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사망 왜 잇따르나②]규정이 우선이냐? 골든타임이 우선이냐?

박종대 2021. 7.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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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출동하면 조별 활동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고민
인명구조하다보면 사명감 때문에 개별행동, 위험에 노출
각종 안전기준만 지켜도 후진국형 사고 줄여 인명사고 예방
"불이나면 1차대피 집결장소로, 인원파악해 소방에 알려줘야"
[울산=뉴시스] 배병수 기자 = 울산 중구 상가건물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노명래 소방교 영결식이 2일 오전 울산시청 햇빛광장에서 울산광역시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동료 소방관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울산시는 고인에게 소방사에서 소방교로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2021.07.02. bbs@newsis.com

[수원=뉴시스] 박종대 변근아 기자 = "규정을 지키면 사고는 안 나겠지만 골든타임이 늦어질 수 있다."

경기도내에서 근무하고 있는 4년차 소방관 A씨의 말이다. 그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제도가 나쁘지는 않다"며 "그런데 현장에서 활동하면 부득이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보통 진압조의 경우 2명 1개 조를 이뤄 진압에 나선다. 구조대는 4~5명이 1개대로 움직인다. 이들은 현장 안에서 독자 행동은 못하게 돼 있다. 단체로 같이 움직여야 한다. 순직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화재 등 각종 재난·재해 현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변수가 벌어질 때다.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은 인명 구조를 위해 개별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직업적 사명감으로 인해 원칙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현장 소방관들도 불가항력적 현장 특성으로 인한 순직사고나 공상자 발생에 대해 대체로 어느 정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이후 이전보다 원활한 장비 지원 및 인력 확충이 차즘 이뤄지면서 근무 여건도 나아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천=뉴시스]김종택기자 = 17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쓰러져 있다. 2021.06.17. jtk@newsis.com

또 현장대응요원들에 대한 현장 소방활동 안전관리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상설 소방공무원인 ‘현장안전점검관’을 지난해 각 소방서마다 3명씩 배치했다.

순직사고와 공상자 수를 줄이기 위한 현장 안전관리 종합대책도 추진 중이다. 소방청은 올해 3월 ‘소방공무원 현장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기존에 소방본부 단위까지 작성하던 안전계획을 올해부터 소방서까지 확대해 소방서 단위의 세부안전관리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이를 위해 소방관서장의 안전관리 감독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관련 법에 담아 현장활동대원 안전을 넓게 보장할 예정이다.

또 분야별 소방활동 및 훈련계획 작성 시 현장안전점검관이 안전성에 대해 심사하는 ‘안전영향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현장 소방관들은 여기에 더해 최대한 출동한 장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해진 법률에 따라 준수해야 할 각종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후진국형 사고’를 줄여야 소방관 인명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순직 소방관 1명을 포함해 총 사상자 11명을 낸 경기 안성시 종이상자 제조공장 화재사건처럼 위험물을 예측하기 힘든 현장에서는 시민도, 현장 소방관도 위험하다.

[안성=뉴시스] 김종택 기자 = 8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체육관에서 화재진압 중 순직한 고(故) 석원호 소방위에 대한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석 소방위은 지난 6일 화재 현장에서 생존자를 한명이라도 더 구하겠다며 지하층에 진입하던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순직했다. 2019.08.08. semail3778@naver.com

2019년 8월 6일 경기 안성시 양성면 한 종이상자 제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출동한 안성소방서 양성지역대 소속 석원호(45) 소방위가 숨졌다.

또 같은 지역대에서 근무하는 이돈창(58) 소방위를 비롯해 주변 공장 관계자 등 10명이 폭발 여파로 다쳤다.

당시 경기도가 발표한 중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이 난 건물에 제5류 위험물인 ‘아조비스이소부티로니틀린’이 보관돼 있었다.

아조비스이소부티로니틀린은 충격이나 마찰에 민감해 점화원이 없더라도 대기 온도가 40도 이상이면 이상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폭발 우려가 높은 ‘자기반응성 물질’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현행 위험물안전관리법은 지정수량의 위험물을 보관하려면 위험물 특성에 맞는 별도 저장소를 마련하고, 담당 소방서에 신고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이 난 창고를 운영한 업체는 소방서에 신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초 위험물을 보관할 수 없는 물류창고에 다른 업체 위탁을 받아 5월부터 위험물을 보관했다.

A씨는 "현장 예측이 가능해야 소방관들이 무리한 진입을 하지 않는다"며 "예측할 수 있는 사고는 방비가 가능하고 사고가 나도 순직까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현장 소방관과 구조대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지 않도록 미리 대응할 수 있는 정보와 안전 점검을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원=뉴시스] 김종택기자 = 소방의 날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경기 수원남부소방서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으로 긴급 출동하고 있다. 2020.11.07. jtk@newsis.com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장 상황이 급박하다고 서두르지 말고 SOP(현장대응절차)에 따라 안전을 충분히 확보한 후 인명 구조나 화재 진압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건물 붕괴의 위험은 없는지, 재발화 등의 위험은 없는지 등 철저한 안전 점검을 실시한 뒤 진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창호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쿠팡과 같은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장소가 아닌 정해진 인원이 다니는 건물의 경우 건물 자체적으로 출입 관리가 필요하다"며 "어느 시간대에 몇 명이 근무하고 있었는 지를 다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화재가 나서 대피를 하면 1차 대피해 모이는 집결장소 등을 마련하고 관계인이 모인 인원을 파악해 소방대 도착 시 알려줘야 한다"며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확신만 된다면 진압대는 들어가도, 구조대는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pjd@newsis.com, gaga9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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