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미스매칭부터 재건축 규제까지 주택정책 '실패' 인정했지만..

재건축·투기규제·택지조정까지 연이어
대선 앞둔 당정 주택정책 급회전.."서민만 피해자"

은마아파트를 비롯한 강남구 아파트 모습. 2021.6.2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세종=뉴스1) 박종홍 기자,김희준 기자 = 주택공급 미스매칭을 인정하고 재건축 단지조합원의 실거주 2년 의무를 삭제하며 당정이 기존 주택정책 실책 수습에 나섰다. 당정은 투기규제의 온상으로 지적했던 민간공급도 선택사항으로 돌리며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일각에선 수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에도 민간시장 옥죄기에만 급급했던 당정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심용 정책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또 집값상승의 실마리를 제공한 정책 전반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다.

◇재건축 단지 집주인 2년 거주 의무 걷어낸 당정…"세입자 불안 가중 우려"

13일 정부와 국회 관계자 등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12일 법안 소위를 열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에서 실거주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2년 실거주 의무는 지난해 발표한 6·17 부동산 대책의 핵심 내용으로 재건축 단지로 유입되는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기존 재건축 단지에 전·월세를 놓던 집주인이 조합원 분양권을 얻기 위해 입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오히려 전세난민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8월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도 집주인의 실거주를 갱신 거절 사유로 명시해 세입자가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회 관계자는 "야당이 줄곧 부작용을 우려해왔고, 당정도 이런 우려에 공감해 법안을 백지화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 결정엔 최근 여당과 정부 내에서 흐르고 있는 주택정책 '반성' 기조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4월 취임한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이후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조건으로 민간재건축 등 민간과 공공공급의 효율적인 병행을 강조해, 종전 민간주택시장의 역할 축소를 강조했던 기조와는 뚜렷한 차별성을 나타냈다.

국토부 내에선 절대 공공연히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8·2 공급대책 중 과천청사 유휴지도 노 장관의 취임 이후 과천시가 제시한 대체부지로 교체됐다. 노 장관은 태릉골프장 부지 역시 대체물량만 확보된다면 조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 또한 경직됐던 주택정책의 실패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노 장관은 "주택공급 정책이 서울 등 도심주거지를 원하는 수요층의 입지와 주택의 품질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며 사실상 정책과 실수요의 '불일치'를 시인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토교통부-서울특별시 주택정책 협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노형욱 국토부 장관. 2021.6.9/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당정 신뢰한 세입자 등 서민에게 깊은 반성부터"

정부 관계자는 "부동산정책 중 결과적으로 부동산시장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에 대해선 빠르게 시인하고, 앞으로의 대책에 속도를 내자는 입장이 지배적"이라고 귀띔했다. 단순히 시장을 옥죄거나 주택공급에 대못 역할을 한 부동산 규제도 신속히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당정이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1년 남짓한 상황에서 정책 수정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뼈아픈 반성이 없이는 단순한 '임기응변'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실거주 2년 의무' 도입을 거론하며 세입자와 전세시장에 준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거주 규제가 생길 것으로 믿고 이사한 집주인이나 이로 인해 움직인 세입자들이 적지 않다"며 "집주인이 실거주하기 위해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물량이 감소하고 인근 전셋값 상승의 도화선이 된 것을 단순히 법안삭제로 털어버려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논란이 있는 부동산정책의 실패는 물론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사회적 합의를 간과한 것에도 당정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부동산 정책을 수립할 때는 국민과 소관 부처 의견을 듣고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사회적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속도전에 치중했다"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정책을 도입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당정이 너무 손쉽게 정책의 방향을 트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도입 취지는 긍정적이었지만 시장 환경과 맞지 않아 원상복귀한 것"이라면서도 "시장에서 이번 조치를 재건축 규제를 완화한다는 신호로 잘못 받아들여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으로 변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밖에 '2년 거주의무' 삭제로 전세난이 완화될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서 학회장은 "이번 조치로 전세물량이 다시 시장으로 나오면서 전셋값 안정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윤 수석연구원은 "미리 입주한 집주인들이 바로 매물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실로 비웠던 전세 매물도 시장가로 나올 수 있다"며 "전세난이 실거주 의무 추진 때문만은 아니라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h99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