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변화'와 '보완'에 직면한 SK, 중심에 선 전희철 신임 감독

손동환 2021. 8. 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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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SK는 2011년부터 문경은 감독(현 SK 기술자문) 체제로 선수단을 운영했다. 2012~2013 시즌에는 정규리그 최다승 타이 기록(44승)을 수립했고, 2017~2018 시즌에는 1999~2000 시즌 이후 18년 만에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했다.
SK만의 컬러를 갖게 된 것. 그게 문경은 감독 체제의 큰 성과였다. 하지만 SK는 2020~2021 시즌 종료 후 변화를 선택했다. 선수와 2군 감독, 구단 운영팀장을 거쳐 수석코치로 SK에만 10년 넘게 있었던 전희철을 신임 감독으로 선택했다.
전희철 신임 감독은 ‘당황’ 속에 새로운 직무를 맡았다. 하지만 팀에 오래 있었기에, 팀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목표를 수립하는 것 또한 수월했다. ‘변화’와 ‘보완’에 직면한 SK의 새로운 중심이 됐다.
(본 인터뷰는 2021년 6월 24일 오후 1시에 진행됐다)

예기치 못한 은퇴, 기대 이상의 경험치
‘선수 전희철’을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선수 전희철’의 가치는 높았고, ‘선수 전희철’을 향한 가치는 높았다. 한국 남자농구 부흥의 핵심 멤버이자 한국 남자농구를 상징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전희철이 2007~2008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한국 나이로 만 35세도 되지 않아 코트를 떠났다. 무릎 통증을 고질적으로 안고 있었다고는 하나, 너무 이른 이별이었다.
서울 SK에서 은퇴한 전희철은 2008~2009 시즌부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직함으로 여러 가지 업무를 했고, 여러 가지 업무를 통해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너무 빨리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은퇴한 다른 선수들보다 더 빨리 다양한 경험치를 쌓을 수 있었다.

너무 이른 시기에 은퇴를 하셨습니다.
2007년 여름 때 몸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몸이 너무 좋을 때, 다치더라고요.(웃음) 처음에는 무릎 부상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허벅지 위쪽 근육이 10cm 이상이 찢어졌더라고요. 큰 부상이었고, 경기를 많이 못 뛰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김민수(현 경희대 코치)가 SK로 선발됐어요. 저와 (김)민수의 포지션이 겹쳤고, 국내 선수 로스터도 꽉 찼죠. 구단에서는 당시에 ‘너와 같이 가는 게 어려울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SK가 저한테 영구 결번과 2군 감독직을 제시했어요. ‘은퇴’라는 단어도 예기치 못했는데, SK에서 제시한 조건 역시 예상하지 못했어요. 제 인생에서 이렇게 큰 고민을 처음 해본 것 같아요.
고민 끝에 결국 은퇴를 했어요. 어려운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때의 결정으로 인해, 지도자 수업을 일찍부터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은퇴 직후, 2군 감독과 전력분석 업무를 맡았습니다.
2군 감독을 맡았지만, 전력분석팀의 인원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2군 감독직과 전력분석원 업무를 겸했습니다. 2군 리그가 마침 시작되는 시기였고 전력분석도 초창기여서, 두 군데 모두 인원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2군 감독이라고 하지만, 2군 선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5대5로 팀 훈련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죠. 3~4명 정도 밖에 없어서, 개인 훈련 위주로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선수들도 지루한 면이 있었을 거예요.
저 역시 쉴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습니다. 2군 선수들을 훈련시키면서, 1군 선수들 훈련에도 참가했거든요. 오전 9시면 체육관으로 나가면, 저녁 9시에야 신발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고생을 정말 많이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때의 시간이 저에게 많은 공부가 된 것 같아요.
1년 후에는 구단 운영팀장을 맡으셨습니다.
1군 코치와 2군 코치를 넘나들다가, 구단 운영팀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선수단 관련 사항을 도맡는 업무였죠. 다행히 엑셀이나 PPT 등 컴퓨터를 잘 사용하는 편이라, 문서 관련 업무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선수 시절에는 모든 걸 받기만 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았고요. 그렇지만 운영팀장을 하면서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또, 선수들이 1경기를 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고생하는지 알게 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한 경기를 위해 고생하는데, 제가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룹에서 하는 교육도 받아봤습니다. 그룹에서 받은 교육을 선수들한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농구단에만 있으면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없지만, 그룹에서 하는 교육은 지도자나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또, 선수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살다가, 선수들의 뒤에서 행정 업무를 했습니다. 선수단 관련 스폰서를 어떻게 따내야 하고, 농구단 업무와 관련해 여러 사람들과 만났죠. 앞서 말씀드렸지만, 너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됐고, 까칠하다는 이미지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운영팀장직을 맡았던 10~11개월 동안, 너무 많은 걸 배운 것 같아요. 제 인생에 가장 많은 배움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미국 연수도 다녀오셨습니다.
이상윤 감독님(현 해설위원)이 SK에 계셨을 때, 맥콘이라는 코치님이 계셨습니다,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 산하에 있는 D리그(현 NBA G리그) 팀에서 감독을 맡으셨는데, 저희 사무국과 맥콘 코치님께서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미국에서 운 좋게 객원 코치라는 직함을 맡았습니다. 보통 객원 코치는 경기 때 벤치가 아닌 다른 곳에 앉아있는데, 저는 선수들한테 코칭도 하고 벤치에도 앉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우리 나라 최초로 NBA D리그 벤치에 앉은 코치일 거예요. 3개월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견문을 넓힌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시작은 시련으로, 시련은 정상으로
SK에서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했던 전희철은 2011~2012 시즌 SK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문경은 감독대행(현 SK 기술자문)의 오른팔을 맡았다.
2012~2013 시즌부터 성과를 냈다. 화려하지만 모래알 조직력으로 저평가 받았던 SK를 정규리그 최다승 타이 기록 팀(44승)으로 만들었다. SK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큰 힘을 실었다.
한 번 흐름을 탄 SK는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이 됐다. 2017~2018 시즌에는 챔피언 결정전 우승 팀으로 거듭났다. 1999~2000 시즌 이후 18년 만의 감격.
SK는 여러 시련을 겪었다. 그 결과, 우승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모두의 노력이 결합된 성과였다. 코치를 맡았던 전희철의 몫도 분명히 컸다.

2011년 4월 문경은 감독대행의 오른팔이 됐습니다.
지금은 기술자문이 되신 문경은 감독대행께서 취임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지도자 경험이 많지 않으셨습니다. 선수 은퇴 후 전력분석과 2군 코치를 잠깐 맡았다가, 감독대행으로 취임하셨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많은 걸 물어보셨습니다. 훈련 스케줄과 팀 방향, 선수 육성 등 여러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같이 술자리도 많이 했고요.(웃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코치를 오래 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문경은 감독대행보다 지도자 생활을 먼저 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문경은 감독대행한테 많은 걸 여쭤보고, 많은 힘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많은 걸 문경은 감독대행한테 의지했습니다.
문경은 감독대행이 2012~2013 시즌 정식 감독이 됐고, SK는 당시 정규리그 최다승 타이 기록(44승)이라는 성과를 냈습니다.
‘지도자 초짜인 문경은과 전희철이 뭐하겠냐. 스타 한 명이 지도자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2명의 스타가 선수들을 잘 지도하겠느냐. 또, 전희철은 성격도 더럽다는데...(웃음)’ 등 주변의 우려가 컸습니다. 저희 역시 이 정도의 결과를 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2012~2013 시즌 역시 준비 과정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미흡한 부분이 물론 있었지만, 사소한 요소부터 세심히 신경 쓰고 준비했거든요.
게다가 코칭스태프 모두 ‘초심’으로 임했기에, 준비에 더 신경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된 지금도 그 마음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또, 운도 따라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2012년 외국 선수 드래프트 때, 애런 헤인즈가 저희 순번까지 내려왔고, 코트니 심스가 트레이드로 합류한 것도 운이 따랐기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운이 과정보다 앞서면 안 됩니다.
정규리그 성적은 좋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 점은 당시에 저희 팀을 맡으신 문경은 감독님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그 때 코치였기에, 코치로서의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먼저 2012~2013 시즌 챔피언 결정전(SK는 당시 모비스에 0-4로 완패했다)으로 돌아간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준비가 약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확실한 포인트를 잡지 못했다고 생각했죠. 반대로, 유재학 감독님께서는 김선형과 애런 헤인즈를 포인트로 잡았습니다. 정규리그와는 다르게 저희를 공략하려고 하셨죠. 그렇지만 저희는 정규리그와 다르지 않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또, 플레이오프에서는 분위기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위바위보도 먼저 이기는 사람이 유리한 것처럼, 플레이오프 역시 1차전을 따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때는 그런 분위기 싸움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플레이오프에서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2017~2018 시즌 챔피언 결정전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상대가 원주 DB였습니다. 자신이 있었는데도, 2연패를 당하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12~2013 시즌 챔피언 결정전 때 0-4로 져본 경험이 있어서, 편한 마음도 있었습니다.(웃음) 또, 홈에서 열리는 3차전만 이긴다면, 분위기를 원점으로 끌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거기에 확실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이전의 플레이오프와는 달리, 포인트를 확실히 잡았거든요. ‘디온테 버튼 봉쇄’를 포인트로 삼았죠. 버튼의 득점을 10점 내외로 줄여보려고 했고, 시즌과는 다른 수비 형태(최원혁이 버튼을 1대1로 막고, 나머지 선수들은 지역방어 혹은 로테이션 수비를 펼쳤다. 전희철 감독은 이를 ‘박스 앤드 원’으로 표현했다)로 버튼을 막아봤습니다. 물론, 1~2차전 때도 버튼 수비를 준비해서 활용했지만, 3차전 이후에는 그 포인트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최)원혁이가 많이 떴죠.(웃음)
공격 전략 역시 이전과 달랐습니다. 메이스가 헤인즈의 부상 공백을 잘 메워준 것도 컸지만, 화이트에게 DB 국내 선수와 1대1을 하도록 주문했습니다. 우리가 버튼을 막기 어렵듯, DB도 화이트 수비가 어렵다고 판단했거든요. 화이트가 그 전략을 잘 이행했죠. 그런 요소 또한 저희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10명에게만 주어진 자리, 그 자리에 오른 전희철
모든 지도자들이 꿈꾸는 자리는 결국 남자프로농구 감독이다. 하지만 그 자리는 너무나 한정됐다. 10개 구단, 즉 10명의 농구인한테만 주어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KBL 10개 구단의 감독이 되는 건 농구인한테 영광스러운 일이다.
전희철은 지난 5월 SK의 감독이 됐다. 아무나 되기 힘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전희철은 감독 선임 당시 “당황스럽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기쁨 대신 미안함 속에 감독직을 시작해야 했다.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희철 감독에게 이를 물었다. 아래와 같이 이유를 설명했다. 그 이유를 듣고 나서, 전희철 감독이 당황했던 이유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2021~2022 시즌부터 SK의 감독이 되셨습니다.
예전처럼 비시즌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구단에서 갑자기 ‘보직 변경’을 통보하셨습니다.(문경은 감독은 기술자문이 됐고, 전희철 수석코치는 감독으로 승격했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당황했습니다. 저희 팀이 2020~2021 시즌에는 좋지 않았지만, 문경은 감독님의 계약 기간이 1년 남아있었거든요.
‘보직 변경’ 통보를 받고, 30분 동안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랐죠. 전혀 예측을 못한 상황이었기에, 더 믿기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문경은 감독님한테 너무 죄송했습니다. 제가 몰아낸 건 아니지만, ‘내가 몰아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또, 수석코치로서 팀에 좋은 성적을 안기지 못했는데, 그런 제가 감독님을 대신한다는 것도 죄송스러웠습니다. 감독님한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고심하던 끝에 감독님을 찾았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렵게 말씀을 드렸고, 문경은 감독님께서 ‘너가 미안할 게 뭐가 있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온 것보단 낫잖아. 너가 하는 게 낫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나한테 신경 안 써도 된다. 너의 임무는 팀을 잘 만드는 거다’며 위로해주셨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편해지긴 했지만, 그 때를 돌아보면 아직도 당황스러워요.
코치 생활을 오래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감독’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의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여자 팀에서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남자 팀에서는 제의를 받진 않았지만, 물망에 올랐던 걸로 알고 있고요. 주변에서도 ‘이제는 감독을 해야 하지 않느냐’, ‘사실상 감독급이다’, ‘이제는 감독을 해야 하는 나이다’ 등 여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모든 지도자의 목표가 감독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독이라는 자리를 쫓아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코치로서 경험을 더 쌓고 공부를 더 하고,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감독은 늦게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요. 코치로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은 게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하시는 말씀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 저는 은퇴 후 전력분석원과 운영팀장 등 코치가 아닌 다른 경험도 많이 했습니다. 그 때 느낀 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였습니다.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제가 다른 팀으로 가려면, SK를 중간에 나와야 했습니다.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희한하게도 기로에 설 때마다 SK를 선택했습니다. 문경은 감독님과 함께 한다는 게 너무 좋았고, SK에서 코치를 하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돌아보면, ‘내가 참 의리는 있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감독에 부임한 지 오래 되신 건 아니지만, 감독과 코치의 차이를 분명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수석코치를 할 때, 문경은 감독님께서 어떤 사항을 결정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옆에서 ‘너무 오랫동안 고민하지 마세요. 어차피 첫 선택이 맞는 거잖아요’나 ‘너무 선택장애가 있는 거 아니시냐’는 농담을 했습니다.(웃음) 감독님께서 선택을 위해 고민하실 때, 저는 옆에서 그 고민을 덜어드리려고 했습니다.
감독이 되고 보니, 그런 점이 이해가 됐습니다. 제가 뭔가를 결정하면, 거기에 관한 내용이 확정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는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에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더 신중해져야 한다고도 생각했고요. 또, 시즌에 돌입하면, 부담감이 더 커질 거예요. 그런 요소들이 이전과의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기는 농구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SK는 ‘스포테인먼트’라는 단어를 만든 구단이다. 스포츠에 엔터테인먼트라는 요소를 추가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2010년대에는 ‘성적’까지 내면서, SK는 ‘경기력’과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구단이 됐다.
SK에만 10년 넘게 있었던 전희철 감독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팬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고민 끝에 가장 높게 측정한 가치는 ‘승리’였다. 이기는 것만큼 팬을 기쁘게 하는 요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기는 농구’를 강조했다.

전희철 감독님이 이끌 SK는 어떤 팀이 될지 궁금합니다.
저희 팀은 (김)선형이를 중심으로 빠른 농구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팀 역시 ‘SK의 스피드를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래서 ‘빠른 농구’라는 컬러만큼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농구를 할 때는, SK의 색깔이 많이 나옵니다. 또, 저희가 빠른 농구를 했을 때 많이 이겼고요. 그렇지만 스피드가 나오지 않을 때, 지는 경기가 많았습니다. 스피드를 내지 못할 때, 외국 선수에게 의존하거나 서있는 농구를 했고요.
이제는 그러면 안 됩니다. 저희가 아직 농구 훈련에 돌입한 건 아니지만, 2차 속공과 거기서 나오는 찬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감독 부임 첫 해 때 모든 걸 다할 수는 없겠지만, 모션 오펜스처럼 다 같이 움직이는 농구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비가 잘못됐을 때,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에게 핑계를 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수비에 관한 약속을 정해야 합니다. 그런 약속들이 잘 이뤄질 때, 수비가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많은 감독님들께서 기본기를 강조하십니다. 그렇지만 기본기는 그야말로 기본입니다. 프로 선수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요소입니다. 그래서 기본을 강하게 하겠다기보다, ‘기본은 깔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선수들에게 심어줄 예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요소에 맞는 훈련을 많이 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면, 수비 자세나 스크린 정확히 거는 것, 게임 자세 등 프로 선수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을 강하게 심어놓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요소들을 종합해서, ‘SK가 변했네. 혹은 예전이랑 달라졌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문경은 감독님께서 예전에 잘못했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똑같은 농구를 하면 재미가 없기에,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전과 큰 틀은 비슷하게 하되, 세부 컬러를 이전과 다르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어떤 감독이 되고 싶으신가요?
먼저 ‘전희철 감독님께서 정말 잘 가르쳐주신다. 간지러운 데를 잘 긁어주신다. 내가 몰랐던 걸 알게 해주셨다’는 말을 선수들에게 듣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할 때는 하고, 놀 때는 놀자’는 주의입니다. 선수들한테도 ‘훈련과 생활을 연결시키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선수들 모두 사생활에서 기쁜 게 있고 힘든 게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코트에서는 사생활과 관련된 모든 걸 잊어야 합니다. 코트에서는 농구에만 100% 전념해야 합니다. 농구에만 100% 집중해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코트는 선수들에게 일터이자 전쟁터입니다. 선수들이 코트를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의식이 선수들의 몸에 밴다면, 선수들은 훈련과 경기 모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선수들과 팀 모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먼저 변화된 SK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팀으로도 만들고 싶습니다. 팬들께서 기대도 하실 거고 우려도 하실 건데, 감독으로서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도록 준비를 철저히 하겠습니다.
재미가 없어도, 이기는 농구를 하고 싶어요.(웃음) 팬들한테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팬들께서도 저희 농구를 매력적으로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기는 농구로 팬들한테 조금 더 다가서겠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SK 선수들에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김우석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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