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과 기자가 만든 '노동 예능' 한번 볼래요?

조혜정 2021. 8. 7. 10: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요판] 기획]한국노총 유튜브 방송 '노른자'
어렵고 딱딱할 것 같은 노동 의제
상식적 질문, 현장감 있는 설명으로
대중들 이해·공감 이끌어내기 시도

[한겨레S] 기획
‘노동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개그맨 신흥재씨(왼쪽부터),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가 지난달 15일 서울 문래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한국노총의 ‘노동 예능’ 유튜브 방송 <노른자:노동에 도른 자들> 녹화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세 분 녹화시간을 조금 줄여야 해요. 게스트 토크 때 못 들은 이야기는 따로 인터뷰를 딸 거라서요, ‘유 퀴즈’(티브이엔 방송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처럼요.”(박경열 피디)

“말을 줄이라고? 쉽지 않은데…(웃음). 알겠습니다.”(허환주)

“(웃음) 그러게. 못 줄일 것 같은데.”(김정목)

“아니, 그런데 (허환주) 형님은 머리 손질받을 땐 귀여운 표정 지어. 어색해서 그런 거죠?”(신흥재)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문래동의 한 유튜브 방송 녹화장. 녹화 전, 출연자들끼리 ‘티키타카’를 해가며 긴장을 풀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건 여느 방송과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 5대가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해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다루는 내용은 조금 색달랐다.

“(지난 녹화 이후) 2주 동안 뭐 했어요?”(김정목)

“안 믿을 수 있겠지만, 노동자 관련 기사를 찾아봤어요.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결정됐던데?”(신흥재)

“오~, 진짜 봤네? 그럼 한달에 얼만지 아세요?”(허환주)

“(당황해서) 시급이 9160원인데 한달에 얼만지 아세요는 어떻게…(계산하라고?)”(신흥재)

(일동 웃음, 잠시 소란)

“(한달 최대 노동시간은) 209시간이고, 월 환산액은 191만4천원, 인상률은 5.1%입니다.”(김정목)

없는 것 말곤 다 있는 유튜브 콘텐츠지만, 이들이 다루는 건 ‘노동’이다. 그것도 딱딱한 노동법 설명이나 깃발 나부끼는 집회 현장이 아니라, 지인과 맥주 한잔 놓고 소소한 잡담을 나누는 듯한 분위기로 이야기하는 노동이다. 이곳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노동 예능’을 표방한 유튜브 방송 <노른자:노동에 도른 자들>(노른자)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재미·깊이·균형 각각 맡은 출연진

<노른자> 출연진인 개그맨 신흥재씨(왼쪽부터),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노른자>엔 개그맨 신흥재씨와 허환주 <프레시안> 사회팀장,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이 출연한다. 신씨는 2017년 폐지되기 전까지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했고, 지금은 구독자가 53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1등 미디어’를 동료 개그맨들과 함께 운영한다. 13년차 기자인 허 팀장은 노동 분야를 많이 다뤄왔는데, 특히 현대중공업 산업재해 사망 사건과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심층 취재해 두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김 차장은 한국노총에서 사회정책을 담당하고 있어 노동을 비롯한 정책 전반을 두루 꿰고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이력을 지닌 이들이 자신의 특징을 살려 노동 현안을 쉽고 재밌게 이야기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게 <노른자>다.

이들 가운데 ‘재미’ 담당은 당연히 개그맨인 신씨다. 노동절에도 쉬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는 설명에 “인플루언서나 셀럽이 5월1일은 다 쉬자고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묻거나(1회), 쿠팡 물류센터에 제대로 된 냉방시설이 없어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에 “그냥 빨리 설치하고 욕 안 먹으면 되잖아”라고 꼬집는(7회) 식이다. 노동 정책이나 제도를 잘 몰라도 상식선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날것으로 툭, 내뱉어 웃음을 주는 동시에 ‘그러게 말야’ 하는 반응이 나오게 만든다.

그는 “이 방송에서 내 포지션은 전문가가 아니라 시청자 눈높이에서 ‘이건 뭐예요?’ ‘예전엔 왜 이렇게 안 했어요?’ 물어보는 거다. 그래서 미리 내용을 다 공부하기보단 궁금한 점을 생각해본다”며 ‘뼈 있는 웃음’을 만드는 비법을 설명했다. 한국노총의 유튜브 방송에 세번째로 출연하는 그는 “처음엔 김대범(개그맨) 선배가 ‘여기선 출연료를 제 날짜에 딱 맞춰서 준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동 문제에 관심이 생기더라. 그 전엔 연예 기사랑 스포츠 기사만 봤는데, 이제는 포털 사이트에 분류돼 있는 순서대로 기사를 다 본다”고 했다.

이날 진행된 7회분 녹화에선 온라인 유통 플랫폼 문제와 소방공무원 노동조합을 다뤘다. 허환주 팀장은 “쿠팡에선 지난 1년 동안 9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마켓컬리에선 노동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일용직 노동자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이 다시 찾아오면) 뽑지 않았다”, “소방공무원 노조에 단결권, 단체교섭권은 있지만 단체행동권이 없어 한계가 있다” 같은 지적을 내놨다. 허 팀장은 이렇게 노동 문제를 오랫동안 다뤘던 ‘내공’을 살려, 취재 경험에 기반한 현장 이야기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노른자>에 깊이를 더해준다.

“기사를 쓸 땐 단편적인 뭔가를 일방적으로 던진다는 생각이 들고, 딱딱한 팩트 위주라 독자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런데 유튜브에선 내가 문제의식을 가진 분야를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주고, 기사에서 전하기 힘든 이면의 이야기도 다양하게 전할 수 있어 즐겁다”는 게 허 팀장의 이야기다.

김정목 차장은 “‘방송쟁이’와 기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이다. “회사에서 한번 해보라고 준 기회를 마다하면 안 될 것 같고, 두 사람한테 뭐라도 배워 오자는 생각”으로 합류했다. 그는 “시민사회단체 쪽에서 ‘방송 내용이 좋아서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거나 ‘어디 행사 같은 데서 틀어주면 좋겠다’는 반응이 많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고개 끄덕이게 하는 현장 이야기

박경열 피디(첫줄 맨 왼쪽)와 <노른자> 출연자들이 녹화에 앞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국노총이 이렇게 말랑말랑한 노동 콘텐츠를 선보이는 건 이번이 7번째다. 2018년부터 오디오 팟캐스트 <노발대발>, 동영상 콘텐츠 <있긔없긔 시즌1>, <있긔없긔 시즌2>, <비디오 노발대발>, <세상에 이런 잡이> 등을 내보냈고, 올해 노동절에 <노른자> 방송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기획·총괄하고 있는 황희경 부장은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멀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노동 이슈를 이해하고 재미와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노른자>는 그런 취지에 맞게 노동 현안을 설명하는 코너와, 게스트를 불러 현장 이야기를 듣는 코너로 나뉜다. 방송 소재를 정하고 게스트를 추려 섭외하는 작업은 황 부장의 몫인데, 박경열 피디, 권현정 작가 등 제작진, 허 팀장과 논의를 거친다.

말이 쉬워 ‘노동 예능’이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재밌게 만들어도, 조회수가 폭발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박경열 피디는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가령, 이날 녹화한 소방공무원 노조 문제에서도 이 방송은 인력 확충, 노후 장비 개선, 출동가산금 수당 인상 같은 노조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워 다루지 않았다. 그 대신 한국노총 소속 전국소방안전공무원노조 사무처장인 김길중 소방대원을 게스트로 초청해 경험담을 듣고 노조가 왜 필요한지 공감을 이끌어냈다. “예전에 한 대원이 ‘강아지가 사망했으니 병원으로 이송해달라’는 요구를 원칙대로 거절했다가 민원인한테 크게 시달렸는데, 지휘부가 제때 제대로 대응해주지 않았다. 강원도의 경우 그나마 최근 1명이 충원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4명이 타야 하는 소방펌프 차량에 2명이 탔다. 현장에 나가면 실제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사람이 한두명밖에 없는 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공무원이 무슨 노조냐’고 반박할 사람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이날 온라인 유통 플랫폼 문제와 소방공무원 노조를 다루며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녹화는 13분56초짜리 7회분으로 편집돼 지난달 27일 공개됐다. 격주에 한차례씩, 두 회차를 한꺼번에 녹화하는 <노른자>는 2주에 하나씩 유튜브에 올라온다. 이날 함께 녹화한 8회분, 5인 미만 사업장의 문제점과 프리랜서 노동자 이야기는 9일 공개될 예정이다. 이렇게 2회 더, 10회까지 끝나면 잠시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을 보낸 뒤 연말쯤 ‘시즌 2’를 선보인다. 황희경 부장은 “조회수 1만이 넘기를 바라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아직은 많이 모자란다. 하지만 노동 콘텐츠를 대중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회수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이런 걸 계속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의 할 일”이라며 “‘시즌 1’에서 못 한 부분, 더 채워야 할 부분이 뭔지 다 같이 고민해서 더 나아진 ‘시즌 2’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