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life 제791호 (21.08.10) BOOK

2021. 8. 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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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는 인류에 대한 질문에 답하다 『인류, 이주, 생존』

소니아 샤 지음 / 성원 옮김 / 메디치미디어 펴냄
인도계 미국 이민자 출신의 부모를 둔 소니아 샤는 뉴욕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으로 살았음에도 그의 검은 머리카락과 갈색 피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특이한 존재로 만들게 했다. 그리고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그는 두 아이가 거주 지역 주민들의 인종에 대한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답습하는 것을 보면서 이주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

이민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지만, 자신을 특이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과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그로 하여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이동·이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왜 인류는 다른 국가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소니아 샤는 ‘장피에르 가족’의 목숨을 건 험난한 이주 여정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에서 회계사 교육을 받은 장피에르는 아내와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는 이민 행렬에 몸을 실었다. 콜롬비아 항구마을에서 다른 이주자 100명과 함께 출발한 장피에르 가족은 배로 콜롬비아와 파나마의 국경지역인, 도로도 없는 다리엔 정글에 도착한다. 미로 같은 야생의 정글에서 낭떠러지를 피해 걸으며 때로 강도와 마약 밀수업자의 공격을 받았고 밤에는 뱀과 다른 동물을 피해 불편함 잠을 자야 했다. 식수가 부족해 소변을 받아 마시면서 버텨야 했다. 가까스로 정글을 벗어난 그들은 파나마에서 며칠간 텐트에서 지내면서 앞으로 이어질 멕시코를 지나 미국 국경을 건널 때까지 수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대비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 비정부기구 관리자로 일한 굴람 하크야도 탈레반 반란군을 피해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산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다시 이란으로 이동하면서 아내는 쇼크로, 한 아들은 심한 탈수로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렇게 터키에 도착한 그들은 밀수업자를 통해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도착했고 다시 최종 목적지인 독일로 가기 위한 여정을 계획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장피에르 가족과 하크야 가족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살고자 떠나는 그들의 여정은 도처에 죽음을 복선처럼 깔고 있다. 장피에르 가족과 함께 이민 행렬에 오른 100명 중에서 다리엔 정글을 통과한 사람은 불과 15명 남짓. 목숨을 건 여정 끝에 목표한 곳에 도착해도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이주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가 여전히 그들을 극으로 내몰고 있다.

수 세기 동안 우리는 이주가 본능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그것을 공포의 조짐이라고 악마화하고 비정상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소니아 샤는 “이주는 환경변화에 대한 아주 오래된 대응이자 숨쉬기만큼이나 필수적인 생물학적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러 근거를 통해 인류의 이주가 소위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우려하는 ‘사회 파괴’ 만큼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내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나의 이야기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펴냄
한국 문학이 손꼽아 기다려온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 나왔다. 이혼의 상처에서 벗어나려 서울을 떠나 동해의 소도시 ‘희령’으로 온 지연의 이야기와, 지연이 할머니한테서 듣는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자신의 이야기를 두 축으로 삼고, 할머니의 딸이자 지연의 엄마인 미선의 이야기가 더해져 여성 4대의 서사를 좇는 작품이다.

소설은 지연이 희령에서 새로운 생활을 이어나가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와 할머니에게 전해듣는 과거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밝은 밤’은 두 이야기의 시간을 오가며 사진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오래전 사람들을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인물로 그려냄으로써 그들을 현재에 다시 살려낸다. 백정의 딸로 태어나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하던 증조할머니가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처음으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은 1930년대라는 시간을 벗어나 현재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연에게로 흘러들고, 팔순을 앞둔 할머니는 지연의 이야기를 통과하면서 순한 아기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렇게 인물들은 현재의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수많은 ‘나’를 간직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최은영은 소설이 지닌 고유의 힘을 깊이 신뢰하는 정공법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하게 내디디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로 흘러가는 마음의 물길을 그려나간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91호 (21.08.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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