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이 아니어도..평범한 종들도 살아남는다

프랑스 진화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는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을 뜯어 먹기 위해 목을 끊임없이 뻗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의 의견은 다소 달랐다. 다윈은 "목이 긴 기린이 먼저 출현했고, 그 기린이 목이 짧은 기린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잎을 먹을 수 있어 더 번성했다"고 주장했다. 최고만 선택하는 이른바 '자연 선택'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기린을 실제로 관찰한 연구자들의 말은 다르다. 건기, 즉 먹이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 기린은 주로 덤불이나 어깨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잎을 뜯어 먹는다고 한다. 오히려 먹이가 풍부한 우기에 높은 곳에 있는 잎을 뜯어 먹는 경향이 있다. 또 기린과 가까운 친척인 오카피의 목과 다리 길이 비율을 비교한 결과 기린은 2.1배가 더 크다. 즉 목 길이가 최적화된 값보다 2.1배 더 길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높은 목으로 인한 고혈압과 소뇌라는 단점이 오히려 생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키에서 경쟁 상대인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무려 2m나 긴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50㎝만 더 커도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구태여 2m 차이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적자생존 개념 역시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으로 이해해야 한다. 영어로 최적자(the fittest)만 생존한다는 뜻의 적자생존은 최강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도태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만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대부분은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굿 이너프' 이론이다. "자연은 더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 심지어 좋거나 나쁜 것에 무신경하다. 자연에서 중요한 것은 생물이 살아남아 번식을 할 만큼 충분히 훌륭하기만 하면 된다. 선택받은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은 자가 살아남는다."
19세기 다윈의 주장은 오늘날 자본주의와 결합해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마력을 발휘한다. 인류 혈통을 개선하고자 했던 우생학의 무대를 마련해 전쟁을 촉발하는가 하면 혁신과 1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와 맞물려 인류를 극한의 경쟁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진화론의 맹점을 공격하는 자연과학 책인가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심리 서적이나 사회·인문 서적처럼 느껴진다. 1등이 아니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된다고,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고 저자는 곳곳에서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 우리 종은 완벽하지 않으며 완벽할 필요도 없다고, 불완전해도 생존에는 하등 문제가 없다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 달콤하기만 하다. 과학적 진실은 더 규명해야 되겠지만 묘한 위안을 주는 책이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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