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맥주 마시던 아저씨가 제임스 카메론, 그렇게시작된 '천만연주자'

남민준 명예기자(변호사) 2021. 6. 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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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변이 귀를 쫑끗 세우고 왔습니다-5] '미얀마를 위한 기도송'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 백진주 교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짱가를 기억하세요?

그 짱가가 2021년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타이타닉,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캐리비언의 해적 등 무려 800여 편의 영화음악에 참여했던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가 2013년 한국으로 돌아 온 이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삶과 생각이 궁금해 2021. 6. 14. 여의도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백진주 교수님께서 참여하신 '미얀마를 위한 기도송'은 멀리서나마 군부 쿠데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얀마 국민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열리고 있는 행사입니다.

필자가 마뜩잖은 눈으로 미얀마의 현실을 보면서도 한 편으로는 '여기서 우리가 뭘 한다 한들 그게 도움이 될까', '우리나라가 나서는 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비관적이고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백진주 교수님을 포함해 필자와 다른 누군가는 고통 받는 미얀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기대감이 컸던 만남이었고 이제 그의 얘기를 전할까 합니다(편의상 존칭은 생략합니다).

테레사 수녀의 ‘죽음에 이르는 집’에서 기도를 하는 모습.우측은 테레사 수녀의 몸을 본 뜬 모형. /사진=백진주

남변: 요즘 '천만 배우', '천만 감독'이라는 표현을 쓴다, '타이타닉', '아바타',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캐리비언의 해적' 등은 무척 유명한 영화들인데, 굳이 표현하자면 '멀티 천만 연주자'라 해도 되겠다.

그(백진주 교수): (웃음) 많이들 봤을 것 같긴 한데, 얼마나 봤는지는 모르겠다.

영화음악에 참여하는 일은 우연히 하게 됐다, 친구 대신 연주하러 갔다가 그 일을 시작하게 됐다.

잠실운동장만 한 곳에 스크린을 걸고 대규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참여해 동시녹음을 했는데 ('The Prince of Egypt'의 ost), 옆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던 아저씨가 이것 저것 묻길래 '아~궁금한 게 많은 아저씨구나'하고 다 대답해 준 후 악보를 찢어 대충 전화번호를 적어 줬다.(웃음) 이 아저씨가 한참 후에 전화를 걸어 '같이 일하자, 크루즈 타면서 연주 좀 하자'고 해서 시작된 인연인데(이 작품이 '타이타닉'입니다) 알고 보니 그 아저씨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었다(웃음).

카메론 감독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음악에 관심이 참 많은 감독인데 어떤 때는 장면 하나를 촬영하기 위해 회의를 40번 하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음악에 참여하게 됐다.

남: 영화음악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로도 재직했다, 그런데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 왔다. 이전 인터뷰에서 '고인 물은 썩는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그: 당연히 그 이유도 있다, '새로운 걸 좀 하자' 싶었고. 어느 순간 막내딸과 내가 영어로 얘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 내 딸들의 뿌리는 한국인데. 막내딸은 한국에 있는 것도, 한국 음식도 좋아 한다 (웃음).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외할아버지께서는 그가 한국말과 한글을 잊지 않도록 한국어로 된 책을 미국으로 보냈고 그는 그 책과 성경을 필사하면서 한국말을 잊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는 외할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유품 속에서 어린 시절 자신이 필사한 노트들을 발견하고는 무척 울었다고 합니다.)

남: (멕시코에서) 수감 중인 마약왕에게 아도르, 베사메무초를,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황성옛터'를 연주했고, 아침마다 베란다에서 연습하다 이웃이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청하자 기꺼이 연주한 일화가 있다, 음악의 장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클랙식의 고답적인 이미지와는 결이 좀 다르다.

그: 음악의 장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클래식을 배우면 다 클래식만 연주해야 하나. 다 음악이다, 클래식 하는 사람들도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백교수님의 큰 따님도 인터뷰에 동석하였습니다.)
내 딸도 성악을 하지만 굳이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남자들이 주로 부르는) 'Nessun Dorma'나 Edith Piaf의 노래도 부른다.

남: 인터뷰를 위해 검색을 많이 했다, 화려한 이력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연주하는 장소나 공간을 전혀 가리지 않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을 많이 다녔다, 어떤 마음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나?

그: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웃음). 인도에 있는 (마더 테레사의) '죽음에 이르는 집'에서 연주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이 죽음을 기다리며 간이 침대에 누워 있는 곳인데, 그 곳에 팔순이 넘은 한국인 수녀님이 계셨다, 수녀님께서 내 손을 잡아 주시면서 '소독하느라 듣지 못 했다, 고맙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세 번을 말씀하셔서 수녀님을 위해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연주했다, 연주를 시작하자 옆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눈 뜬 채 세상을 떠났고 수녀님께서 그 눈을 감기시며 내게 '당신 참 착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 후로는 장소를 구분치 않고 내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연주한다.

남: 이전 인터뷰에서 우리가 죽은 직후 우리 영혼이 있는 곳에 헨델의 메시아가 울려 퍼지는 상상을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데 굉장히 기발하면서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나 생활이 자유로워 보인다.

그: 죽은 이후 우리 영혼이 날아 가는데 그냥 날아만 가면 허전할 것 같았다, 날아갈 때 배경음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웃음). 생각나면 해 보는 편이다(웃음).

데님을 붙인 바이올린. 소리도 예쁘다.

남: 인터뷰 섭외를 위해 주고 받은 문자를 다시 보니 '(문자를 보낸 당신이) 누구인지, 왜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지' 전혀 묻지 않고 '내가 도움이 되면 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보통은 '누가, 왜 나를 찾을까' 묻는데 그게 전혀 없어 좀 신기했었다, '신이 주신 재능이니 누군가 청하면 바이올린 연주를 절대 거절하지 말라'고 하신 외할아버님의 유언과 상관이 있는가?

그: 소개해 주신 이연복 쉐프님을 믿었다(웃음). 외할아버지 말씀도 당연하고 종교적인 신념도 있고. 사람이 사람한테 잘 하는 것도, 나눌 것이 있으면 나누고 사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닌가. 바이올린만 해도 연주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넣어 두면 그냥 안 쓰는 건데, 그것보다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웃음).

비쥬를 붙인 바이올린. 소리도 예쁘다.


남: 예전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피아노가 없어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후 청와대에 피아노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나.

그: 청와대에 피아노가 없어 좀 삭막한 느낌이 들었다, 확인은 안 해 봤지만 (웃음) 없을 것 같다(웃음).

남: 세계 곳곳을 많이 다니는 것으로 안다, 바이올린 연주 때문에 방글라데시에서 무당으로 오해 받은 얘기, 인도에서 여신으로 오해 받은 얘기를 읽었다. 사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자체를 알지 못한다는 점에 좀 놀랐다, 그런 곳이 많은가?

그: 생각보다 많다, 안타깝다, 그래도 연주를 들으면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다들 좋아 한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사람이 낼까?'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무당'으로도, '여신'으로도 오해했나 보다(웃음).

예전에 어느 모임에서 어떤 회장님이 '두 딸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한 번도 바이올린 연주를 직접 들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셔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제대로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연주하는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해서 호프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해 회장님께 들려 드렸다.

남: '미얀마를 위한 기도송'에 참여해 눈물을 흘리며 연주했다, 어떤 마음이었나.

그: 공해가 없는 미얀마는 새벽 안개가 파랗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깨끗하고 조용한 곳이다. CNN 을 통해 주로 미얀마 소식을 접하는데 들여다 보면 미얀마 내의 지역적인 문제나 종교적인 문제와도 아주 무관하지는 않지만 신념이 다르다고 해서,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미얀마 사람들은 아주 절박하고 그래서 5. 18. 항쟁의 경험이 있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서 희망을 얻고 우리의 응원에서 더 큰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남: 어떤 꿈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 이제껏 음악적인 삶을 살았는데, 작가가 되어 글도 써 보고 싶다(웃음), 세계 곳곳을 많이 다녔는데 그 얘기를 적고 싶다, 만나 본 "사람들의 얘기". 환경운동도 하고 싶고. 못 쓰는 청바지로 데님 바이올린을 만든 거다, 비쥬 바이올린도(웃음). 용형(용감한 형제)과 일도 좀 하고 싶고(웃음).

프랑스 떼제의 수도원에서 연주하는 모습. /사진=백진주


[인터뷰 후기]

"河海不擇細流" (하해불택세류, 큰 물은 가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

그를 만나기 위해 연락을 하고 실제로 그를 만난 후 그와 메시지로 대화를 하면서 생각난 문구인데, 이 문구보다 그를 잘 표현할 문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화려한 이력과 명성에도 무대와 관객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짱가처럼 나타나 거장의 연주를 들려 주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곳에 함께 하는 그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기준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크고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공에 관해 '목에 거는 메달'이라고 표현하며 성공에 집착할수록 목이 무거워 진다고 하였습니다만,

필자가 만난 그는 더 큰 성공의 메달도 감당하면서 더 넓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누구보다 크고 깊은 사람(巨人)이었습니다.

(마치 예전부터 함께 지내온 오랜 친구처럼 유쾌하고 즐겁게 얘기를 나눌 때는 미처 깨닫지 못 했지만, 그의 얘기를 전하기 위해 그의 얘기를 차분히 정리하다 보니 그가 정말 크고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인의 희생 없이 거인이 만들어 준 큰 그늘 아래서 더 많은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필자가 만난 巨人이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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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준 명예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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