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의 '마지막 이사'를 도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컴컴한 현관에 들어섰을 때, 그 집의 숨이 끊어져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난달 21일, 지병이 있던 집주인은 TV를 보다 소파에서 갑작스레 숨졌다. 10여 일이 지난 뒤에야 발견됐다. 고이 하늘로 보내줬으나, 고인의 짐은 미처 챙겨주지 못했다. 핸드폰 번호 뒷자리가 '1004(천사)'이면서, 검은 옷을 입은 이들과 함께 거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 널린 담뱃갑과 라이터, 빈 사이다병, 소파엔 잘린 옷가지와 핸드폰. 그리고 온 집에 짙게 밴 건, 생경하고 아찔한 죽음의 내음. 그 모든 광경에 아득해졌으나, 검은 사내들은 이미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110리터짜리 검은 비닐에 물건을 담고, 검게 물든 바닥에 특수용액을 뿌리고, 구더기를 청소기로 세차게 빨아들였다.
섭씨 33도. 이 한여름에도 누군가는 홀로 죽을 것이고, 그의 죽음은 쉬이 발견하기 힘들 것이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집엔 진한 흔적이 남을 터였다.
생(生)이 끝날 때의 그 복잡한 잔상들은 누가 다 정리하고 있을까. 짐작만해도 버거운 그 수고로움을 잘 기록해서 알리고 싶었다. 드라마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로. 20일 오전 9시, 경기도 동두천을 찾아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47), 직원 박용철씨와 함께 세상을 떠난 이의 집 청소를 했다.
그 안에서 냄새에 갇힌 채 청소를 시작했다. 그걸 '특수청소'라 부르는 이유를 금세 알았다. 고온이라 더 심한 기름 찌든 내, 피와 단백질이 썩어 뒤섞여 밴 진한 검갈색빛의 잔재, 벽까지 타고 올라온 구더기의 흔적. 그건 걸레질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 닦이는 게 아녔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새별씨가 기름을 분해하는 용액을 넓게 뿌렸다. 잠시 두자 거품 같은 게 생겼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천으로 검은 얼룩을 닦았다. 부패해 굳어버린 것 같던 흔적들이 스르르 지워지기 시작했다. 뿌리고 멈추고 지우는 작업이 이어졌다. 금세 무릎이 아파왔다. 새별씨는 그래서 '무릎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그래서 일할 때 혼잣말하듯, 고인을 향한 얘길 많이 한다. 그 죽음이 안타까울 땐 잔소리도 한다. "선생님, 왜 이러셨어요, 왜 이렇게 하고 지내셨어요" 같은 거다. 이날도 그는 고인에게 잔소릴 많이 하고 싶었으나 삼켰다고 했다. 소화기 관련 약봉지가 있는데도, 담뱃갑과 탄산음료가 많이 보여서.
어떤 집에 가면, 그가 죽을 수밖에 없던 이유가 보인다. 새별씨는 "고인의 집에서 많게는 소주병 2000개까지 빼 봤다"고 했다. 방의 절반이 술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이 안 열릴 정도였다. 단체로 함께 생을 끊었다는 곳도 가봤다. 거기선 로또가 많이 나왔다. 그런 곳에서 일하고 오면 씁쓸하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또 다른 현장에선 살려고 애쓴 흔적이 묻어난다. 폐암 말기였다는 고인의 집에선, 채 다 먹지도 못한 차가버섯이 많이 나왔다. 그의 집에선 보험회사서 상담할 때 받는 기념품 같은 것들이 많이 나왔다. 고인의 딸은 "아버지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다'며, 평소에도 그런 걸 많이 줬었다"며 울었다.
침실의 걸레받이를 뜯었을 때 어떻게 들어갔나 싶을 정도로 구더기가 많이 나왔다. 새별씨는 "구더기도 살겠다고, 이렇게 도망가 숨은 것"이라고 했다. 구석구석, 필사적으로 말이다. 죽음과 삶이 뒤섞인 곳에 서서, 그리 맘이 복잡했다.
커다란 아이스박스엔 얼음물과 시원한 이온 음료가 가득 담겨 있었다. 땀을 잔뜩 흘린 터라 한 병을 벌컥벌컥 금세 비웠다. 새별씨는 "살기 위해선 억지로라도 마셔야 한다"고 했다. 돌로 된 턱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런데 웬 카메라 배터리인지, 왜 현장을 찍는지 물었다. 실은 새별씨는 유튜브를 하고 있단다.
이유가 있었다. 외국에서 시집 와서 남편에게 맞다가 생을 끊으려던 여성이 있었다.그런데 우연히 새별씨의 특수청소 영상을 봤다. '사람이 죽으니 이렇게 남는구나, 대신 잘 살아봐야 겠다', 그리 용기를 얻었다고. 새별씨는 그 여성과 다른 구독자들과 함께 쓰레기 집에서 사는 어르신을 위해 치우는 자원봉사를 했다. 그는 "1년 넘게 집 안에 있다가 처음 세상에 나와 좋다"며 웃었다.
'마지막 이사'라는 건, 옮겨갈 곳이 더는 없단 거였다. 그러니 침대나 옷장도 다 분해하고, 소파도 바깥으로 빼야 했다. 비닐 폐기물을 수도 없이 빼고 나니, 이젠 무거운 폐기물을 옮겨야 했다. 그걸 다 들고 1층까지 왔다 갔다 하느라, 숨이 턱턱 막혔다. 익숙해진 것 같았던 냄새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다시 강하게 났다. 새별씨는 "여긴 그래도 양호한 편이고, 심한 데는 쓰레기를 퍼내다시피 해야 한다"고 했다.
고단하지만 끈기 있게 청소가 이어졌다. 집이 겨우 비워지기에 '이제 깨끗한 것 아닌가' 싶었더니 아직 멀었단다. 청소기를 돌리고, 특수용액을 뿌려 흔적을 닦고, 물걸레를 빨아 닦고, 락스에 묻혀 또 닦아야 했다. 심지어 전동 드릴에 브러쉬까지 끼워서 흔적을 닦겠다고 돌렸다. 새별씨는 "짐만 꺼내고 닦으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해야할 게 많다"고 했다.
그리고 고인에 대한 예의랄까, 이젠 그가 없는 집일지라도. 집요하고 섬세한 작업에선 그런 게 물씬 느껴졌다. 새별씨는 이부자리를 반듯하게 개고, 침대 커버를 벗기고, 매트리스에 묻은 소변까지 가위로 동그랗게 오려 깨끗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버리는데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때, 그의 설명이 날 부끄럽게 했다.
"쓰레기 치우는 것처럼 하고 싶지 않아요. 최대한 깔끔하게 하려고 합니다. 대충 할 거면 왜 유품 정리사라고, 마지막 이삿짐이라고 하겠어요. 그게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지요."
새별씨가 "두통이 올라와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가 되어서야, 고인이 숨진 거실이 깨끗해졌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니 나도 머리가 띵하고 아팠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근육 경련이 온단다. 새별씨가 용철씨에게 "두통약 좀 달라"고 찾았지만, 가지고 있던 여덟 알은 모두 다 먹은 뒤였다. 만성적으로 아픈 게 두통, 허리통증, 비염 등이라고 했다.
고된 특수청소 작업이 거의 다 끝난 뒤에야, 청소하며 챙겨둔 고인의 유품이 하나씩 다시 보였다. 고인의 부친으로 보이는 흑백 사진과 서랍에서 꺼낸 가족관계증명서, 다이어리에 표시된 '멍충이 생일'과 '엄마 생신'이란 손글씨, 다 맞추지 못한 퍼즐까지도. 고인의 모친은 치매로 요양원에 있다고 해서, 김호중 사회복지사는 "고인 누나가 멀리 있는데, 전달할 수 있을지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마치 오래 죽어 있던 집이 되살아나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집엔, 다시 또 다른 생(生)이 이어지리라. 그러니 새별씨와 용철씨가 하는 일은, 죽음과 삶을 다시 잇는 일이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별씨는 "누가 들어와 살 수 있던 집이 아닌데, 새 삶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또 한 가지. 어머니와 한때 구멍가게를 했고, 치매로 요양원에 가신 뒤 홀로 남아 힘들어했으며, 다시 잘살아보려 애쓰다 갑작스레 떠난 고인. 그래서 황급히 가느라 놓고 갔던 그의 마지막 짐까지, 고이 잘 챙겨 보냈다. 용철씨는 깨끗한 집을 보며 "또 한 분을, 좋은 곳으로 보낸 것 같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어느 현장에선 '천국의 계단' 같았다는 128개 계단을 오르내리며 짐을 빼고, 자정까지 치워 50만원을 받으니 왜 이리 비싸냐며 도둑놈 소릴 듣고, 밥 먹으러 식당에 가선 이게 무슨 냄새냐며 저쪽에 앉으란 말을 듣고, 회사 역시 냄새 민원 때문에 여섯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는 이들. 쉽지 않은 일.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새별씨는 이렇게 답했다. 의외로 단순했다.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운명' 같아요. 그리고 저의 마지막은 이랬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람이었는데, 아까운 사람 하나 죽었다고. 그래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에필로그(epilogue).
청소하던 새별씨의 작업복 왼쪽 가슴에 새겨진 꽃 하나. 그게 뭐냐고 묻자 그는 '에델바이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스무 살 청년 이야기를 했다. 외국에 사는데,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 했다. 그는 꿈을 안고 한국에 왔다. 그러나 작은 여관방에서 숨졌단다. 청년의 가방 속 노트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 꿈이 도봉산을 보는 건데, 눈에 담아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 유서에 눈물이 났단다.
그 얘기를 듣고 새별씨에게 물었다. 그동안 청소했던 집을, 고인을 기억하느냐고. 새별씨가 답했다. 그걸 어떻게 잊느냐고. 다 기억하고 있다고. 저라도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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