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인테리어 수천만원 썼는데 "없던 일"..오락가락 정책 불안 키운다
임대사업자 장려→혜택 축소→원점 재검토
주택 공급 충분..뒤늦게 '2·4대책' 발표
정부도 사실상 정책 실패 인정
이제는 "2~3년 뒤 집값이 떨어진다"는 국토부 수장의 말은 "앞으로 1~2년은 집값이 오른다"는 말로 들릴 정도다.
재건축 아파트에 2년을 실제로 거주해야 분양권을 준다는 규제 도입이 1년 만에 없던 일이 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쫓겨난 세입자부터 1억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한 임대인, 임대사업자 자진말소로 수천만 원의 벌금을 내고 실거주하고 있는 집주인 등 피해 사례는 차고 넘친다.
18일 주택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표한 '6·17 대책'의 골자였던 재건축 단지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가 지난 12일 국회 입법 과정에서 백지화됐다. 정부는 재건축시장의 갭투자(집값과 전셋값 차이가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투자 방식) 방지를 위해 이 같은 규제를 마련했다. 당시 시장에선 전세 물량이 줄어 임대시장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월세 시장을 흔들어 오히려 집값 불안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아랑곳 않고 밀어붙이다가 전세난이 심화하자 1여 년 만에 규제를 철회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우리 국민 자산의 70%가 부동산이다. 제도의 작은 변화에도 시장 참여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나쁜 정책은 때론 집값 급등락의 뇌관이 되기도 한다. 잘못된 정책은 바로 잡아야 하지만, 치밀한 사전 연구와 점검으로 실패할 정책을 내놓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애초 부작용만 키울 수밖에 없는 정책을 이제라도 정상화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정책을 번복한다는 지적을 받더라도 이처럼 시장을 왜곡하는 규제를 계속 철폐해야 부동산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집주인들이 실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면서 전·월세 시장 불안을 키웠고, 이 규제를 피하고자 강남구 압구정동·개포동, 서초구 반포동 등 강남의 주요 노후 아파트들이 재건축 조합 설립 인가를 서두르면서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의 가격 급등을 부채질했다.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랐던 집주인들과 하루아침에 살던 집에서 내쫓겨야 하는 세입자들은 가뜩이나 매물이 귀한 상황에 다른 전·월세를 구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번 정부 초기 적극적으로 운용한 임대사업자 제도 역시 정책 실패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는 출범 초기인 2017년 말 서민·무주택자의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며 등록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세제, 대출 등에서 여러 특혜를 주면서 민간 임대사업을 권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7·10대책'에서 단기임대(4년)와 아파트 매입임대(8년)를 폐지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민주당 주도로 민간 매입임대의 경우 모든 주택 유형에 대한 신규 등록을 폐지하기로 했다. 임대사업자에게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준 것이 조세회피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임대사업자들이 무주택자 주거 안정 공로자에서 한순간에 투기의 몸통이 된 셈이다.
한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나가래요"라는 세입자의 볼멘소리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한 게시자는 "실거주해야 한다고 해서 1억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들어가 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1억원 사기 당했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이는 "재건축 실거주 2년 해야한다고 해서 임대사업자 자진말소하고 실거주하고 있는데 벌금 3000만원을 보상 받을 수 있느냐"며 "혼란스럽다"고 호소했다.
임대사업자는 의무임대 기간을 절반 이상 채워야 자진 말소가 가능한데 의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과태료 3000만원을 물어야 한다. 앞서 정부가 2년 실거주 의무화를 추진하자 불안해진 임대사업자들 중 상당수가 과태료를 내고 자진말소를 했다.
강남구 대치동의 S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던 이모씨는 "집주인이 들어와 산다고 해서 3억원이나 대출을 더 받아 근처로 이사했다. 아이들 학교를 전학할 수 없어 내린 결정"이라며 "정책이 삶에 큰 영향을 줬는데 없던 일로 하겠다니 허탈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한 정책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여당은 기존 임대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유도하기 위해 양도세 중과배제 혜택을 등록 말소 후 6개월만 인정하기로 했다. 이에 임대사업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전세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나 세입자 보호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와 민주당은 원점에서 임대사업자 제도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장려에서 폐지로, 다시 유지로 정책이 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 사업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대책 발표일 이후 집을 샀다는 이유로 현금청산 대상이 되는 건 재산권 침해와 거주지 이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현금청산일 기준은 지난달 국회에서 본회의 의결일(6월 29일)로 한순간에 수정됐다.
공공재개발 등 도심 공공개발도 예외는 아니다. 공공재개발 최대어로 꼽히는 동작구 흑석2구역의 경우 전체 토지의 70%를 보유한 비대위 주민들이 "사람 수로 개발을 밀어붙이는 것은 개인 재산권 침해"라며 공공재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오히려 공공개발이 빌라 시장만 자극시키면서 서민 보금자리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세금 정책도 도마위에 올랐다. 현행 1가구 1주택자가 주택을 2년 이상 보유하다 양도하는 경우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2017년 8월 2일 이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주택을 취득한 경우 보유 기간 중 2년 이상 거주도 해야 비과세 요건을 갖추게 된다.
또 지난 6월부턴 단기간에 주택을 매매하면 양도차익의 7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2년 이내면 60%의 세율이 적용된다. 다주택자의 세율은 더 높다. 규제지역 내 3주택자가 집을 팔면 기본 세율에 30% 포인트까지 중과돼 지방소득세까지 합치면 양도차익의 82.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양도세 중과를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규제로 꼽는다. 다주택자가 집값 상승분을 모두 가져가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세금이 지나치다 보니 팔기보다는 보유 또는 증여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매물이 시장에 나와야 하는 데 세금 정책이 이를 막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가 집을 팔아야 시장에 매물이 늘어나면서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다주택자들의 양도세가 중과되는 현 상황에서 그들이 집을 팔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내다봤다
얽히고 설켜 있는 세금 체계를 단순하게 재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세제가 너무 자주 그리고 많이 바뀌다 보니 세무당국까지 헷갈릴 지경"이라며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정부가 집값 급등을 사실상 인정한 것처럼 비쳐져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집값 급등 현상이 비정상적이라던 정부가 최근 몇 년 사이 급등한 집값을 기준으로 3기 신도시 분양가를 산정한 것에 대해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월세 상한제와 같은 시장 왜곡을 불러오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세입자의 권익 강화를 위해 계약갱신청구권이 필요할 순 있어도 전월세 상한제를 둬서 가격 문제를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게 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은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신중하게 내놔야 하고, 일관성 있는 추진으로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의 공급, 세제, 대출 정책 등을 보면서 득실을 따지고 주택의 매입이나 매도에 참고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를 불신하면 어떤 정책을 내놔도 공염불(空念佛)에 그치게 된다.
정부도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일부 인정하는 모습이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지난 11일 한 공중파 방송에서 급등의 이유로 초저금리와 막대하게 풀린 유동성을 언급하면서 "그동안 정책도 수요·공급 대책이 조화롭지 못해 바둑으로 치면 수순이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국회 답변에서 "방법이 있다면 부동산 정책을 어디서 훔쳐라도 오고 싶은 심정"이라며 "모두가 이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싶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이번 정부는 초기에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며 강한 규제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수공 불균형이 심화되지 부랴부랴 '2·4대책'을 내놓고 공급에 나섰다. 태릉과 용산 등의 부지를 활용한 주택 공급이 주민 반대로 차질이 불가피해진 것도 면밀한 검토 없이 발표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시장의 실패는 정부가 정책으로 바로 잡을 수 있지만 정부의 실패는 만회가 어렵다. 신중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은 시장의 불신을 키워 불확실성을 증폭한다"면서 "어떤 정책이든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시장 불신이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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