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곰돌이 푸'의 절친 피글렛은 정말 돼지일까?

정지섭 기자 2021. 6.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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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뉴욕에서 디즈니 '곰돌이 푸' 뮤지컬 개막
핵심 캐릭터 피글렛은 '돼지같지 않은 돼지'
호리호리한 몸매, 주둥이 모습은 오히려 '땅돼지'와 닮아
동물원 땅돼지는 '피글렛' 못지 않은 인기몰이

코로나의 암운이 걷히고 빠르게 일상으로 되찾고 있는 미국 뉴욕에서는 올 가을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이 속속 중단됐던 공연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그 중에는 따끈한 신작 한 편이 눈에 띕니다.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는 사랑스러운 디즈니 캐릭터 곰돌이 푸입니다.

올가을 뉴욕에서 새롭게 개막하는 디즈니 뮤지컬 '곰돌이 푸' /pooh the musical 홈페이지

곰돌이 푸는 동화책과 만화영화, TV만화시리즈, 실사영화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졌고, 심지어 푸 아닌 다른 캐릭터들의 별도 스핀오프물도 나왔죠. 여러분은 곰돌이 푸의 여러 캐릭터 중 어떤 친구에게 가장 끌리나요? 주인공 푸, 촐싹대는 호랑이 티거, 사랑스러운 비관주의자 당나귀 이요르, 까칠한 토끼, 현명한 부엉이 등등이 있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피글렛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좀체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중성적인 외모에 돼지답지 않게(?) 늘씬하고 호리호리한 외모를 가진 이 친구를 보면 ‘정말 돼지가 맞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 곰돌이 푸의 논쟁적 캐릭터 피글렛

피글렛은 푸의 절친이지만,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 이 친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핀오프물 '피글렛 무비'가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마존 홈페이지

이런 의심을 품은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실제로 외국의 곰돌이 푸 팬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생긴걸 보더라도 피글렛은 돼지가 아니다’라는 첫번째 명제에 이어 ‘그렇다면 어떤 동물이 모델일까’라는 두번째 명제를 두고 가벼운 갑론을박도 벌어진 모양이입니다. 줄무늬 몸통에 호리호리한 몸매, 돼지치고 매우 뾰족한 주둥이 때문에 일각에선 피글렛 캐릭터의 원래 모델은 아르마딜로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나봐요. 아르마딜로는 개미핥기·나무늘보와 가까운 동물인데, 온몸을 덮고 있는게 털이 아닌 비늘이다 보니 얼핏 파충류같아보이기도 합니다. 비늘의 숫자와 몸의 생김새에 따라 아홉띠아르마딜로·세띠아르마딜로·큰아르마딜로·애기아르마딜로 등으로 나뉘는데 복실복실한 털이 나 상대적으로 깜찍한 외모를 지닌 애기아르마딜로를 보면 얼핏 피글렛과 닮아보이기도 합니다.

◇ 돼지인데 돼지가 아닌 돼지, 땅돼지

하지만 전 피글렛의 모델이 보통 돼지가 아니라면 아르마딜로가 아닌 이 동물일 것이라고 단언하고 싶습니다. 돼지라고 불리지만 알고보면 돼지가 아닌 희한한 돼지, 땅돼지입니다. 생긴것도 습성도 기이하고 특이해서 은근히 팬이 많은 동물입니다. 무엇보다도 돼지 주둥이와 늘씬한 몸매와 왠지 소심하게 생긴 첫인상이 피글렛과 그렇게 빼닮을 수가 없습니다. 땅돼지는 여러모로 눈길을 잡아끄는 짐승인데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땅돼지가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동물원 홈페이지

우선 지구상 어느 동물보다도 영어사전의 첫 페이지에 등장합니다. 영어 이름은 AARDVARK. A다음에 A가 오니 이 동물을 알파벳으로 앞서는 경우는 없습니다. 원래는 네덜란드말입니다. AARD는 ‘땅’, VARK는 ‘돼지’. 우리나라도 원래 이름대로 부르는 거죠. 생긴 걸 보면 왜 ‘돼지’라고 부르는지 금방 이해가 갑니다. 커다란 콧구멍이 송송 뚫린 코는 돼지 주둥이와 놀랍도록 흡사하거든요. 실제로 이 돼지코로 냄새도 아주 잘 맡습니다. 하지만 외모만 닮았을 뿐입니다. 돼지가 소와 함께 발굽동물인데 비해 땅돼지는 분류학적으로는 오히려 코끼리에 가깝다고 합니다. 오로지 한 종만 존재하고 사는 곳도 아프리카 사바나 한 곳입니다.

◇ 영어사전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동물

땅돼지는 표범이나 하이에나 등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성찬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천적들의 습격에 항상 대비해야 하다보니 일어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을 살핍니다. 조금만 위협을 느끼면 그 자리에서 구멍을 파 몸을 숨기죠. 이런 소심하면서도 은근히 날랜 모습까지도 피글렛과 흡사합니다. 땅돼지는 동물학자들에게는 오랜 연구 대상입니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해왔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체코 프라하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땅돼지 어미와 새끼의 다정한 모습. /프라하동물원 홈페이지

그래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데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하면 좀 원시적이고 진화가 덜 된 느낌이 드는데 땅돼지의 식습관은 첨단을 달립니다. 잡식성인 이 짐승은 우선 개미핥기와 마찬가지로 개미집을 부수고 길다란 혀로 개미들을 빨아들여먹습니다.

그런데 비건의 면모도 있어요. ‘쿠쿠미스’라는 이름의 오이도 즐겨 먹습니다. 이 오이를 그저 먹기만 하는게 아니라 번식도 도와줍니다. 열매 속 씨앗이 이배설물에 묻혀 밖으로 배출되면 싹을 틔우고 새로 자라나거든요. 동물과 식물의 공생이자 포식자와 피식자의 공생인 셈입니다. 땅돼지는 아직 멸종위기 단계까지는 아니라고 합니다.

하와이 호놀룰루 동물원의 땅돼지가 주둥이를 앞으로 내밀며 나름 터프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호놀룰루 동물원 홈페이지

그런데 정말 희한한 생김새에다 은근히 귀여운 면이 있다보니 동물원에서는 관객몰이에 꽤나 일조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지금의 만화캐리터 피글렛이 어떤 곡절로 탄생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쩌면 동물원에서 봤을 땅돼지의 모습도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 까닭입니다. 무엇보다도 땅돼지와 피글렛 모두 ‘돼지같지 않은 돼지’라는 정체성의 공감대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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