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 폐기에 "시장 난장판, 법이 장난인가"
“법을 장난으로 만드나?” “정부 말 믿고 이사한 사람만 불쌍하다.”
정부가 작년 ‘6·17 대책’을 통해 발표한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 규제를 12일 전면 백지화하자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불만의 글들이 쏟아졌다. 뒤늦게 규제를 철회한 것은 다행이지만 정부와 국회가 1년 넘게 시간을 끈 탓에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불편과 재산상의 손해를 떠안은 것을 성토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아마추어 정부”라는 글도 보였다.
◇어설픈 규제에 헛돈·헛심만 썼다
지난 1년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들은 실거주 의무를 채우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낡은 아파트에 입주했고, 이 과정에서 세입자들이 밀려나면서 부동산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정부 말만 믿고 서둘러 이사한 재건축 소유주들 사이에선 허탈함과 분노가 터져 나온다.
경기도 성남의 한 중소기업 대표 김모(48)씨는 지난 4월 서울 강남구의 본인 소유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5000만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분당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김씨는 실거주 2년을 채워야 분양권을 얻을 수 있다는 정부 발표를 듣자마자 이사를 서둘렀다. 그는 “재건축 사업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기라도 하면 거주 기간 2년을 못 채울 수 있다는 걱정에 미리 움직였는데, 헛돈 쓰고 헛심만 뺐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이 무슨 베타 테스트냐” “지하 주차장도 없는 아파트에 2년 살아 보겠다고 세입자 내보내고, 전세금 빼주고, 이사하고. 무슨 X개 훈련 시키나”라고 분통을 터뜨린 네티즌도 있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실거주 요건을 채우느라 등록임대주택이던 재건축 아파트의 임대 등록을 말소하고 2000만원 넘는 벌금까지 물었다”는 사연을 전했다. 정태우 변호사는 “재건축 소유주들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였겠지만, 관련 법이 통과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재산상 피해를 봤더라도 사실상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실거주 규제와 작년 7월 말 주택임대차법 개정까지 맞물리면서 최악의 전세난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2678만원으로 1년 전(4억9148만원)보다 28% 뛰었다. 5억원짜리 전셋집에 살던 사람이 비슷한 전셋집을 구하려면 보증금 인상분에다가 중개 수수료 같은 각종 비용까지 더해 1억5000만원 이상을 더 조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거처를 옮긴 세입자들도 급증했다. 30대 직장인 최모씨는 올봄 서울 마포구의 전세 아파트를 비워주고 일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최씨는 “서울에 있는 직장까지 출퇴근하는 게 너무 힘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일부 세입자들은 수억원의 빚을 지거나 빌라 등 선호도가 떨어지는 주택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며 “투기를 막기 위한 실거주 규제가 주거 약자인 세입자의 ‘주거 하향 이동’을 부추긴 셈”이라고 했다.
◇”임대차 3법도 원점 재검토해야”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반기 들어 부동산 정책 기조가 뒤집히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출범 초기엔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작년 말부터 공급 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주택 임대사업자 정책 역시 정권 초반엔 장려했지만, 작년 7·10 대책에서 전면 규제 기조로 돌아섰다. 최근엔 여당이 제도 자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가 임대사업자들의 반발에 ‘원점 재검토’로 다시 입장을 바꿨다. 보유세 현실화 명분으로 공시가격을 급격히 올려놓고, 최근엔 재산세·종합부동산세 완화 정책을 내놓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려 주택시장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시장 안정 의지가 있다면 임대사업자 규제나 임대차 3법처럼 부작용이 많은 다른 정책도 원점에서 재검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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