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독점 기업'이다 [책과 삶]

이혜인 기자 2021. 6. 2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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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는 독점 기업 시대에 살고 있다
데이비드 데이옌 지음·유강은 옮김
열린책들|536쪽|2만5000원

가족여행을 가기 위해 어렵게 시간을 내서 마침내 비행기까지 탔는데, 활주로 위에 그대로 서 있는 비행기에 먹을 것 하나 없이 10시간 동안 갇힌다고 상상해보자. 2006년 12월2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케이트 해니의 가족 네 명은 실제로 이런 일을 겪었다.

부동산 중개인인 해니는 앨라배마주에 있는 리조트로 여행을 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폭풍우가 심해지는 바람에 비행기는 목적지인 댈러스에 도착하지 못하고 급하게 오스틴 공항에 착륙했다. 출발 시간이 계속 지연되면서 비행기 안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아메리칸항공의 지상 직원들은 비행기 내 승객들을 돌보지 않고 퇴근했다. 비행기 안에는 음식이나 물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내 화장실 변기가 넘쳐 객실 전체에 역겨운 냄새가 퍼졌다. 한 아이 엄마는 비행기 좌석 주머니에 있는 구토 봉지를 갓난아이 기저귀 대용으로 썼다. 조종사들이 환자인 승객들만이라도 내리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항공사 측은 어떤 항공기도 공항 게이트로 들어올 수 없다고 답했다. 이날 해니와 같이 전국 각지의 24개 공항에서 ‘비행기 감옥’에 갇힌 승객들만 약 1만3000명이었다. 항공사가 승객들을 내리지 못하게 한 이유는 승객을 공항에 내려줄 경우 항공사에 비용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이 잠재적 경쟁자인 인스타그램, 왓츠앱을 사들인 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장에서 페이스북은 독점적인 지위를 얻게 됐다. 책 <우리는 독점 기업 시대에 살고 있다>는 한 산업 분야를 소수의 기업이 지배하면서 소비자들이 겪게 되는 독점의 폐해를 보여준다.
비상 착륙한 비행기 안에 10시간 동안 갇힌 승객들,
인터넷을 쓰려고 수마일을 달려가야 하는 시골사람들
아마존 유니폼을 입고 일해도 아마존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미국과 한국 풍경이 다르지 않다.
수많은 독점 폐해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우리는 독점 기업 시대에 살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항공기 감금담으로 시작한다. 책은 기업이 고객을 상대로 도를 넘는 횡포를 부리는 것이 가능한 이유로 ‘독점(또는 과점)’ 시장을 꼽는다. 미국 항공사들은 수십년 동안 결합과 합병을 거듭했다. 책에 따르면 유나이티드, 아메리칸, 델타, 사우스웨스트 등 네 개의 주요 항공사가 미국 전체 항로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승객이 다른 항공사를 선택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을 잘 안다. 심부정맥혈전증 유발 위험에도 불구하고 항공기 좌석 사이 간격을 79㎝까지 줄이고, 추가 결제 옵션을 주렁주렁 붙여서 승객의 주머니를 가볍게 만든다.

저자인 데이비드 데이옌은 미국의 탐사 보도 기자다. 그는 독점기업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들여다봤다. 독점의 폐해에 대해 경제 이론을 들어 설명하는 대신, 해니의 항공기 감금 일화와 같이 여러 산업분야에서 소비자들이 겪고 있는 일상적인 피해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항공, 농업·축산, 미디어, 통신, 제약, 금융, 방위, 아마존(유통), 의료, 임대업 등의 분야를 두루 살폈다. 2020년 현재 미국은 6개 주요 은행이 자금 대부분을 통제하고, 4개 주요 이동통신사가 통신망을 독점하고, 병원 치료에 필요한 거의 모든 용품을 거대 의료업체 가운데 한 곳이 공급한다. 책은 주로 미국 내 사례를 다뤘으나, 읽고 있으면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의 풍경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농업·축산업에서는 몇 개의 기업이 시장의 질서를 만든다. 오늘날 미국에서 4대 돼지 사육 기업이 전체 시장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다. 전 세계 종자 시장의 60% 이상은 4개의 다국적 기업이 지배한다. 지역의 중소 농가는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스미스필드와 같은 농산업체는 작은 가족농을 10~12년짜리 계약으로 묶어둔다. 저자는 “(스미스필드가 요구하는) 계약서는 헛간과 우리의 설계에서부터 사료 공급 장치와 환풍기의 종류, 지불 가격까지 일방적으로 정해져 있다”며 “가공업체는 서로 공장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농가로서는 어디에 고기를 팔지 선택권이 없다”고 말한다.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 법칙은 독과점 시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농업이 번성했던 아이오와주의 경우 중소농들이 사라지면서 지역경기도 침체됐다. 아이오와주 시골 농장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크리스 피터슨은 1960~1970년대에는 북적이던 중심가가 전부 사라졌다고 회상하며 “거대 농산업체는 이런 소읍은 거들떠도 안 봐요. 그런 게 필요가 없으니까”라고 말한다.

저자는 몇몇 대도시를 뺀 나머지 지역은 “다른 시대에 갇힌 채 근대의 행진을 감당하지 못하며, 심지어 목격하지도 못”하고 있는 ‘역동성의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초연결 사회를 열어준 통신 산업의 발전 속에서도 어떤 이들은 독점기업으로 인해 무척 느린 인터넷을 써야 한다. 테네시주 르노어시티에 사는 데이브 호로위츠는 IT 전문가라서 집에서도 빠른 인터넷 연결이 필요하지만, 깜빡거리는 무선 와이파이를 연결해 인터넷을 쓰고 있다. 부인인 캐롤린은 인도에 있는 사람들과 스카이프 통화를 하면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보여주기 위해서 새벽 3시에 사무실에 출근하곤 한다. 통신사들은 인구 밀도가 낮은 교외 지역에는 광섬유 케이블을 깔지 않는다. 미국의 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섯 개의 회사가 전국을 분할해서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이 지역의 부모들은 종종 아이를 태우고 몇 마일을 달려서 스타벅스나 맥도널드의 주차장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와이파이를 잡아서 겨우 인터넷 숙제를 끝마친다.

독점의 폐해를 지적하고 알려 개선할 수 있는 미디어도 독점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저자는 “저널리즘의 소멸을 촉진한 진짜 요인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부상”이라며 “두 기업이 구축하고 있는 디지털 생태계는 너무 광대해서 조정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절대적인 뉴스 유통 플랫폼으로, 전체 디지털 광고 수입 증가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나온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약 1300개 지역 언론이 완전히 사라졌고 2004년 이래 약 1800개 신문사가 문을 닫았다. 책에서는 페이스북이 동영상 정책을 바꾸자마자 순식간에 회사가 망하다시피 매각돼버린 온라인 기반 언론사 ‘마이크’의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의 사례를 보다보면 독점기업들로 인한 한국사회의 풍경도 연상된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영향력만큼, 네이버와 카카오의 영향력은 한국에서 절대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뉴스 편집권 편향 시비가 중요하게 다뤄져온 이유는 대부분 이용자가 두 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접하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사들이 한정된 자리인 네이버 뉴스 랭킹 안에 들기 위해 자극적인 검색어를 넣은 기사를 쏟아내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아마존의 사례를 보면 한국의 플랫폼노동 시장이 떠오른다. 아마존은 ‘위험의 외주화’에 능하다. 저자는 “수천 명의 배송 기사들이 아마존 유니폼을 입고, 아마존 장비를 사용하고, 아마존 시설을 기반으로 일하고, 고용주들에 의해 ‘아마존닷컴의 얼굴’로 불리지만, 아마존 직원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아마존은 배송 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배송 기사들을 위탁 고용하는 민간 운송업체들은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저임금 노동력을 고용한다. 지난해 코로나19 집단감염부터 최근 이천시 덕평물류센터 화재에 이르기까지 열악한 고용조건과 노동환경을 지적받아온 쿠팡은 아마존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수많은 독점 폐해 사례를 열거한 후 저자는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답은 ‘반독점법’이다. 기업이 쉽게 인수·합병을 하고, 한 산업분야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행위를 법으로 세밀하게 규제하자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4대 첨단기술 기업인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의 분할 등을 초래할 수 있는 강력한 반독점 법안들이 미국 의회에서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다. 이 법안들이 상·하원을 통과해 발효되면 독점기업들의 영업 행위에 제약이 걸릴 수 있다. ‘플랫폼 독점 종식법’이 발효되면 아마존 같은 기업이 자사 플랫폼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 금지된다. ‘킬러 합병’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법이 발효되면 페이스북이 유력 경쟁자인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사들인 것과 같은 행위는 앞으로 어려워진다.

저자는 독점을 규제해야만 더 나은 세상이 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모든 문제는 사실상 어떤 형태로든 독점과 상호작용한다. 독점은 가장 근원적인 문제, 즉 권력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일이 열린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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