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선흘곶자왈 동백동산의 농촌학교, 학생을 품다

허호준 2021. 7. 2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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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르습지 동백동산 활용한 건강생태교육 자리매김
다른 지방 이주민 늘며 7년 새 학생 수 21명→110명
지난 15일 학교 수업이 끝난 제주시 조천읍 선흘분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다. 허호준 기자

“공 잘 던져!” “알았어.” “근데 도루가 뭐야?” “나중에 가르쳐줄게.”

햇빛에 그을린 초등학교 3학년생이 프로야구선수처럼 한쪽 발을 높게 들었다 내리면서 힘껏 공을 던졌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손뼉 치고 푸른 잔디운동장을 내달렸다.

지난 15일 오후 3시, 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따라 들어가자 마을 뒤편에 숨었던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분교장 안미영)가 나타났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요란했다. 할머니 품처럼 나지막한 학교 건물 앞 키 큰 후박나무를 둘러싼 쉼터에서는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가방을 내던지고 땀 흘리고 있었다.

제주의 중산간 마을인 선흘1리의 선흘곶자왈은 난대상록활엽수림이 뒤덮여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선흘곶자왈 동백동산은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동산으로 불린다. 2010년 11월 동백동산(59만㎡)이 람사르습지로 지정되고 2014년에는 세계지질공원 대표 명소로 지정됐다.

“학교가 좋고 선생님이 좋아요. 푸른 자연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뛰놀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필리핀과 서울에서 살다가 제주도에 온 지 6년이 됐다는 5학년 이시은군이 학교를 나오다 이렇게 말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온 6학년 강하라군은 “동백동산 습지센터에서 곤충과 식물들을 배웠다”고 엄지손가락을 펼쳤다.

15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선흘분교 학생들이 학교 건물 앞 키 큰 후박나무 아래 쉼터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허호준 기자

학교 운동장 너머로 광활한 원시림과 같은 곶자왈이 한눈에 들어왔다. 선흘분교의 놀이터 동백동산은 선흘분교를 품고 있었다. 이 학교가 내년 3월 본교로 승격된다. 선흘분교장 본교 추진위원회(위원장 부상철 선흘1리장)는 지난 6월15일 제주도교육청에 본교 승격을 공식 요청했다. 학생이 없어 조용하던 마을이 아이들의 생기발랄한 목소리에 활기를 띠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개교한 학교는 4·3 때 온 마을이 불타 1년 가까이 폐교되기도 했다. 1953년 초등학교로 승격됐지만 학생 수 감소로 1995년 분교장으로 개편됐고, 2015년엔 재학생이 21명에 지나지 않아 폐교 논의까지 나왔다.

강은주 도교육청 장학사는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마을과 학교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주민들이 학교를 살리자고 요청해 건강생태학교 지정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에 도교육청은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2015년 선흘분교를 ‘건강생태학교’로 지정하고 람사르습지인 동백동산을 기반으로 건강생태교육을 추진했다. 한달에 한번 3시간씩 운영하는 ‘건강생태교육의 날’에는 교사와 동백동산 습지센터 해설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활동한다. 주당 1시간 운동장에서 맨발로 걷고 뛰어노는 ‘생태놀이 프로그램’도 있다.

안미영 분교장은 “동백동산에서 동식물과 습지 서식 생물을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 국어시간에는 동백동산에서 책 읽기, 시 쓰기 등도 한다. 가까운 곳에 훌륭한 자원이 있어 이를 활용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분교 후박나무 쉼터와 연못에서 학생들이 놀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 이주 열풍도 학교 살리기에 한몫 거들었다. 선흘1리가 생태마을로 알려지고, 이 학교의 생태학습이 알려지면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이주민들이 알음알음 마을을 찾으면서 학생 수가 불어났다. 2015년 21명에서 2017년 54명, 2019년 72명, 2020년 92명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110명이 재학 중이다. 이들 가운데 90%는 다른 시·도에서 전입해 온 이주민 자녀들이다.

“선생님이 새소리가 나면 무슨 새인지 알아맞혀 보라거나 동식물이 그려진 카드를 주면서 같은 동식물을 찾아보라고 하지요. 친구들과 숲속을 찾아다니면서 발견하면 카드에 표시해요.” 4학년 김성규군도 동백동산에서 이뤄지는 생태학습이 가장 즐겁다고 했다.

후박나무 아래서 놀던 3학년 홍지환군은 “서울에서는 아파트에서 뛰어놀 수가 없어서 너무 불편했다. 여기서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제주에서만 자라는 제주고사리삼이나 두점박이사슴벌레 같은 멸종위기 동식물도 볼 수 있어 신난다”고 말했다.

학교 건물 뒤쪽으로 들어가자 ‘선흘 생태농장’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고 붉은 꽃망울이 보이는 샐비어 옆 우리 속에서 오리와 닭이 한가롭게 꼬리를 흔들며 먹이 찾기에 열중이었다. 그 옆에는 학년별 텃밭에서 고추와 옥수수, 방울토마토 등이 자라고 있었다.

본교 승격 추진위원장인 부상철 선흘1리장은 “학교와 동백동산을 토대로 학교와 마을이 생태적 공동 성장을 이룬 결실이다”라고 했다. 이석문 제주교육감은 “선흘분교장은 21세기형 작은 학교 살리기 성공 모형을 보여준다. 선흘분교장이 미래 가치인 생태·환경·건강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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