸안은 거실과 주방은 바닥 높이에 차이를 두어 영역을 구분했다. 소파와 TV, 스피커, 다이닝 조명 등은 설계 계획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아이템들이라고.


조금 특별한 건축주였을 것 같다(웃음)    
남편이 건축주라 쉬울 줄 알았는데, 여느 건축주와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건축가와 일반 건축주의 시선이 아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이 1m 이상 단차가 있는 대지인데, 툇마루가 있는 한옥 마당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환영이었다. 내부 단차도 트인 공간에 영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해서 여러모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가 위험하지 않을까, 괜히 좁아 보이지 않을까, 정확한 단 높이는 얼마냐, 매일 곁에서 사소한 것까지 물어왔다. 이렇게까지 세세히 설명하는 일이 어렵기도 했지만, 설득 과정에서 설계도 조금씩 진화한 것 같다.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곡선 계단실이다. 위에 천창이 있는데 그곳에서부터 빛이 은은히 떨어진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구름의 모양에 따라 빛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간접광이 참 좋다. 갤러리 같다고 하셨는데, 직사광선이 없어서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주택에서는 남향 창만 중요한 게 아니다. 아파트와 달리 사방에 창을 낼 수 있어서 다양한 방향으로의 창을 많이 유도하는 편이다.    

계단에 카펫을 깔았더라  
어렸을 때 친척 집에 갔다가 카펫 계단에서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던 기억이 남아 있다. 우리 집에도 카펫 계단을 하면 맨발로 생활할 때 폭신한 느낌이라 더 좋을 것 같았다. 곡선 계단이다 보니 디딤판을 하기가 쉽지 않았고, 한다 하더라도 마감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기도 했다. 청소를 담당하는 남편이 반대했지만, 열심히 설득했다. 지금은 가족은 물론 보는 분마다 만족스러워한다.


유려하게 펼쳐지는 곡선 계단. 천창의 빛이 은은하게 떨어진다.


2층 메인 욕실에서 바라본 모습. 미니멀한 곡선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PLAN


타원형 오프닝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1층 거실.


2층 취미실 빈백에 앉으면 복도 창 너머로 마당이 보인다.


다용도로 쓰는 3층 공간. 옥상에는 해먹, 타프 등을 설치해 근사한 루프탑을 만들어볼 계획이다. 계단실 곡면 벽에는 외부 마감재인 백색 플라스터(sto)를 적용했다.


마당에 소형 캠핑 트레일러가 있던데     
가족이 캠핑을 자주 다녔다. 이사 오면 필요 없으니까 팔려고 했는데, 나름 짐이 많이 들어가서 창고 삼아 두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마당에서 캠핑용품을 다 쓴다. 고기도 구워 먹고 장작불도 피우고 하니까 근거리 캠핑은 갈 일이 없다. 사실 캠핑은 짐 싸고 가는 게 일인데, 가서 잠깐 누리는 휴식이 좋아 힘들어도 가는 거다. 이제 내 집 마당이라는 단독 캠핑장이 있어서 정말 좋다. 집 짓고 소소하게 행복하다.    

아쉬운 점은 없는지     
공사비를 너무 타이트하게 설정해서 선택의 폭이 좁긴 했는데, 한정된 예산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던 터라 아쉬운 점은 딱히 없다. 시공 단가에 비해 퀄리티 잘 나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천창과 경사지붕이 있는 3층 공간은 가족의 서재로 쓴다.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며 고심했던 주택의 설계안들.


비로소 내 집을 지어본 소감은   
공사 내내 현장 소장과 컨테이너에 상주하며 시공 디테일과 마감에 공을 들였다. 건축주이자 설계자 역할을 동시에 하다 보니 공사비 관련 문제나 공사 중 변경사항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하게 되더라. 힘들었지만, 현장에서 많이 배웠다. 현재는 다수의 주택 프로젝트를 열심히, 즐겁게 하고 있다. 앞으로 상업공간이나 문화공간 등 더 다양한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 싶다.



취재_ 조고은  |  사진_ 변종석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1년 8월호 / Vol.270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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