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학대에 미쳐버린 연인, 영화·사진·뮤비로 부활
애처로운 듯 기이한 카타르시스
'라파엘전파' 밀레이 작품만 인기
사진작가 톰 헌터, 연작으로 재현
영화 '멜랑콜리아'엔 치유의 힘도
[영감의 원천] 밀레이의 ‘오필리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1601)에서 햄릿의 어머니인 덴마크 왕비가 햄릿의 연인이었던 오필리아의 죽음을 알리는 대사다. 오필리아는 순수한 마음으로 햄릿을 사랑했지만, 햄릿은 숙부와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으로 여성 혐오에 빠져 애먼 오필리아를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그러던 햄릿이 실수로 오필리아의 아버지까지 죽이자 오필리아는 그간의 고통이 폭발해 미쳐버렸고, 머리에 꽃을 꽂고 횡설수설 노래를 부르며 다니다가 이렇게 죽음에 이른 것이다.
사실 원작에서 오필리아는 나오는 장면도, 대사도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설교에 순종하고 남친의 폭언에 눈물밖에 흘리지 못하던 가부장제의 모범 규수가 미쳐버린 후 대담한 노래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울분을 드러내고 슬픈 해방구인 죽음으로 전진하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수많은 화가들이 오필리아를 화폭에 담은 이유다. 지난주 개봉한 클레어 맥카시 감독의 영화 ‘오필리아’(2018)처럼 ‘햄릿’을 비틀어 오필리아를 주인공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오필리아는 수초가 우거진 냇물에 꽃을 쥐고 누워 반쯤 떠 있다.(사진4) 수많은 오필리아 그림 중에서 19세기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그림 ‘오필리아’(1852)를 오마주한 것이다.(사진1) 이 영화뿐 아니라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주연의 고전적인 ‘햄릿’ 영화(1948)에서도 오필리아 장면은 밀레이의 그림을 따랐다. 또 ‘햄릿’과 관계없는 ‘멜랑콜리아’(2011) 같은 영화 속 장면(사진3)이나 패션 사진, 국내외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차용했다. 다른 화가들도 오필리아를 그렸는데 왜 유독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유명하고 영화로, 사진으로, 뮤비로, 끊임없이 부활하는 걸까?
젊은 화가·모델의 고생과 열정이 만든 그림
이처럼 밀레이의 ‘오필리아’에서 자연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그림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서, 오필리아의 비극을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오필리아 그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심지어 밀레이는 그림을 그릴 때 오필리아부터 그리지 않고 냇물과 수풀부터 그렸다! 당시 불과 20대 초반이었던 밀레이는 다른 젊은 화가들과 함께 반항적인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그룹을 결성한 상태였다. 미술 아카데미에서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전성기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의 화법을 따르는 대신 그 이전의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화법을 본받자는 그룹이었다. 그 특징은 인물은 소박하고 진솔하게, 수풀 등 자연 묘사는 충실한 관찰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밀레이는 1851년 여름, 런던 근교 서리(Surrey)에서 ‘오필리아’의 배경으로 적당한 강둑을 찾아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나절 짜리 사생대회가 아니라 몇 달에 걸쳐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결코 우아하고 한가로운 일이 아니었다. 밀레이는 그림을 그리며 날파리, 동네 주민, 거센 바람 등과 싸워야 했다. 그가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 일부를 보자. “이곳의 파리는 더 근육질이고 사람 살에 달려드는 걸 좋아하지요…게다가 바람이 거세서 물에 처박힐 뻔했어요. 오필리아가 진흙탕의 죽음으로 가라앉을 때 느꼈던 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오필리아와는 달리 파리떼에게 먹혀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까지 추가해서 말입니다…살인자에게 교수형 대신 이런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시켜도 되겠어요.” 이런 고생 끝에 밀레이는 마침내 극도로 핍진하고 생명력 넘치는 시냇가 풍경을 그려냈다.
다음엔 주인공 오필리아를 그릴 차례였다. 그는 자신의 런던 스튜디오로 돌아와 모델이 욕조에 담긴 물속에 누워 포즈를 취하게 했다. 모델은 모자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라파엘전파 화가들에게 스카우트되어 뮤즈로 떠오른 19살의 엘리자베스 시달. 밀레이는 빈티지 숍에서 은실 자수가 놓인 옛 드레스를 4파운드에 사서 시달에게 입혔다. 또 겨울이라 욕조 아래에 불 켠 램프를 여럿 놓아 물이 계속 따뜻하도록 했다.
그런데 하루는 램프가 평소보다 일찍 꺼져서 물이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그림에 몰두한 밀레이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시달은 얼어 죽을 지경인데도 화가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말없이 계속 포즈를 취했다. 모델로서의 직업의식뿐 아니라 시달 자신도 화가 지망생으로서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젊은 화가와 모델의 고생과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이 ‘오필리아’였던 것이다.
‘햄릿’에서 오필리아는 속물적인 아버지, 탐욕스러운 왕, 권력과 쾌락의 유혹에 약한 왕비, 냉소적인 남친에 둘러싸인, 홀로 앳된 순수함을 지닌 인물이다. 그 때문에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죽음으로 인해 그 순수는 더는 상처받지 않는 불멸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극도로 애처로우면서도 기이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래서다. 오필리아를 환영하듯 둘러싼 냇가의 수풀과 수초들이 그 역설적인 치유와 평화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최근 국내 개봉 영화도 밀레이 그림 오마주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술전문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