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대-격정은 없지만 평온한 변화, 파스텔풍의 골목 [골목내시경]

2021. 7. 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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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졌다. ‘별이 떨어진 자리’라는 뜻의 그 이름은 얼핏 모르고 지나치기 좋아 요즘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은 강감찬이란 이름을 함께 써두고 있다. 남부순환로는 강감찬대로라는 명예 이름표를 달았다. 낙성대역을 나와 샛길로 접어들면 서울대학교를 돌아오는 관악 02번 마을버스가 있다. 역을 나와 그 골목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가는 이들은 서울대학생인 경우가 많다. 낙성대 인근은 그만큼 서울대와 관련된 사람과 기관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대생들은 낙성대학교 다닌다는 썰렁한 농담도 한다. 동네 이름은 봉천동이지만 대부분은 그냥 낙성대를 마을 이름인 양 불렀다.

인근 서울대생뿐 아니라 젊은 유람객들도 샤로수길을 자주 찾는다.


지하철 낙성대역과 서울대입구역을 잇는 권역의 골목길은 샤로수길로 유명해졌다. 서울대가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학생들이 하교 후에 모여드는 골목에 통째로 주점과 식당들이 밀집해 있어 젊은 명소가 됐다. 근처에 있는 녹두거리도 학생들이 주로 모이지만, 샤로수길은 서울대생 말고도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곳이다.

서울대생들의 명소가 된 ‘샤로수길’

낙성대가 관악산과 붙어 있어 역 구내에는 등산복을 입은 중장년층을 흔히 볼 수 있다. 밖으로 나가기 전 남녀가 낯을 가리며 일행을 기다리는 풍경도 볼 수 있다. 등산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삼삼오오 모여 곁눈질로 서로를 살피는 모습은 한눈에도 웃음이 나온다. 연심에는 노소가 없는 법이다. 동네 주민은 “길이 잘 나서 목에 수건 하나 걸치고 설렁설렁 올라가도 되는데 요란하기는 하다”고 웃었다.

낙성대 인근 골목은 모두 관악산으로 이어진다.


이곳도 노인들이 많은 동네인 듯 간간이 온열기와 족욕기 등 노년층을 겨냥한 건강용품 전시장이 눈에 띄고 문을 닫은 대형 사우나도 보인다. 이들 모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날벼락을 맞은 곳이다. 관악산 쪽으로 더 들어가면 교수아파트도 있고 교직원 아파트도 있다.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면 지명의 유래가 된 낙성대가 보인다. 지금은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고 도서관과 전통혼례장도 들어서 있다. 시원하게 눈을 트이게 하는 관악산을 곁에 두고 있고 곳곳에 공원과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주민들이 누리는 혜택이다. 골목이 닿는 끝자락엔 대부분 관악산이 활짝 품을 내주고 있다.

낙성대가 있는 관악구 일대는 강남과 맞닿아 있지만 소위 강남 3구에는 들지 않는다. 샤로수길 인근에는 편백숲 조합주택이란 곳에서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짓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몇몇 건물은 조합에서 사들여 건물마다 표지판을 붙여두기도 했다. 곳곳에 편백숲 조합의 표식이 눈에 띈다.

샤로수길에서 인근 골목으로 상가가 확장되고 있다.


부동산에 묻자니 아파트단지 계획에 대해 반은 수긍하고 나머지는 냉소를 보냈다. 부동산 가격으로 강남 3구를 따라잡겠다는 야심 찬 기획인데 반응은 썰렁했다. 이 동네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학 진학에 학군제를 도입하면 될 것이다. 대치동에 몰린 교육열은 이 지역으로 쏠릴 테고 아마도 봉천동 일대는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럴 일은 결코 없으리라.

골목 안 풍경도 강남 3구와는 아주 달랐다. 좀더 차분한 느낌이 들고, 화려한 모습보다 보수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분위기다. 샤로수길 뒤편 주택가에 간간이 커피전문점과 디저트 가게들이 있는데, 대체로 파스텔풍의 색채와 튀지 않은 세련된 모습이다.

이곳에서 40년을 살고 있다는 부동산 주인은 “이 골목은 세가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샤로수길 쪽에서 장사하던 이들이 많이 건너온다”라고 했다. 샤로수길은 이미 명소가 되어 소위 젠트리피케이션도 있는 모양이고, 그 여파는 근처 골목으로 번져가는 형편이다.

주택가 곳곳에 색다른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보수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골목길

골목 안 오래된 주택에 색색의 칠을 해 주민 문화공간으로 꾸민 곳도 있었고, 젊은 공동주택도 눈에 띄었다. 골목의 오래된 공동주택은 최근 10년 사이에 땟물을 벗고 새로 태어난 듯 반듯하고 새로웠다.

골목 안 널찍한 놀이터엔 시끌벅적 뛰노는 아이들과 그들을 보살피는 교사들이 눈에 띈다. 바로 곁에 구립어린이집이 있고, 그곳 아이들의 놀이시간이다. 골목이 젊다고는 하지만 노인의 모습도 만만치 않게 자주 보였다. 친구와 함께 골목 안 구멍가게에서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고 있던 노인 둘은 “이곳 노인들은 한 40~50년씩은 살고 있는 것 같다. 공기 좋고 운동 삼아 산도 갈 수 있어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이 동네가 참 좋다”라고 했다. 술에 취하기엔 이른 시간인데, 노인의 얼굴은 벌써 황혼이 비쳐 있다. 늙어가니 남는 것은 가족도 아니고 함께 술 마실 수 있는 친구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가족의 마음이라면 아침부터 술잔 기울이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니 그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골목 주민은 젊은층과 노년층이 반반이다.


가게 주인은 “여긴 딱 반이다. 젊은 사람 반, 늙은 사람 반. 서로 간섭 안 하고 잘 섞여 지낸다”라고 했다. 깊숙한 동네 골목인데도 젊은이들이 즐길 만한 간식 카페도 보이고, 요즘 세태를 보여주는 듯 군데군데 ‘카드 환영’을 붙여둔 빨래방도 눈에 띈다.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직장인이 많다는데, 아마도 상대적으로 싼 월세와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동네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낙성대역에서 서울대입구역까지 골목길엔 전통시장을 볼 수 없다. 대신 샤로수길 인근 커다란 마트 서너곳이 시장과 대형마트의 역할을 다 해내고 있다. 참외와 수박 같은 제철과일부터 요즘 한창 출하되는 하지감자까지 싱싱한 물건들이 비교적 싼 가격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가게 안은 세제와 음료수 등등 온갖 물건들이 대형마트 못지않게 구색을 갖추었고 정육점과 어물전도 있어 가게 하나가 시장 골목 한곳이 하는 역할을 너끈히 해내고 있다. 채소 매대를 정리하던 종업원은 “대파 한단에 1000원이다. 얼마 전까지 금파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거저다”며 여긴 좋은 물건에 싼 가격으로 승부한다고 강조한다. 큰 가게들이 서넛 모여 있으니 그들 간의 은근한 경쟁도 있는 것 같다.

샤로수길은 젊은이의 명소가 된 지 오래다.


산자락에 잇댄 동네라 골목길은 오르락내리락 비탈을 이루고 있다. 남부순환로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모두 오르막길이고, 그 골목은 일자로 반듯하지만 굴곡은 굽이굽이 골이 깊다. 어떤 골목은 경사가 가팔라 젊은 걸음조차 한 박자 쉬었다 가는 모습도 보인다. 비탈이 거의 없는 곳까지 내려오면 샤로수길이 시작된다.

젊은 감각의 재치 있는 간판과 예전에 없던 메뉴가 이 골목 가게들을 특색 있게 만들고 있었다. 커피 한잔도 평범하지 않고 국수 한그릇도 색다른 골목이다. 골목길 곳곳에 대여섯곳의 타로점집이 숨은 듯 박혀 있다. 이 골목을 걷는 젊은 영혼을 위해 서양식 점성술사들이 문을 열어 손님을 맞고 있다. 미래는 늘 두렵고 젊음은 언제나 불안한 탓이다.

샤로수길도 그렇지만 요 근자에 젊은이들이 잘 모이는 골목길엔 그 많던 양꼬치집과 마라탕 집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베트남 쌀국수와 분짜집들이 약진하고 있다. 이 골목에도 베트남 국숫집 서너 곳이 눈에 띈다. 유행 따라 음식의 국적과 메뉴도 늘 변화하고 있다.

정오가 되면서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좌우를 살피지 않고 골목을 부지런히 걸어가는 이들은 대부분 학교로 가는 학생들이다. 역 쪽에서 거슬러와 골목을 느릿느릿 걷는 쌍쌍의 젊은이들은 유람객들인 것이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신기한 눈빛으로 가게를 살피고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이들은 샤로수길의 명성을 즐기러온 이들이다. 더 바쁜 젊은 친구들은 전동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씽씽 골목을 날아간다.

시장대신 중형 마트가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


국숫집 주인은 “질병 영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다른 곳보다는 덜한 것 같다. 문 닫는 곳도 별로 없고 매상도 살짝 줄었지만 장사 못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타격이 다른 곳보다는 적어 그나마 가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류배달을 하는 업자는 “여긴 어느 순간부터 크게 변하지 않는다. 주인도 그렇고 가게도 꽤 진득이 장사하는 편이다”라고 골목 분위기를 전한다.

색색이 다른 골목길 안 풍경

한줄로 난 골목이지만 분위기는 색색이 달랐다. 조용한 주택가도 있고, 은근히 상가로 변해가는 골목도 있다. 이미 명소가 된 곳도 있다. 한 권역의 골목이 이리 다른 분위기인 것도 낙성대와 서울대입구역 인근 지역의 색다른 모습이다.

이 지역의 골목을 걷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 잘 자리 잡은 중산층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큰 화려함과 꾸밈없이 자기 색과 영역을 잘 지켜온 세대가 이 지역 주민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 안 정경과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집들이 보여주는 느낌은 그랬다. 자기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며 큰 무리 없이 살아온, 집 하나는 갖고 노년을 위한 연금도 준비된, 부자는 아니지만 궁핍하지도 않은 그런 이들이 사는 곳일 것이라는 느낌을 낙성대 주변 골목에서 얻는다.

사람에게는 체취가 있고 꽃에는 향기가 있다. 골목에도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낙성대 인근 골목의 분위기는 튀지 않으면서도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골목 안 간판들마저 원색은 적어 중간색이 대부분이고, 색깔과 모양은 새롭고 세련됐다. 이곳에서 사는 이들과 찾는 사람들의 성향이 아마도 그런 것을 원하는 증거이다. 젊고 활기차면서 세련되고 즐거운 골목을 걷고 싶다면 샤로수길과 그 인근을 걸어보라. 격정은 없어도 평온한 변화의 모습이 그곳에 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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