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 속 조선시대 의정부, 시민 곁으로 돌아오는 날 기대하세요

박태우 2021. 6. 2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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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보존 이끈 조치욱·정붓샘 학예사 인터뷰
조선 최고행정기관 '우연과 행운' 거쳐 발굴
주요 유구 보존해 2023년 역사공원으로 단장
"도심속 문화재 복원, 잊혔던 것 돌아올 기회"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바라본 의정부 터 전경. 의정부 건물의 기초들이 보인다.

지난 23일 서울시가 ‘내년 4월 광화문광장 전면 개장’ 일정을 밝혔다. 광화문 월대 조성과 광화문광장 안 역사유적 보존 등이 눈길을 끌었지만, 광화문 동쪽 일대에서도 변화가 준비되고 있다. 바로 조선시대 의정부 터 역사문화공원화다.

의정부는 조선시대 최고위 관료인 삼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 이끄는, ‘왕권’에 대비되는 ‘신권’을 상징하는 최고 행정기관이었다. 위상에 걸맞게 경복궁을 기준으로 좌우로 도열해 있던 기관들 가운데 왼쪽 첫번째에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2016년 시작한 발굴 조사가 마무리되고 지난해 9월 사적 558호로 지정되면서, 2023년까지 역사문화공간화하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지난 24일 의정부 터에서 4년여 동안 발굴 현장을 지켜온 조치욱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와 정붓샘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학예연구사를 만나 발굴 뒷얘기와 복원 방향 등에 관한 고민 등을 들어봤다.

1만1300㎡ 발굴…우연과 행운 덕분

의정부 터는 높은 펜스에 적힌 홍보 문구가 아니라면 보통 공사현장과 다를 바 없었다. 조 학예사가 자물쇠로 잠겨 있던 문을 열자, 1만1300㎡ 규모 의정부 터가 한눈에 펼쳐졌다. 군데군데 건물 기초로 사용됐던 큰 돌들과 함께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큰 돌들이 놓인 선을 따라가니 어렵게나마 건물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의정부는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 근무했던 정본당과 종1품·정2품 근무처인 협선당, 재상들 거처인 석획당 등으로 구성된다. 뒤쪽으론 연못과 정자가, 육조거리(현 세종대로) 쪽으로는 내행랑과 외행랑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865년 고종 때 다시 지었지만, 1906년 서양식으로 지은 대한제국 ‘내부’ 건물이 육조거리 쪽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경술국치를 맞던 해에 준공됐고, 이후 경기도청으로 쓰였다.

경기도청이 몇차례 증축을 거치며 의정부 건물들은 다 철거됐고, 안쪽에 있던 정자는 1926년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경기도청 건물은 내무부 치안본부 별관 등으로 사용되다 철거됐다. 이 자리에는 한때 제2정부종합청사를 짓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1997년부터 광화문 시민열린마당과 주차장으로 활용됐다.

1890년 촬영된 육조거리와 광화문외제관아평면도 상 주요 관아 위치 및 구조. 서울시 제공

뒤늦게나마 옛 건물들의 기초라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은 “우연과 행운이 겹친 덕분”이었다. 삼군부와 6조, 사헌부, 한성부 등 조선시대 핵심 관청들이 들어섰던 육조거리를 정부서울청사와 세종문화회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미국대사관, 케이티(KT)빌딩, 교보빌딩 등이 차지했지만, “국유지와 시유지가 섞여 있던 의정부 터는 지하를 깊게 파 고층건물을 짓는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정 학예사)이다. 그 덕에 콘크리트층을 걷어내고 30㎝만 파도 유물들이 여럿 나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육조거리 관청 가운데 현재 위치를 지키게 된 것은 의정부 터가 유일하다.

조치욱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의정부 터에서 발굴된 정본당 기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위 석재에 검은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조선시대 지면 위로 노출됐던 부위다.

일제 때보다 해방 이후에 더 훼손

현재 발굴된 의정부 건물 기초들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것만은 아니었다. 정본당과 석획당 건물의 기초가 네모 모양으로 누군가 긁고 지나간 것처럼 끊겨 있는 게 대표적이었다. 조 학예사는 “두 건물의 기초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을 조성하면서 우수관을 매립할 때 훼손된 것”이라며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유적이 많이 훼손됐다고 하지만, 실제로 훼손이 많이 이뤄진 것은 해방 이후 개발을 겪으면서”라고 말했다. 작업 과정에서는 시민열린마당을 조성할 때 매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폐기물들도 함께 ‘발굴’됐다 한다.

문화재 보존에 대한 ‘낮은’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채 20년이 안 됐다는 것이 두 학예사의 설명이다. 정 학예사는 “문화재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할 뿐, 이를 보존하거나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역사가 얼마 안 됐다”며 “청진동처럼 개발을 위해 유적을 다른 곳으로 옮겨놨다가 다시 그 유적을 가져다 전시해놓는 방식을 쓰다가, 의정부 터처럼 도심 한가운데를 개발을 상정하지 않고 역사유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했다.

구한말 의정부 중심건물 정본당 사진. 서울시 제공

주변과 조화 속 복원 어떻게

5년 가까운 발굴작업의 마무리는, 뭘 어떻게 보존하고 전시하느냐는 더 어려운 과정의 시작이다.

일단 역사문화공원은 의정부 터를 소개하는 전시관과 건물 유구 보호시설을 마련하고, 연못과 정자 등을 복원할 계획이다. 광화문 앞에 복원될 월대와 재구조화될 광화문광장과의 연계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특히 서울시는 광화문부터 한강에 이르기까지 국가상징거리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정 학예사는 “의정부와 주변 유적뿐만 아니라 주변 고층건물들 옆에 어떤 디자인의 건물이 들어서야 조화를 이룰지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어떤 역사콘텐츠를 넣어야 의정부를 쉽게 이해하고 조망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 크다”고 했다.

2023년 개장할 의정부 터 역사문화공원의 유구보호시설 조감도(안). 서울시 제공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시위 기간 내내 발굴 현장이 훼손될까 조마조마해하며 보초를 서고”(조 학예사), “발굴 현장에 친 펜스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는 자영업자의 토로를 들어야 했던”(정 학예사) 두 사람은 각각 고고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연구자 출신 공무원이다. 서울시가 지난 21~23일 진행한 의정부 터 문화재 보존처리 현장공개 행사 예약이 1분30초 만에 마감되고, 추가 행사 요청이 빗발친 것은 두 사람에겐 보람이다. 시민들 사이에 역사유적을 대하는 저변이 넓어졌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조 학예사는 “역사유적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것이 불편함으로 다가올 분들도 계시겠지만, 잊혔던 것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기회라는 것을 널리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치욱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운데)와 정붓샘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학예연구사(왼쪽)가 의정부 터 안에 있는 우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해당 우물은 민가 쪽에서 발굴되는 우물과는 다르게, 우물 안쪽 돌 표면이 고르게 깎여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다. 이 우물에선 영조부터 고종, 일제 때 동전부터 곰방대·기와·그릇 뿐만 아니라 일제 때 것으로 보이는 우스터소스·맥주병도 출토됐다. 그릇 가운데는 ‘도식(道食)’이라 적힌 일본 그릇이 나와 조 학예사를 혼란케 했으나, 확인해보니 ‘(경기)도청 (구내)식당’의 준말이었다고 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참고자료: 조치욱, 서울 의정부지 발굴조사 보고서, 서울역사박물관,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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