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할머니와 화투 친 간호사..그를 향한 찬사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오늘의 일상이 가능한 건 당신들 덕분입니다. 우리 모두의 영웅, 감사합니다"
'방호복을 입은 채 백발의 환자와 화투를 치는 간호사' 사진 1장의 여파는 컸다. 코로나19 장기화와 4차 대유행 속에 지치고 힘든 시민들은 잠시 불평·불만을 멈추고 현장 의료진의 희생에 고개를 숙였다. 시민들은 무더위 속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의료진을 향해 찬사와 감사 인사를 건넸다.
4차 대유행이 전국적으로 진행되며 지친 시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장면은 의료진 1명이 병상에 앉아 할머니와 화투를 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사진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 1명은 할머니 맞은 편에 앉아 화투패를 들고 있었고, 할머니는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대결에 집중하고 있었다.
4일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이 사진은 올해 협회가 공모한 '제2차 간호사 현장 수기·사진전'에 출품된 것이다. 사진 속 의료진은 삼육서울병원 간호사 이수련(29)씨다.
이씨와 함께 화투 대결을 펼친 박아무개(93)씨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지난해 8월1일 삼육서울병원 음압병상에 입원했다. 중증도 치매 환자였던 박씨는 요양원에서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할머니는 고열 등으로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할머니를 위해 코로나19 병동에 있던 간호사들이 뭉쳤다. 병동에 있던 10여 명의 간호사들은 낙상 위험이 있는 침대의 프레임을 걷고 병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았다. 거동이 불편하고 낯선 환경에 거부감이 있는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병실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바닥 매트리스는 의료진에게는 최악의 환경이다. 감염 위험이 있는 코로나19 병동에서 방호복을 입고 진료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무릎을 꿇고 환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각종 의료 처치는 물론 기저귀 등도 갈아야하는 간호들에겐 고역인 셈이다. 그러나 의료진은 이같은 불편을 기꺼이 감수했다.
의료진은 고령인 할머니가 격리병실에서 가족들과 단절된 채 있어야 하는 '외로움'에도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를 함께 돌봤던 양소연(33) 간호사는 "치매에 보호자도 없이 홀로 병실에 계시는 게 너무 위험해 보였고, 입원 이튿날부터 놀이 시간을 만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진 속 주인공인 이수련 간호사도 "격리병상에서 환자가 말을 나눌 사람은 간호사밖에 없지 않느냐"며 "계속 졸기만 하는 할머니를 깨우고 달래 기운을 차리게 하는 방법이 없을지 궁리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홀로 병실에 있는 할머니의 적적함을 달래고 동시에 재활치료도 병행할 수 있도록 그림 치료와 화투를 이용한 그림 맞추기 등을 적극 활용했다. 간호사들은 할머니와 가족들의 영상통화를 주선하기도 했다. 의료진의 보살핌 덕분에 할머니는 입원 기간 코로나19 중등도에서 경증으로 호전됐고 최종 '음성' 판정을 받은 뒤 보름 만에 퇴원했다.
이 간호사는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저도 감염될까 두려운 일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들을 안심하게 배려하고, 잘 치료받고 퇴원하시도록 돌봐주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병동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에 대해 "입원 환자 중 3명이 사망하셨다. 손 한번 잡아보지도 못하고 유리창 너머로 가족들과 이별하는 광경"이라며 홀로 사투를 벌이다 생을 달리한 환자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간호사의 사진이 큰 반향을 불러온 데 대해 "두터운 방호복을 입고 숨쉬기 힘들고 땀이 비 오듯 하는데도 환자를 정성껏 위로하고 돌보는 광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호사의 모습"이라며 "코로나에 지친 모든 국민들에게 위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확인한 시민들은 온라인 댓글 등을 통해 감사함을 전했다. 한 시민은 "거리두기 강화로 휴가도 취소하고 속상한 마음이 컸는데, 1년 넘게 사투를 벌여 온 의료진은 얼마나 힘들까 싶어 투정부린 제가 부끄러워졌다"며 "K-방역의 일등공신은 현장 의료진"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의료진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개인 방역을 더욱 철저히 하자는 당부도 이어졌다. "모두 힘들지만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은 접어두자"며 "방역복에 온 몸이 땀에 젖고 양손의 피부가 벗겨지도록 희생하는 의료진을 내 가족처럼 생각해 달라"는 반응도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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