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2021. 8. 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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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자연 영화 <13> 킹 오브 썸머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식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중에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고전’ 류의 추천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 바로 <월든Walden>(1854)이다.
‘자발적 빈곤’을 실천했던 소로
‘월든’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인근에 있는 호수 이름이다. 자연과 동화되는 삶을 살며 스스로 ‘자연의 관찰자’라 일컬었던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1817~1862)가 1845년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2년 2개월 동안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았던 곳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한 소로의 ‘정신적 자서전’으로 영미권 고교생의 필독서인 <월든>은 21세기 들어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사람들 사이에 생태주의적 삶의 지침서로 재조명 받고 있다.
“자연을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터전으로 보지 않고 재산 획득의 수단으로 여길 때 자연은 원래의 모습을 잃고 착취의 대상이 되고 만다. 탐욕에 물든 인간에게 자연은 단지 교환가치로서만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무리 없이 동의할 만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주장은 의외로 ‘과격’하다. “자연의 생산물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유통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경험할 수 없게 된다.”
그 이유는 “과일은 그것을 돈 주고 산 사람에게도, 시장에 내다 팔려고 기른 사람에게도 그 참맛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월든>이 170년 가까이 세계 곳곳에서 널리 읽히는 건 그가 주장하는 ‘간소한 삶’ 덕분일 것이다. 그는 불필요한 욕망을 억제하고 기본적인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그 이유는 자연의 착취와 파괴가 인간의 ‘거짓 욕망’을 부추기는 상업주의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옷을 요구하는 산업을 조심하라.” 과소비와 그로 인한 중노동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영혼을 돌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빈곤’이 요구된다는 얘기다.“‘자발적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 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는 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단순한 삶’이 필수적이다.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하루에 세 끼를 먹는 대신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어라. 100가지 요리를 5가지로 줄여라. 그리고 다른 일들도 그러한 비율로 줄여라.”
그렇게 의식주를 간소화하자 “1년 중 약 6주일만 일하고도 필요한 모든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사춘기 소년들의 성장 영화
영화 <킹 오브 썸머The Kings of Summer>(감독 조던 복트-로버츠, 2013)는 바로 이러한 <월든>의 주장을 실천에 옮기게 된 청소년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아빠와 둘이 사는 ‘조’(닉 로빈슨)는 아빠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 시기인 15세 조 입장에선 아빠의 간섭과 잔소리가 도를 넘어 지나치다고 느낀다. 여자 친구와의 통화에 별안간 끼어드는가 하면, 욕실에서 자위하는 것까지 대놓고 뭐라 한다. 그로선 ‘미칠 지경’이다.
조의 절친인 ‘패트릭’(가브리엘 바쏘) 역시 엄격한 부모 때문에 하루하루가 괴롭다. 아빠는 주머니 없는 파란 셔츠를 입었다고 뭐라 하고, 심지어 햄버거 먹은 뒤에 감자튀김 먹는 것까지 잔소리다. 엄마 또한 사사건건 귀찮게 질문을 퍼붓는다.
조의 고민은 단 하나, ‘어떻게 하면 집을 벗어날 수 있을까’이다. 독립해서 먼저 집을 떠난 누나에게 “나도 아빠에게서 벗어나게 제발 데려가 줘, 집을 나가게 해줘”라고 조르지만, 누나는 “2년만 지나면 아빠가 너를 못 보내서 안달할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우연히 조는 숲속의 어느 공간을 발견하고, 패트릭에게 집을 나와 그곳에 자신들만의 거처를 짓고 살아보자고 설득한다. 이 ‘무모한’ 도전에 괴짜 친구 ‘비아지오’(모이세스 아리아스)도 동참한다. 그들이 발견한 숲은 도시와 한참 떨어져 있어 외부와 단절된 완벽한 도피의 공간이었다. 통나무집 설계도도 실제 집의 구조를 연구해 가며 차근차근 그럴듯하게 만들어진다. 건축의 재료는 여기저기서 주워 온 재활용품이긴 하지만 통나무집을 짓기에 손색이 없다.
조와 친구들에게 통나무집이 주는 자유의 크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조는 눈부신 햇살에 잠을 깬 패트릭에게 “숲에는 시간이 없어”라고 말한다. 숲의 생활은 규칙과 규율, 명령과 복종이 존재하는 바깥세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숲은 시종 햇살이 비치는 아주 밝고 유쾌한 공간이다. 촬영 또한 ‘명랑한’ 기운이 관객에게도 전달되게끔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잔뜩 기대를 품고 숲을 향해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조, 여름 한낮에 나무 그늘에서 낚시하고 맑은 호숫물에 뛰어드는 소년들, 모닥불이 타오르는 정경, 숲속의 동식물들이 어우러진 장면들…. 숨 막히는 메트로폴리탄에서 떨려나지 않으려 헉헉대는 어른들로서도 지나간 그 시절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화면들이다. 작품 배경인 오하이오주 숲의 풍광과 어우러진 오리지널 사운드 또한 자연 속 소년들의 일탈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진정한 행복은 내 마음에 있다
하지만 소년들의 생활에도 점점 부작용과 고통이 따르기 시작한다. 조는 패트릭에게 닭고기를 자급자족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식료품점에서 구입한 사실이 들통 나 갈등이 깊어진다. 수렵 채집을 통해 먹거리를 확보하려던 <월든>식의 자급자족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춘기 이성 간의 꼬인 관계도 빠지지 않는다. 조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켈리’(에린 모리아티)를 오두막에 초대했지만, 소녀는 조 아닌 패트릭에게 마음이 있었다. 상처받은 조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공고했던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가고 꿈같던 공동체 생활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이 지점부터 영화는 낯익은 ‘성장 영화’의 트랙을 밟는다. “말 안 들을 거면 내 집에서 나가”라던 아버지의 독단에서 벗어나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지겠다’고 마음먹었던 조와 친구들은 제약과 고통이 없는 도피처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반목했던 어른들과 화해한다.
2013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해 호평을 받았고, 제39회 시애틀국제영화제에서 ‘새로운 미국영화’ 경쟁 부문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했다.
“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무슨 일이 닥쳐도 절망하지 않으리라.”
그 잔물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화다.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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