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공부하면 "술이나 마셔라" 충고..옮길수록 일터는 작아져 [기획 시리즈 '경계 청년']

박상영·윤지원 기자 2021. 7.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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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공장 생산직으로 일한다는 것..그 남자 이야기

[경향신문]

그래픽 | 성덕환 기자 thekhan@kyunghyang.com
잔업·특근까지 해도 한 달 180만원
직급도 올라가봤자 ‘현장 조장’
미래 없으니 오래 다닐 필요 못 느껴
20대에 입사·퇴사 반복하다 보면
중견기업, 중소기업으로 하향 선택

“공장에 널린 게 일자리다.” 청년실업률 기사에 으레 달리는 댓글이다. 실제 창원과 안산, 천안과 같은 제조업 생산기지가 몰려 있는 곳에서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청년들은 말한다. 그러나 일을 쉽게 구하는 만큼, 쉽게 그만두기도 한다. 1~2년 넘게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왜 그들은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며 경계청년이 됐을까. 경향신문이 만난 지역 거주 청년들은 “미래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진모씨(32·이하 가명)도 경남 김해의 자동차 부품 하청업체 일을 반년 만에 그만뒀다.

“졸업하고 몸이 안 좋아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학교에서 취업 자리가 있다며 면접 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추천한 교수 말로는 정부 디지털 일자리 사업이었는데 실제로는 ‘제조집’이라고 부르는 작은 공장이었어요.”

매일 20㎏ 넘는 물건을 옮겼다. 손에는 절삭유가 항상 묻어 있었다. 공장은 100평 남짓한데 퇴근 때 스마트워치를 보면 2만보, 어떤 날은 2만5000보도 찍었다. 잔업과 특근까지 일일 11시간 이상 일한 김씨의 월급은 180만원이었다.

김씨는 그 공장을 ‘좀비기업’이라고 불렀다. 30명 남짓 일한 공장에서 비슷한 또래는 산업체에서 일하며 병역을 대체하는 산업기능요원과 정부 일자리 사업 대상자가 전부였다. 과장급 몇 명과 사장을 빼면 국비 지원으로 인건비를 충당하는 회사였다. 그는 “계약한 6개월이 되어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회사는 굳이 안 잡더라. 정부 일자리 사업으로 또 신규채용을 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취업률이 중요한 경쟁력 지표인 지방대 출신 청년들은 이처럼 학교를 통해 일자리를 얻기도 한다. 또는 ‘아는 형’이나 ‘알바천국’과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공장에 취직한다.

‘아는 형’과 ‘알바천국’으로 얻은 일자리

생산직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청년은 오래 일해도 대부분 월급이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한다.

시화 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오영록씨(30)는 “사무직은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 이렇게 올라가지만 생산직은 기껏해야 현장 조장이다. 그렇다고 월급을 많이 주지도 않는다. 바라볼 것이 없으니 굳이 오래 다닐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창원 소재 중견기업의 노동자인 박현진씨(30)는 “10년 넘게 일한 분이 자기가 시급 1000원 더 받는다고 자랑하더라. 월급이 고만고만한 수준이니 그게 크게 느껴지는 거다. 월급이 워낙 오르지 않아 시급 몇백원 올리려고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임금근로자 일자리별 소득(보수) 결과’를 보면 대기업에 다니는 20대는 월평균 291만원을 받은 데 비해 중소기업 재직자는 185만원에 그쳤다. 30대는 대기업(월 488만원)과 중소기업(264만원) 간의 격차가 200만원 넘게 벌어졌다. 중소기업 임금근로자 중 40대의 월평균 소득이 286만원으로 가장 많았지만 이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회 초년생의 월평균 소득보다도 적다. 통계청은 “19세부터 50세까지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소득 차이가 커지면서 50대는 대기업 평균 소득이 중소기업의 약 2.6배”라고 설명했다.

‘좋소기업’ 계급사회, 무너진 사다리

기술을 배워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오씨는 “일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퇴근 이후에 틈틈이 공부해 자격증을 여러 개 땄는데, 그 기간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차라리 그 시간에 술이나 마셔라’였다”고 말했다.

“실제 자격증을 따도 월급은 그대로고 진급할 수 있는 직급도 없어요.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어보니 거기는 그래도 관련 자격증을 하나 따면 월급을 5만원 올려준다고 하더라고요. 인정해주는 곳이 있으면 다행이죠. 차라리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면서 다른 시험 준비하는 것이 더 나아요.”

작업환경도 열악했다. 오씨는 “내가 다녔던 중소업체는 하나같이 다 지저분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런 것 때문에 직원이 그만둬도 새로 뽑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굳이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다시 공장을 찾는다. 천안 소재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임원준씨(29)는 “잔업에 특근까지 하면 200만원 중반까지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아르바이트만 해서는 벌기 힘들어 돈이 필요할 때마다 하청업체에서 1~2년 일하다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일을 그만두고 몇 년 쉬다가 다시 일을 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자동차 리스료 내려고 버티는 친구들도 있고 해외여행 가려고 돈을 모으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사이 그들의 일자리와 소득은 점점 열악해진다. 박씨는 “중소기업을 비꼬는 단어인 ‘좋소’ 내에도 계급이 있다”고 했다.

가장 위에는 ‘대기업 사내하청업체’가 있다. 노동조합이 있어 작업환경이 위험하다 싶으면 작업중지권을 요청할 수 있다. 최저시급 수준이지만 운이 좋으면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 박씨는 “대기업 정규직의 마이너리그 버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일정 기간을 채우면 전혀 다른 생산파트로 발령날 때도 있다. 정규직 노조원들이 사내하청 직원을 밀어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20대를 보낸 뒤,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중견기업’으로 내려간다. 박씨는 “대기업 사내하청에 비해서 노동여건이 나쁘지만 딱 하나 좋은 것이 잘 안 망한다는 점인데, 그런 중견기업도 몇 군데 돌다보면 끝나고, 그만둔 곳에 다시 입사할 수도 없어서 결국 가장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으로 가게 된다”고 했다. 임씨도 “30대가 되면 대기업 사내하청업체는 들어가기 힘들다. 검증된 친구들을 뽑으려 하지 여기저기 잠깐씩 일했던 사람을 누가 뽑아주겠냐. 나이가 많아서 애매한 사람은 급여 수준이 낮은 2차 하청업체에 가게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 등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청년이 한곳에 오래 일하는 것이 힘들어졌다”며 “직접 해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발적인 퇴사를 유도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박사과정)의 김규혜씨는 논문 ‘청년이직에 대한 질적연구’에서 “하청 노동자의 경우 원청 기업의 정규직 직접고용 회피로 인한 비자발적인 이직을 빈번하게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원·하청 기업구조에서는 노동자 자신도 진입 장벽이 낮아 누구든지,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경력 및 숙련 형성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장 문 닫자 취업과 실업 경계 더 모호해져

산업구조 전환에 공장 문 닫으면서
제조업 생산직 미래 더 깜깜해져
“고용 안정도 연공 인정도 안 되니
체념하고 사는 친구들이 대부분”

이마저도 산업구조 전환으로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청년의 지위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한국지엠 공장과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문을 닫은 군산시와 최근 법정관리를 졸업한 성동조선해양이 위치한 통영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산업구조 전환과 노동자·지역사회 변환 연구’를 보면 군산시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6888명의 인구가 유출됐는데 20대(2093명)와 30대(9400명)가 대부분이었다. 2017~2018년 조선업과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2015년 하반기 34.4%였던 청년층(15~29세) 고용률도 2019년에는 29.4%로 하락했다.

조선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통영시도 청년층 인구 유출 현상을 겪었다. 2009년 통영시 임금노동자 중 29세 이하 비중은 18.1%였지만 2019년에는 11.2%로, 30대(30.0%→25.6%)보다 더 가파르게 유출이 진행됐다. 40대(24.9%→27.7%)와 50대(17.9%→22.3%), 60세 이상(9.1%→13.2%) 노동자 비중이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조선업종 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 숙박음식점업에서 일자리를 대체하며 고령 노동자의 비중이 증가한 것이다. 2009년 전국 평균 임금의 87.5% 수준이던 통영시 평균 임금은 2019년에는 85.7%로 하락했다.

경남 지역으로 확대하면 청년 유출 현상은 더 뚜렷하다. 통계청의 ‘국내 이동통계’를 보면 경남 19~34세 청년 인구의 순이동(전입-전출 인구)은 2016년 7052명에서 2020년에는 1만8919명으로 늘어났다. 조선업 구조조정 충격이 가시화되는 시기에 청년들이 더 많이 떠난 것이다.

지역을 떠난 청년의 일자리는 어떨까.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조선업 노동이동 통계’를 보면 조선업 위기 초기인 2014~2016년 청년층의 고용보험 이탈률이 높았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 일자리인 점을 감안하면 노동시장에서 이탈했거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과 같은 고용 충격은 미리 준비할 수 없는 만큼 임금 수준이 더 낮은 일자리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산업구조 전환은 제조업 생산직 청년들에게는 불안한 미래였다. 김진모씨는 “전기자동차는 배터리만 있으면 달리는데 엔진에 들어가는 수많은 부품을 만드는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줄곧 걱정됐다. 우리들끼리도 사양산업이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값싼 인건비 때문에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도 근심거리다. 오씨는 “당장 베트남이랑 중국에 있는 공장에서 국내보다 훨씬 더 많이 물량을 생산한다. 우리들끼리 그냥 여기는 창고로 쓰지 굳이 왜 공장을 돌리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했다. 요즘 정년도 보장하지 않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항상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를 해소할 방법은 마땅히 없다. 박씨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차단된 것이 가장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능성은 낮더라도 생산직 중에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니 다들 포기하고 산다. 정말 1~2년만 일하다 쉬고 다시 일하는 것을 반복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용 안정도, 연공 인정도 안 되니깐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박상영·윤지원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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