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강남 대단지, 맥도날드 가맹1호..철거만 남은 반포주공의 기록

허남설 기자 2021. 7. 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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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서초구 반포본동 반포주공 1단지 전경. 서울경관아카이브


한국 최초 대단지 아파트로 꼽히는 반포주공 1단지가 50여년 만에 사라진다.

서울 서초구가 지난 14일 반포주공 3주구 재건축사업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하면서 반포주공엔 이주와 철거 일정만 남았다. 다만 전세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3주구 이주는 3개월 뒤인 오는 9월부터 시작된다. 1·2·4주구는 이미 11월 마무리를 목표로 지난달부터 이주가 시작됐다. 내년 상반기까지 이주가 모두 끝나면 반포주공은 철거된다. 재건축 후엔 1~4주구를 합해 모두 73개동 7400가구 규모 아파트가 들어선다. 현재 대부분 5층인 아파트는 최고 35층까지 치솟는다.

강남, 한강변, 역세권, 학군…. 반포주공은 이 모든 걸 갖춘 입지에 있다. 그만큼 반포주공 ‘재건축’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반세기 전 반포주공 ‘건축’을 향한 관심 역시 그랬다.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대단지 아파트로, 각 가구엔 서구 입식 생활양식을 적용하면서 면적을 넓혀 중산층을 겨냥했다. 반포주공 재건축이 새로 쓰는 주거사는 처음 건축이 썼던 바탕 위에 있다.

반포본동 주변 한강 수면 지형 변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72년 11월23일, 1976년 4월2일, 2001년 9월5일, 2019년 9월18일. 서울시 항공사진서비스

■ 한강 공유수면 매립해 올린 3590가구

반포주공은 1970년대 강남개발의 교두보였다. 대한주택공사(주공·한국토지주택공사 전신)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반포주공 계획을 ‘남서울아파트단지’란 이름으로 보고했다. 강남의 정체성이 아직 ‘영동(영등포의 동쪽)’에 그칠 때였다. 지금의 반포본동은 버드나무와 갈대밭, 모래밭, 채소밭이 뒤섞인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반포’는 그냥 나루터였다.

1970~1972년 한강 공유수면을 매립하는 작업과 동시에 반포주공 건설이 시작됐다. 1971년 8월 착공해 1973년 1월 58~61동, 66~69동, 76~86동, 94~95동 등 21개동 570가구를 처음 준공했다. 준공 승인이 나기 전 1972년 12월부터 사람들이 입주해 살기 시작했다. 반포주공은 8차례 부분 준공을 거쳐 1974년 12월 전체 3590가구가 완공됐다. 가구 수로는 당시 최대 아파트 단지였으며, 현재도 서울에서 단일 규모로는 단지 면적(56만㎡)이 가장 넓다.

1971년 9월6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반포주공 1단지(남서울아파트) 분양 광고.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반포주공은 한강맨션아파트(1970), 여의도시범아파트(1971)와 함께 ‘중산층 아파트의 효시’라고 평가된다. 똑같이 공유수면 매립 공사로 조성한 택지에 건설한 세 단지는 모두 한강을 향해 새로운 삶을 전시했다. 이전 아파트들은 10~20평형대에 그친 데 반해 반포주공은 22평형부터 32·42평형까지 다양했다. 32평형 위아래 두 층을 한 가구가 쓰는 64평 복층형도 있었다. 한국 아파트사에서 복층형을 시도한 첫 사례다.

32평 이상 평형대엔 2평 남짓한 ‘식모방’을 따로 뒀다. 평균 분양가는 평형에 따라 395만원부터 730만원이었다. 당시 서울 노동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만4400원이었다. 중·상류층만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었다. 군인들이 많이 입주했고, 서울대학교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각각 교수와 연구원을 위한 사택을 사들였다.

논란도 일었다. 1971년 9월 1차 분양광고가 일간신문에 실린 뒤 복층형을 두고 ‘호화아파트’란 비판이 나왔다. 애초 92~97동 6개 동으로 계획된 복층형을 2개 동으로 축소했다. 94~95동 2개 동만 원래 계획대로 복층형으로 짓고, 96~97동은 단층형으로 변경했다. 92~93동은 그 옆에 계획한 98~99동을 길게 늘이는 것으로 대체했다. 92~93동이 없는 이유다.

반포주공에 형편이 넉넉한 이들만 진입한 건 아니었다. 22평형 1490가구를 이른바 ‘AID차관단지’로 공급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외원조기관 AID(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가 제공한 차관으로 지은 아파트란 뜻이다. 이자율이 낮고 상환기간이 길어 저소득층도 입주할 수 있었다. 이번에 관리처분계획이 승인된 3주구가 바로 AID차관단지다.

1976년 11월 당시 반포주공 1단지 전경. 국가기록원

■ 판상형·입식 아파트의 시초…성냥갑 오명도

반포주공은 ‘아파트 문화’의 원형도 선보였다. 아파트 주동이 일자·병렬 형태로 정렬돼 각 가구의 거실은 모두 남쪽을 향한다. ‘남향’을 중시하는 풍수사상에 ‘주택 대량생산’이란 정치·경제적 목적이 반영된 구조다. ‘성냥갑 아파트’란 오명도 얻게 되지만, 반포주공을 전후해 비슷한 판상형 아파트가 대세가 됐다.

각 가구엔 아스타일 마감과 라디에이터 난방을 적용했다. 아파트에도 마루와 온돌을 사용한 좌식을 탈피해 입식을 지향한 것이다. 벽체가 아니라 기둥이 건물 하중을 받치는 구조로 지으면서 기둥 사이에 벽돌을 쌓아 방을 나눴다. 벽을 허물 수 있으므로 나중에 많은 가구들이 리모델링을 거쳐 저마다 다른 구조를 갖게 됐다.

반포주공 내 공원과 녹지. 대한주택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 전신) 자료


반포주공 계획과 건설을 주도한 주공은 이 과업을 ‘과학적인 종합계획’이라고 했다. <대한뉴스 843호>(1971년 9월)는 “반포단지는 단지의 모든 간선시설인 고온수·전기·상수도를 지하로 설치하기 위하여 공사에서 건설한 주택단지로서는 처음으로 공동구를 시공하였으며 이로 인해 전주(전봇대) 없는 쾌적한 단지가 되었다”고 썼다.

‘과학’을 강조한 데는 미국 도시계획가 클래런스 페리(1872~1944)의 ‘근린주구론’을 바탕에 뒀다는 의미도 담겼다. ‘생활권에서 공공시설과 편의시설을 편안하게 누려야 한다’는 관점이다. 굳이 이론을 빌릴 것도 없이, 백지와 같은 땅에 짓는 단지였기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상가, 국민학교(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회·성당, 수영장, 파출소·우체국이 들어서고 여러 개의 공원이 아파트 사이사이에 배치됐다.

풍부한 녹지 공간과 초·중·고를 모두 품은 환경은 반포주공이 1980~1990년대 전성기를 누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2년 6월엔 한국에서 미국 맥도날드와 직접 계약을 맺은 첫 가맹점 ‘맥도날드 반포점(이전 맥도날드 매장들은 직영점)’이 반포주공 앞 상가에서 문을 열었다. 그 사이 반포주공의 주소지는 영등포구 동작동에서 관악구 동작동(1973)과 강남구 반포본동(1980)을 거쳐 1989년 서초구 반포본동으로 바뀌었다.

16일 반포주공 1단지(3주구)에 재건축사업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주민들이 자축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반포주공 재건축사업은 준공 20년을 넘긴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재건축으로 새로 짓는 가구 수를 기존 가구 수의 1.4배 정도로 제한한 세대밀도 규제 때문에 사업성이 떨어져 추진력을 얻지 못하다가 이 규제가 완화된 2010년 이후 속력이 붙었다. 그 사이 잠실주공(1978)·둔촌주공(1980) 등 반포주공을 뒤따른 대단지 아파트들은 재건축에 착수해 이미 철거됐고, 최고 35층의 새 아파트로 바뀌었거나 조만간 바뀐다.

반포주공 2단지(1977) 역시 2009년 재건축을 마치고 유명 브랜드 아파트로 거듭났다. 서울시는 그보다 한해 전인 2008년 9월 그 앞을 지나는 지하철 9호선 역사는 ‘신반포’로, 반포주공 앞을 지나는 역사는 ‘구반포’로 명명했다. 강남개발과 대단지 문화, 중산층 주거 실험에 앞장선 반포주공의 눈으로 보면 많은 것들이 역전된 시간이었다.

참고자료

<반포본동: 남서울에서 구반포로>, 서울역사박물관, 2019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박철수, 도서출판 집, 2017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해천, 자음과모음, 2011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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