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 뒤 15년, 산불 뒤 20년.."기후위기인데 이젠 중대재해로 봐야죠"

장예지 2021. 7. 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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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중대재해' 복원 현장
생태계 복원까지 10년 이상..포항 산불은 자연 회복 안돼
"과거엔 복구 쉬운 수종 심었지만 환경 맞게 자생수종 필요"
2004년 일어난 경북 영천시 화북면 보현산 산사태 피해지를 찾은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맨 왼쪽)이 지난달 30일 복원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 위원 뒤쪽에 우거진 나무 사이로 골이 파인 지역이 과거 산사태가 일어난 흔적이다. 영천/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태백산맥 등줄기 중앙을 가르며 광활하게 뻗어있는 경상북도 영천시 보현산(해발 1126m) 자락, 높이 8~10m의 소나무와 물푸레나무, 참나무가 ‘파릇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장정원 팀장은 나무를 가리키며 “이제는 중학생 수준으로 숲이 자라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발 1000m가 넘는 보현산 천문대길 정상부에 올라 산아래를 내려다보니 장 팀장의 말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었다. 18년 전인 2003년 9월 태풍 매미로 발생한 산사태 피해의 상처는 길다란 샛길 모양으로 산을 가르고 있었다. 원숙한 소나무가 산사태와 폭우로 쓸려간 자리에 새 생명이 ‘중학생 정도’ 자라는데 18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허태임 박사는 깎아지른 산줄기를 눈으로 훑으며 복원된 숲에 자생종과 외래종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살피기도 했다. 허 박사는 “산지복원 과정에서 외래종이 유입되기도 하는데, 이곳에도 일부 외래종이 보이지만 숲이 깊어질수록 우점(우위를 점하는 군집) 경쟁에서 이긴 소나무와 콩과 식물 등 자생종이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7월1일 <한겨레>가 찾은 경북 영천과 포항 등에 있는 산사태·산불 지역 일대는 산림복원 사업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생태계를 가까스로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복원사업은 단순 피해복구를 넘어 기후위기에 맞설 수 있는 산의 체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산림인 한국에서 산사태와 산불은 익숙한 자연재해이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든 이상 두 재난은 ‘중대재해’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산림청은 지난 5월 기상청이 발표한 기상전망 등을 토대로 장마에 막 접어든 이번 여름 역시 저기압과 대기 불안정 영향으로 국지성 호우가 잦아 산사태 발생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국은 지난해에도 역대 가장 긴 장마철과 함께 연이은 태풍으로 6175건(1343ha·축구장 1880개 면적)의 산사태 피해를 입었다. 1976년 이후 역대 3번째로 많은 수치다. 폭염에 따른 뜨겁고 건조한 날씨 역시 산불 발생 확률을 높인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숲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므로 이상기후 극복을 위한 산림복원은 중요한 과제다.

2006년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오장폭포 인근에 발생한 산사태 피해지역 복구지. 이곳에선 소나무, 싸리나무, 박달나무 등이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이 관측됐다. 정선/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번 재난이 발생하면 이후 복원사업을 하더라도 산림생태계의 회복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난달 30일 찾은 강원도 정선군의 유명 관광지 오장폭포 산사태 피해지(5.11ha)는 2006년 7월 태풍 에위니아 때 피해를 입어 곧바로 복원을 시작한 우수 사례로 꼽히지만 그 뒤 15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야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10m 이상의 나무들이 빼곡했던 보현산에 비하면 오장폭포는 아직까지 어린 싸리와 소나무 사이사이로 사방공사를 한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당시 사업에 참여한 김민식 산림과학기술연구소 소장은 “2006년은 50여일간 비가 와 현장은 추가 피해도 예상되는 급박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면안정화를 위한 응급복구 차원에서 사방사업에 집중했고, 그 뒤에 토양안정화를 시킨 뒤 싸리나 오리나무 등을 심었다”며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지금은 주변 소나무 씨가 날아와 주변 식생과 점차 어우러지고 있다. 결국 산림복원도 시간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사방기념공원 주변에서 2001년 발생한 산불 피해지를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특수 산림생태 복원 기법으로 복원한 지역. 모감주나무·솔송나무·해송 군락지 등이 형성돼 있다. 포항/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001년·2004년 두차례 발생한 산불로 타버린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대 사방기념공원 주변 피해지도 가까스로 복원에 성공했다. 애초 포항시는 약 10여년간 이곳을 그대로 두고 자연의 천이과정(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종의 식물로 교체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지만 토양 산성도가 강해 영양분이 없고 식생이 자랄 정도로 흙이 피복되지 않아 땅이 회복되지 않았다. 이에 2014년부터 3년간 포항시 지원으로 복원사업이 시작됐고, 사방과 더불어 자생종 위주의 식재를 병행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현재, 해풍을 잘 견디는 곰솔과 포항 지역에서 주로 나는 모감주나무가 정착했다. 그러나 군데군데 여전히 나무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드러난 흙표면이 눈에 띄었다.

산림청과 산림조합, 지자체 등은 기후위기 시대 산림복원의 방향을 피해 방지와 빠른 복구를 넘어 이상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산림 다양성을 확보하고, 자생종 활용에도 힘쓰는 쪽으로 나가려 한다. 허태임 박사는 “과거에는 응급 복구 식으로 일부 복구용 수종으로 식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주변 서식지 환경에 맞게 자생수종을 도입해 건강한 숲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천 포항 정선/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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