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미용사→당구.. '실핀' 꽂은 황봉주가 꽂힌 큐대[인터불고 WGP]

강필주 2021. 7. 12.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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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황봉주 /파이브앤식스 제공

[OSEN=원주, 강필주 기자] 세계적인 당구 선수들의 향연장인 '호텔 인터불고 원주 월드 3쿠션 그랑프리 2021(인터불고 WGP)'에서 황봉주(38, 경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일단 황봉주의 풍모가 범상치 않다. 탄탄해 보이는 몸에 통통한 볼살과 묘하게 어울리는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테가 눈에 띈다. 3대7 가르마를 한 머리카락은 잘 정돈돼 있는 듯 보이지만 옆머리와 뒷머리가 불규칙적으로 돌돌 말려 올라 가 있어 자유분방하다. 

상대 선수가 누구든, 잘 치른 못 치든 무덤덤한 표정의 황봉주지만 에이컨 때문에 춥게 느껴지는 실내 경기장에서 삐질삐질 흘리는 땀은 마음 속 치열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앞머리에 꽂혀 있는 '실핀'이 번쩍이면 귀엽게 보이다가도, 팔꿈치가 몸에 붙어 있고 오른 발꿈치가 들리는 등 어정쩡한 어드레스는 분명 허술해 보인다.

그럼에도 인터불고 WGP서 보여주고 있는 황봉주 경기는 일단 경기 내용이 재미있다. 32강 조별리그에서 토브욘 블롬달(스웨덴), 김행직(전남), 무랏 나시 초클루(터키), 롤란드 포톰(벨기에),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로스(그리스), 안지훈, 김진아(이상 대전)가 있는 조별리그에서 살아남았다. 

황봉주는 초클루, 김진아, 블롬달에게 잇따라 3연패하며 대회를 시작했다. 하지만 포톰, 김행직, 안지훈, 폴리크로노폴로스를 내리 4연승을 거두면서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했다. 반드시 세트스코어 2-0으로 이겨야 했던 폴리크로노폴로스전의 막판 추격전은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황봉주 /파이브앤식스 제공

16강전에서도 나쁘지 않다. 황봉주는 첫 경기였던 초클루와 경기를 내줬지만 김준태(경북)을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11일 블롬달과는 막판까지 치열하게 맞붙어서 무승부를 이뤄냈다. 승점 4(1승 1무 1패)로 5위에 올라 있다. 남은 4경기에서 4위 안에 들어야 하지만 승패를 떠나 점점 많은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황봉주의 존재감이 도드라지고 있다. 

보이는 것과 달리 황봉주는 스스로 자신을 "재미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외국인 톱랭커들과 당구를 잘 치고 싶다. 맞대결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성적은 상관 없다. 평생 경쟁하면서 당구를 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밝혔다. 황봉주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말이 이해가 된다. 

황봉주는 부산 사람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선수를 꿈꿨던 황봉주는 현재 부산 아이파크 코치를 맡고 있는 김치곤과 동기다. 고등학교도 축구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자영업을 하던 아버지 사업이 잘 풀리지 않자 스스로 1학기 만에 중퇴를 결정,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그는 당장 미용실을 찾았다. 축구선수의 꿈을 접은 그는 막연하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지인 소개를 받아 미용실에서 2년 반을 일했다. 그리고 헤어 디자이너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2년 동안 미용사로 활동했다. 

당구는 고교 1학년 때 선배를 따라다니다 처음 접했다. 마음 한켠에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것이 상대적으로 당구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됐다. 3개월 만에 250점(4구)을 올릴 정도로 심취했다. 미용일을 하면서 큐대를 놓았던 그가 다시 당구장을 찾게 된 것은 사상 감전동으로 이사를 하면서다. 바로 앞 당구장을 우연하게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황봉주는 "그냥 혼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 그런데 일반 동네 당구장이 아니라 고수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그 분들이 대대에서 당구치는 모습은 내게 신세계 같았다"면서 "그 분들을 통해 해운대에 더 큰 대대 당구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매일 사상에서 해운대까지 오가며 당구에 빠졌다"고 떠올렸다. 

황봉주는 3쿠션 점수로 40점 이상이 되면서 2007년 선수로 등록했다.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걱정하던 황봉주에겐 더 없이 훌륭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황봉주는 곧 흥미를 잃었다. "당구를 좀 치면서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연습도 소홀하면서 그저 노는데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그런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당구가 멈추더라. 대회에 나가도 16강이 한계였다"고 말했다. 

당구를 그만 둔 황봉주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해운대서 다시 큐대를 잡았지만 이내 다른 직업을 찾아 다녔다. 황봉주는 "당구에 흥미를 잃으면서 일반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결국 다시 당구로 돌아왔다"고 털어놓았다. 

[사진]황봉주 /파이브앤식스 제공

황봉주는 2018년 여름 거의 3년 만에 다시 선수로 복귀했다. 대신 부산이 아니라 주거지를 김해로 옮기면서 경남당구연맹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그 해 영남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다시 당구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황봉주는 당구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전국 대회서 8강 무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황봉주는 지난해 12월 열린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에 출전했다. 슛아웃 복식에서 이충복과 짝을 이룬 황봉주는 하이런 비공인 세계신기록인 23점을 기록해 관심을 모았다. 2017년 독일 피어젠에서 열린 세계 팀선수권에서 프레드릭 쿠드롱과 롤란드 포톰(벨기에)의 공인 하이런 20점을 훌쩍 넘어선 점수였다. 

그 때보다 좀더 업그레이드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황봉주는 "그 때보다 좀더 단단해진 것 같다. 기초적인 실수를 줄이면서 스스로 경쟁력이 생겼다"면서 "이번 대회를 통해 당구를 씩씩하게 쳐야겠다 생각했다. 외국인 톱 랭커들은 자기가 치고 싶은 것을 친다. 반면 나는 주변을 많이 의식하면서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던 것 같다. 경기를 치르면서 그런 것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변을 의식하는 것은 '자세'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그립을 잡는 자세나 엎드릴 때 팔 각도가 정석과 다르다. 레슨 때도 손님들께 '절대 절 따라하시면 안된다'고 말하곤 한다"면서 "처음부터 좋지 않은 자세가 굳어지면서 스트레스도 받고 주변에서 하는 말을 의식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35점이 되면서 자세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매번 자세를 계속 교정하려고 한다. 20대 후반~30대 초반에는 자세를 수시로 바꿨다. 이번 대회 때도 마찬가지다. 매 자세를 취할 때마다 집중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이제 자세 교정은 포기했다. 그냥 지금 자세에 맞춰 칠 생각이다. 바꾸면 더 안되더라"고 허탈해 하기도 했다.

황봉주는 계속 좋아지고 있는 경기력에 대해 "굳이 따지자면 연습 말고는 없는 것 같다. 평소 아침 6시 일어나서 한바퀴를 뛴다. 그리고 7시에 연습장에 나간다. 그리고 10시까지 혼자 훈련한다. 이후에는 영업을 하고 밤 12시 전에는 꼭 잔다"면서 "규칙적이지 못했던 생활 패턴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1년 반 정도 꾸준하게 이 생활을 지켜오고 있다. 그 효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황봉주는 성적이나 외모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다. 그는 "이번 대회 내 목표는 16강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덤으로 공을 치고 있다. 외국인 선수와 좀더 많이 대결하고 싶은 데 그러기 위해 이제 8강을 노리고 있다"면서 "머리를 기른지 1년 정도 됐다. 막상 길렀더니 자르기 귀찮더라. 그러고 당구를 치다보니 앞머리가 흘러내려 마트에 가서 실핀을 몇개 사서 꽂았다. 옷이나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고 웃어보였다. 

황봉주는 "당구를 조금 친다 싶으니까 많이들 알아봐 주신다. 1등 욕심보다는 당구를 꾸준하게 치다보면 성적이나 수입을 따라온다고 본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은 없다. 그저 연습을 더 열심히 해서 월드컵 무대에 나가고 싶다. 그동안 금전적으로 힘들어서 나가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를 계기로 국제 대회 무대를 꿈꾸게 됐다"고 지향점을 밝혔다.

또 "좀더 일찍 당구에 집중했다면 하는 후회가 든다. 돌아보면 참 못쳤을 때였는데 나는 그 때 왜 그렇게 건방졌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당구를 치면 칠수록 겸손해진다. 가야할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고 덧붙여 당구에 대한 열의를 숨기지 않았다. 황봉주는 이제 폴리크로노폴로스(12일), 허정한, 차명종(이상 13일), 서창훈(14일)을 잇따라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 톱 랭커들과 맞대결을 위해 또 한 번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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