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인의 꽃집 '그대가 준 꽃'

서울문화사 2021. 8.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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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이 꽃집을 열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끌림》 등 에세이와 시로 관계와 사람, 여행과 감정을 이야기하던 그가 만든 꽃은 어떨까? 이병률 시인에게 그가 좋아하는 꽃에 대해 물었다.



‘오이초’도 좋아요.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꽃을 피우는 게 저랑 닮았어요


클레마티스


꽃을 부탁받은 뒤 10분 정도, 사람을 면밀히 관찰해서 그가 지닌 분위기를 꽃으로 구현해보려고 집중합니다.

그의 분위기에 잘 맞는 꽃을 만들었다, 싶을 때가 있는데요. 이런 맛에 꽃집을 하는구나 싶어요.


스카비오사


스카비오사.

여성적인 꽃. 화려하고, 때로는 표독하고, 동시에 우아합니다.

그게 여성이 지닌 좋은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꽃이 작아 다발로 만들어두면 작아보이지만, 그럼에도 시선을 주게돼요.


얼마 전 ‘그대가 준 꽃(@flowers_fromyou)’이라는 꽃집을 열었습니다. 어떤 계기였나요? 식물 가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은 몇 해 전부터 해왔습니다. 시적으로 생각해보면, 한 평짜리 가게에 화분은 단 열 몇 개 정도 가져다 두고 싶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만 문을 여는 거예요. 목요일 오후 3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손님이 있으면 식물을 팔고, 그게 아니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요. 제가 카페 꼼마 스태프로 카페 일을 돕던 때였는데, 공간이 너무 넓으니까 무언가로 더 채워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식물도 팔고, 꽃도 파는 가게를 해보자고 제안하게 된 거죠.

꽃집에서 독자를 자주 만나나요? 저를 모르시는 분도 아주 많아요(웃음). 그래도 종종 만나지요. 저는 꽃집에서 일주일에 이틀쯤 일을 해요. 가끔 제게 미리 연락을 취하고 만나고 가시는 독자도 있고, 저 멀리서부터 카페 서가에 꽂힌 책을 한 권씩 만지작거리다 조금씩 다가오는 독자도 있어요. 이런저런 독자를 만날 때마다 이런 사람의 마음도 있구나, 하면서 배웁니다.

플라워 스타일링을 배운 적이 있나요? 안 배웠어요. 잘하진 않지만 저는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자꾸 하다 보니까 ‘이거 계속 안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꽃을 부탁받은 뒤 10분 정도, 사람을 면밀히 관찰해서 그가 지닌 분위기를 꽃으로 구현해보려고 집중합니다. 그의 분위기에 잘 맞는 꽃을 만들었다, 싶을 때가 있는데요. 이런 맛에 꽃집을 하는구나 싶어요.

꽃이라는 단어를 글로 옮길 때와 실제로 만질 때는 다른가요? 글을 쓸 때는 꽃이란 단어를 경계해서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제 글에 꽃이 주인공인 적은 별로 없죠. 꽃을 좋아하는 분위기의 사람이라고 저를 어필하고 싶지도 않아요.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될까 봐 그렇기도 하고.

글로 어필하지는 않더라도, 꽃과 있는 걸 좋아하는 분인 것은 분명한 거군요. 맞아요(웃음). 원주 박경리문학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들은 얘기인데, 제가 산책을 나오면 꼭 뭔가를 꺾어서 들고 다닌대요. 물가에 던지기도 하고 방에 가지고 가기도 하고. 어릴 때도 뭔가를 꺾어서 들고 오면 가족 중 누군가가 그걸 소주병에 꽂아두곤 했던 기억이 나요. 식물이 있는 공간에 가면 너무나 마음이 놓이고 좋아요. 공간에 꽃 한 송이라도 꽂아두는 마음이 쉽진 않은 거니까.

작가 이병률은 어떤 식물과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함께 일하는 스태프는 제가 들꽃을 닮았대요. 저는 들꽃 닮은 아저씨인가 봐요. 나를 닮은 나무가 뭔지도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제 이름이 병률이잖아요. 저와 비슷한 이름을 지닌 나무가 있어요. ‘병솔’이라는 꽃이 피는 나무죠. 정말 ‘병을 닦는 브러시’라는 의미의 병솔인 것도 재미있어요. 그 나무를 엄청나게 사서, 여기저기 선물하고 저도 기르고 있어요.

그 밖에 직접 키우는 식물 또는 꽃이 있나요? 유칼립투스가 있고, 캄파넬라라는 꽃이 피는 식물, 하마처럼 물을 마시는 파피루스가 있어요. 최근엔 메밀꽃도 새로 들였네요. ‘뭐 조금 뿌리면 알아서 나겠지!’ 하면서 툭 뿌려뒀는데, 이게 진짜 잘 자라더군요(웃음).

마지막으로 이병률 시인이 좋아하는 여름 꽃을 알려주세요. 그 꽃에서 느껴지는 감상도 궁금해요. 우선 ‘달리아’요. 우주가 연상돼요. 이 꽃은 돌보지 않아도 몇 해 동안이나 씩씩하게 꽃을 피웁니다. 그게 제게는 없는 너른 품인 것 같아요. ‘오이초’도 좋아요.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꽃을 피우는 게 저랑 닮았어요. ‘스카비오사’는 화려하고, 표독하고, 우아합니다. 그게 무척 여성적이고 좋아 보여요. ‘델피니움’은 커피믹스에 섞는 한 덩어리의 굵은 소금 같아요. 작은 알갱이 한 알을 넣어도 풍미가 오르고 맛도 훨씬 깔끔해지거든요. 습자지처럼 서늘한 이 꽃만의 결이 중심을 잡아줍니다. ‘아가판투스’는 새 같은 식물이에요. 저는 새 같은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아름답고 여린데 색이 고와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그냥 잘해주고 싶은 사람. 아가판투스는 꼭 새 같아요.

피치 달리아와 아이시스 달리아


달리아를 보고 있으면 우주가 연상됩니다. 달리아는 돌보지 않아도 몇 해 동안 꽃이 피죠.

그게 내가 지니지 않은 너른 품이자 세계인 것 같아요. 연약하지 않은 씩씩함.


기획 : 박민정 기자  |   사진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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