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시한폭탄' 된 스팀세차기, 규제가 없다
[경향신문]
지난 5일 오전 11시 27분쯤 서울 중구 서울역 주차장에서 스팀세차기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건물 4층 주차장 외벽 유리 3장이 파손됐다. 인근에 있던 시민 1명이 유리 파편을 밟아 부상을 입었다. 이 세차장 관계자는 12일 “오전에 (세차기)압력을 점검했는데 왜 폭발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스팀세차장 폭발 사고는 흔히 발생한다. 2008년 1월 충북 청주 정비업소에서 스팀세차기가 폭발해 업주 박모씨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2011년 2월에는 밀양시 가곡동 세차장에서 스팀세차기 보일러 탱크가 폭발해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법안전실장을 역임한 김의수 한국 교통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스팀세차기 폭발 사고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발생하는 흔한 사고”라며 “스팀세차기가 일반 시민들이 쓰는 설비가 아니어서 알려지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스팀세차장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도심 내 주요 빌딩에 입점해 있다. 카센터도 차량용 스팀세차기를 구비해 놓고 영업한다. 시중에 있는 스팀세차기는 대부분 압력 용기(스팀 탱크)에서 물을 끓여 고온·고압의 증기를 만들어 내는 ‘보일러식’이다. 스팀세차기 폭발은 내부에서 생긴 고압이 압력 용기에 균열을 내 발생한다. 고온·고압을 견뎌내지 못해 폭발하는 것이다.
폭발사고가 빈발하지만 스팀세차기는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 어떤 규제와 관리도 받지 않는다. 일반적인 압력 용기는 산업안전보건법·에너지이용합리화법·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따라 안전 관리가 이뤄진다. 안전기준을 충족해야 시장에 유통할 수 있고 주기적인 안전 점검도 받는다.
산안법상 압력 용기 인증 업무는 고용노동부 소관이다. 하지만 스팀세차기는 인증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스팀세차기 속 압력 용기가 관련법에서 정한 ‘화학공정 유체취급용기 또는 그 밖의 공정에 사용하는 용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열에너지를 이용한 스팀세차기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을 관할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라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통상자원부대로 스팀세차기가 자신들 관리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에너지이용합리화법과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이 정한 압력용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차장을 운영하는 업주들도 스팀세차기의 폭발 위험성을 알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는 윤재웅씨(56)는 스팀세차기를 구해놓고도 불안해서 사용을 꺼린다. 윤씨는 “내가 구매한 스팀세차기는 보일러에 기름을 부어서 쓴다. 고장난지 모르고 불 떼면 그냥 터져버린다”며 “위험해서 잘 안 쓴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는 최준형씨(가명)는 “전기식 스팀세차기를 샀는데 사용하다보니 위험하더라. 지금은 그냥 플러그를 빼놓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안전관리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준원 숭실대 안전환경융합공학과 교수는 “1인 이상 사업장인 세차장은 산안법 적용 대상”이라며 “사고 예방을 위해 노동부가 스팀세차기를 안전인증 대상으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팀세차기의 설계·제조 단계부터 위험성 평가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스팀세차기 뿐만 아니라 모든 기계설비가 마찬가지다. 설계·제조 단계에서 이뤄지는 위험성 평가에 대한 규정이 전무하다”며 “위험 요소는 그대로 두고 처벌만 강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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