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고기에 의한, 고기를 위한, 고기의 마을 [골목 내시경]

2021. 6. 30. 09: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간경향]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장역을 나서면 마장축산물시장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마장동은 축산물시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동네다. 종로구 숭인동 일대에 있던 도축장과 우시장이 마장동으로 옮겨온 지 50년이 지났다. 그때부터 이 일대의 골목은 ‘고기에 의한, 고기를 위한, 고기의 마을’이 됐다.

마장동은 축산물시장이 골목의 중심이다.


길가의 갈빗집과 고깃집들을 대충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가면 집과 집, 건물과 건물 모두가 축산물과 관련 있는 업체로 가득 찼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정육을 차치하고도 선지, 소머리, 우설, 수구레, 우족과 꼬리까지 소 한마리가 남긴 흔적은 이 동네 골목 사람들을 모두 먹여 살린다. 돼지는 또 어떤가. 돼지머리부터 껍질과 비게, 등뼈와 족발 등 이루 말할 나위 없이 많은 부위로 나뉘어 골목골목 전문점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마리 가축이 얼마나 알뜰살뜰 해체되고 정리돼 사람들을 먹이고 있는지 마장동에 오면 알게 된다.

시장 안에는 1000개 이상의 가게

마장역에서 골목을 걸어가면 마장초등학교와 아파트단지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예전 도축장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예전엔 이곳의 우시장과 도축장이 마장동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아파트단지 옆에 축산물 시장이 마장동의 주인이다.

냉장 트럭에 부속 고기를 싣던 상인은 “소나 돼지 한마리 잡으면 버릴 게 없다. 껍질부터 뼈와 발톱까지 모두 귀하게 쓰인다. 쓸모없는 짓을 하는 인간과는 아주 다르다”고 했다. 이 골목의 일상은 1년이 한결같단다. 도축장에서 고기가 들어오면 분류하고 내가기를 하루하루 똑같은 작업으로 기계처럼 일한다. 잠깐 일손을 놓고 트럭에 기대선 그는 “그래도 요즘엔 주말이면 쉬지만, 예전엔 쉬는 날도 없었다”고 한다. 참으로 부지런한 이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먹자골목에는 약 20개 정도의 고기맛집이 있다.


골목골목 세워진 트럭들은 한결같이 축산물을 운반하는 냉장 트럭이다. 건물들도 벽에 붙은 커다란 냉장 기계들이 보이고, 곳곳에 ‘냉동창고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건물 한채가 통째로 냉동창고거나 냉장고인 경우도 있다. 그만큼 수없이 많은 육류가 이 골목을 거쳐 들고 나가고 있었다. “시장 안에만 대충 1000개 정도 가게가 있고 주변에 육류 유통업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 상인의 이야기다.

축산시장은 크게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있고, 인근에 신관까지 따로 있어 그야말로 거대했다. 시장 주변 골목길엔 보통 마을에서 흔한 쓰레기 분리배출을 독려하는 현수막 대신 ‘뼈 유지 등 동물성 잔해물 축산물 부산물’ 배출 특별단속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핏물 배출에 대한 제재나 취급 기준 준수 등의 문구는 마장동 아니면 볼 수 없다.

골목 안 살림집들 1층도 고만고만한 육류 취급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 업체 주인은 “여기는 대부분 식당이나 급식 업체에 납품하는 곳들이다. 가게는 자그마해 보여도 따로 창고가 있다. 오가는 거래가 꽤 굵직해 사실 알토란 같다”고 했다. 간판들은 한배에서 낳은 자식들같이 ‘축산’이라는 돌림자를 갖고 있다.

사이사이로 이 바닥 일꾼들을 위한 듯 백반집도 보였다. 백반 1인분에 6000원의 가격표를 붙였는데, 그 옆에 붙은 안내문으로 보아하니 그 또한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식당 문에 기대 손님과 잡담하던 주인 노파는 “5000원씩 받았는데 물가가 말도 못 한다. 그래도 여긴 고깃값이 싸니까 그나마 인심 사납지 않게 대접할 수 있다”고 한다. 고깃국에 간간이 불고기도 나오는 백반이 그 정도 가격이면 부러 찾아와 맛볼 만하다. 그는 “식당이란 게 재료 아끼면 망하고, 인심 사나우면 마음 돌아서는 장사다. 돈 벌기보다 내가 차린 음식으로 세상 대접한다는 심정이라 심사는 편하다. 마장동에서만 평생 밥상을 차렸으니 여한도 없다”고 덧붙였다. 골목에서 우연히 만나는 현자로부터 세상사를 다시 배울 수 있다.

마장축산물시장은 약 1000개 이상의 가게들이 있다.


가족끼리 고기 고르는 모습 흔해

마장동 축산물시장 북문은 시장으로 통하는 가장 너르고 중심인 곳이다. 그 앞에 구릿빛 황소와 돼지상(像)도 서 있다. 옆으로는 소위 마장동 먹자골목이 있는데 동서로 난 골목을 끼고 대략 20개 남짓한 식당들이 문을 열고 있다. 땅은 시유지가 대부분이고 건물은 무허가라고 했다. 언제부턴가 현장식당처럼 대충 들어선 곳이 유명해지면서 패널을 세운 가건물로 바뀌었다.

먹자골목 식당을 건너 북문 주변에는 한우 전문점과 국밥집들이 모여 있다. 대낮부터 육회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등 굽은 노인은 눈이 마주치자 “여기 와서 한잔하고 가라”고 말을 건넨다. 정중히 사양하자 노인은 빙긋이 웃으며 “뭐가 그리 바쁘고 중한 일을 한다고 오가며 소주 한잔할 여유가 없어. 슬슬 쉬어가면서 살아. 동무들 다 떠나면 길에서 만난 나그네도 그리운 법이야”라고 했다. 대책 없이 한낮에 길가 좌판에 앉아 행인에게 술을 권하는 그는 왜 그다지도 여유로울까. 술 권하는 마음은 여생의 시간보다 훨씬 풍족해 보인다.

마장동을 찾는 이들에게 먹자골목은 명소이다.


북문으로 들어서면 잘 정비된 시장이 시작된다. 돼지 전문과 소고기 전문이 따로 있고, 한우와 수입고기 전문점이 달리 있다. 정육을 취급하는 집 옆에 내장 전문점이 있고, 그 옆 가게에서는 아예 푹 고아 낸 사골국물을 팩으로 팔고 있었다. 곰탕을 끓이기 위해 구태여 불과 씨름하며 시간 보낼 필요 없이 1팩에 1만원, 3팩에 2만원을 주고 사다 먹으면 편하리라. 그런데도 가게마다 가족끼리 고기를 고르는 모습이 흔했다. 스테이크용 한우가 좋다며 권하던 상인은 “주말에는 대부분 가족이 온다. 아무래도 여기가 많이 싸고 원하는 부위를 골라 살 수 있으니 좋아한다”고 했다.

시장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연령대가 높아 보였다. 아무래도 고기 부위를 알고 고르는 안목은 경험이 있어야 생길 것이다. 부부로 보이는 젊은이는 깔끔한 포장육 가게 앞에서 심사숙고하는 모습이었다. 장정 둘을 거느린 노부부는 우족을 짚어 살펴보고 있었다. 친구 서넛과 함께 온 손님은 주인과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 바깥주인은 열심히 뼈를 바르고 있고 안주인은 매대를 정리하다가 “국산 돼지고기가 1㎏에 1만원이니 참 싼데도 값으로 깐깐한 이들이 많다. 값은 깎아주기 어렵고 고기 자를 때 슬쩍 한칼 정도는 서비스로 준다”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 고기 장을 봐가는 가족은 대부분 한우를 찾는 이가 많다고 했다. 고깃집에 붙은 “힘들 때 우는 건 삼류. 힘들 때 참는 건 이류. 힘들 때 먹는 건 육류”라는 간판에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소고기·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남북으로 난 시장 골목이 중간쯤 꺾여 서쪽으로 이어졌다. 경의중앙선 철로가 지나는 철길 아래로 굴다리가 나 있는데 그를 지나면 축산물시장의 서편 상가가 문을 열고 있다. 간혹 뼈와 부산물 등을 파는 가게들도 보이고 순대며 고사용 머리를 파는 집도 있다. 납품 전문을 내세운 가게들도 간간이 보였다. 시장은 동편 상점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느리게 새로워지고 있는 동네

시장을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소고기 종류는 왜 그렇게 많은지 목심, 등심, 채끝, 안심, 우둔, 설도, 갈빗살, 마구리, 토시살, 안창살, 제비추리, 양지머리, 차돌박이, 업진살, 치마살, 사태, 아롱사태, 꾸리살, 부챗살 등 외우지도 못할 지경이다. 돼지고기 또한 이런저런 부위들의 종류가 만만치가 않다. 문외한의 눈에는 오로지 돼지고기 아니면 소고기 밖에는 분간이 가질 않았지만, 시장을 오가는 이들은 따지고 고르며 열심히 장을 봤다.

경의중앙선 철길을 따라 길게 패널로 덧댄 가건물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하꼬방의 건축사는 시레이션 박스에서 나무판자 쪼가리를 거쳐 패널로 이어지는 긴 역사를 가졌다. 더러는 식당 영업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 문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문마다 큼지막한 명패가 붙어 있었는데 전국노점상총연합회 광성지역연합회라는 곳에서 자율로 부과한 등록번호들이다. 아주 오래전 무허가 주택촌의 철거민 딱지를 보는 느낌이다. 남도 어느 고을의 이름을 붙인 식당에는 열린 문으로 비추는 햇빛을 안주 삼아 대충 소주 대여섯병은 비운 주당들이 있었다. 주모는 손수레에 짝으로 소주를 싣고 왔다. “뭔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 하면서도 꼬박꼬박 술 심부름을 하는 걸 보니 단골도 진단골인가 싶다.

경의중앙선 철로변으로 패널집들이 줄을 이어 있다.


철로 주변에는 주로 창고가 있고, 양고기며 닭고기 전문상가도 눈에 띈다. 축산상가가 있는 건물을 살짝 지나면 옛집을 헐고 새로 지은 5층짜리 공동주택들이 줄지어 있다. 간간이 한옥도 있었고, 꽤 번창하던 식당도 있었던 곳이다. 꽤 비싼 고기를 구워 팔던 식당은 문을 닫았고, 동네는 느리게 새로워지고 있었다.

차 유리창을 닦던 중늙은이는 이 근처 유명했던 식당을 묻자 구구절절 사연을 전해줬다. 고기 구워 팔아 1000억대 재산을 모았던 식당주인은 종교에 빠져 돈을 펑펑 써댔고, 아들과 며느리가 나서 재산을 빼돌리느라 밤새는 줄 몰랐다고 한다. 결국 식당도 넘어갔고, 그 명성 또한 사라져버렸다. 그는 “돈이 원수지. 있으면 독 없으면 목을 매는 동아줄이다. 고기 팔아 건물 여러채 올린 사람도 봤고 한순간 숯불에 태운 돼지껍질처럼 쪼그라든 이도 봤다. 세상 제일 무서운 게 돈이다”며 목청을 높였다.

마장동 골목에서 서울에서 소비되는 소고기의 반 이상이 거래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고기의 성지인 셈이다. 골목 어디서나 만나는 고깃집을 보면 자연스레 침이 넘어간다. 고기는 맛있다. 마장동은 그 맛있는 고기가 천지다. 또한 그곳 골목을 지키는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시장을 오가는 이들에게 힘과 기운을 준다. 살면서 어려울 때, 힘이 떨어졌을 땐 마장동으로 가서 넉넉히 장을 보고 맛있게 먹으며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