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 심화 우려에 임대사업자 혜택 축소·폐지 또 없던 일로..전문가들 "이제라도 다행"
이제 ‘적폐’는 아니란 걸까. 민간 주택임대사업자를 옥죄고 제도 자체를 없애겠다던 여당이 꼬리를 내렸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분간 민간 임대사업자 제도 폐지 논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민간 주택임대사업자를 집값 급등의 원흉으로 치부해왔던 것에서 한 발 뺀 셈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임대시장 안정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태세를 전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다만 여당과 정부가 정책을 논의하고 마련하는 과정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아니면 말고’ 식의 부동산 정책은 신뢰도를 훼손할 뿐 아니라, 정책 발의와 동시에 시장 곳곳에 왜곡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 여당의 ‘임대등록사업자 제도 폐지’ 논의 결국 백지화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비(非)아파트에 대한 임대등록사업 제도 폐지안을 더 논의하지 않고 지금의 민간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민주당은 당 차원의 논의였고, 논의가 끝난 것은 아니라며 선을 긋는 모양새지만, 당분간 민간 임대사업자 제도 손질 논의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석 달 만의 입장 전환이다. 지난 5월 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는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공급·금융·세제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모든 주택에 대해 임대 신규 등록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작년 7월 아파트 등록임대 제도를 폐지한 데 이어 빌라·오피스텔 등의 등록임대까지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또 기존 민간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주던 ‘양도세 중과(重課) 배제’ 혜택도 줄이겠다고 했다. 지금까진 임대 등록 기간 만료 후 집을 언제 팔든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었는데, 앞으론 6개월 안에 팔아야 양도세 혜택을 준다고 혜택을 축소했다.
당장 민간 주택임대사업자들이 술렁였다. 전셋값 급등기에 임대료도 제값을 못 받는 상황에서 양도세 혜택까지 못 받게 된다면 민간 주택임대사업자 지위를 반납하는 편이 낫겠다는 이들이 줄이었다.
민간 주택임대사업자 A씨는 “2년 새 임대료가 2배 가까이 올랐는데 양도세 혜택을 받기 위해 종전 임대료보다 5% 정도만 올려 받았다”라면서 “임대사업자 지위가 자동말소되고 6개월 안에 매도를 못 해 양도세 혜택도 못 받을 수 있다면 그냥 지금 사업자 지위를 내려놓고 임대료를 올려 받는 편이 나은 계산”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집값이 끝없이 오르는 상황에서 임대사업자로 묶여있을 필요가 없고 지금이라도 차익 실현을 하는 편이 낫다고 계산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전셋값을 시세대로 올려받고 갭 투자자(전세를 끼고 매수하는 것)에게 매도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민간 주택임대사업자 감소→임대주택 수 감소→임대료 상승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여당이 내놓은 민간 임대사업자 제도 폐지 논의는 실상 임대시장 불안을 증폭시키는 정책이었다는 뜻이다.
◇ 최근 4년간 5번 손질된 임대사업자 제도
임대사업자 제도는 최근 4년간 5번이나 손질될 정도로 급변했다. 2017년 12·13 대책이 나올 때만 해도 정부는 민간 주택임대사업자 활성화에 집중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전 장관이 나서 “피치 못할 이유로 다주택자를 유지하고 싶으면 세금 혜택을 보는 민간임대사업자로 등록하시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이는 임대소득을 양성화하고 세입자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임대소득을 양성화하면 과세에 나설 수 있었고, 양질의 주택을 제공하도록 관리할 수도 있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방세와 임대소득세를 감면, 종합부동산세 면제 등의 세제 혜택을 줬다. 나라가 세금을 깎아줄 테니 임차인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집값이 급등하면서 2018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과도한 세금 혜택을 보는 민간 주택임대사업자들이 집값을 올린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점차 혜택 범위가 줄었다. 그 해 9·13 대책을 통해 조정대상지역의 등록 임대주택에 대한 양도세·종부세 혜택을 축소했다. ‘조정대상 지역’에서 새로 취득한 임대주택에 대해 세금을 중과하고, 종합부동산세도 합산 과세하기로 했다. 또 같은 해 12·16 대책에서는 임대주택 가액 기준을 추가해 공시가격 6억원(수도권 기준)을 넘는 임대주택은 취득세와 재산세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지난해 7·10 대책 때는 8년 아파트 매입 임대제도와 4년 단기임대제도 등을 폐지했다.
이어 올해 5월 민주당 부동산 특별위원회는 작년 7·10 대책 발표 당시 유일하게 남겨뒀던 비(非)아파트 임대사업등록제를 폐지하고, 등록 말소된 민간 주택임대사업자들에게 무기한 적용되던 양도세 중과 배제 혜택을 등록 말소 후 6개월까지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모든 주택 유형에 대한 민간 임대사업자 폐지’를 예고했다. 그리고 이달 이 폐지안을 다시 철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 전문가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 다행…신뢰도 흔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임대시장이 불안한 때 여당이 임대사업등록제 폐지를 논의했던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제라도 논의를 멈춘 것이 다행이라는 뜻이다.
임대시장은 지난해 7월 말 임대차 2법이 통과된 이후로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의 ‘7월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3483만원으로 조사됐다. 임대차법이 시행된 작년 7월(4억9922만 원)보다 1억3561만원 올랐다. 임대차법 시행 직전 1년(2019년 7월∼2020년 7월)동안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3568만원 오른 것과 비교하면 3.8배 큰 오름폭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임대사업등록제 폐지까지 강행했다면 결국 전세 물량이 소멸되고 임대료는 치솟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라면서 “폐지안 철회에 따라 빌라나 오피스텔은 비교적 안정적인 가격에 임대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주택 정책을 다룰 때 선악을 나누기보다는 시장 원리에 따라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민간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는 최장 10년간 저렴한 전월세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순기능이 있는데 이를 간과한 채 단순히 세금 특혜, 다주택 투기 굴레를 씌워 주택 가격 급등의 원흉으로 몰려 한 것”이라면서 “이렇게 해선 주택 시장 안정화를 꾀할 수 없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정책을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일단 발의하고 그 뒤로 반응을 수렴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결국은 정책에 대한 신뢰성만 훼손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혼란이 야기되면 없던 일로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이 새 아파트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간 실거주해야만 하는 규제 강화책도 지난달 결국 전면 백지화됐다. 그 밖에도 대출 규제를 강화하다가 무주택자의 경우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완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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