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부터 종로까지 조리돌림'이정재, 정치깡패→혁명재판서 21일만 사형 집행(꼬꼬무2)[어제TV]

김노을 2021. 6. 2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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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소니 린치사건 배후인 정치 깡패 이정재와 당대 정권의 비열하고 참담한 민낯이 드러났다.

6월 24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시즌2'는 1953년 8월 동대문에서 발생한 끔찍한 폭행 사건, 이른바 '시라소니 린치사건'을 재조명했다.

일대일 싸움 실력으로 승부를 겨루던 '낭만주먹' 시대를 끝내고 잔혹한 집단 폭행의 시대 이른바 '깡패시대'의 서막을 연 사람이 바로 이정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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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김노을 기자]

시라소니 린치사건 배후인 정치 깡패 이정재와 당대 정권의 비열하고 참담한 민낯이 드러났다.

6월 24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시즌2'는 1953년 8월 동대문에서 발생한 끔찍한 폭행 사건, 이른바 '시라소니 린치사건'을 재조명했다.

당시 시라소니 이성순은 후배 이정재를 만나기 위해 동대문으로 향했다. 이정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인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으로 보이는 20여 명의 남성이 손에 도끼, 쇠 파이브, 쇠 갈고리를 들고 몰려들었다. 이 모든 것은 조선 최고의 주먹 시라소니를 제압하려는 이정재의 함정이었다.

시라소니 린치사건으로 불리게 된 이날 집단 폭행은 한국 주먹계를 발칵 뒤집었다. 일대일 싸움 실력으로 승부를 겨루던 '낭만주먹' 시대를 끝내고 잔혹한 집단 폭행의 시대 이른바 '깡패시대'의 서막을 연 사람이 바로 이정재였다.

방송에는 김두한 실제 육성도 공개됐다. 공개된 육성에서 김두한은 "이정재 동지로 말할 것 같으면 순전히 내가 출세시켜준 사람이다 이 말이야. 일제강점기 때 반도의용정신대라고 징용 안 가려고 만든 거 있잖아요? 이 수천 명 가운데에서 중학교 출신이 그 사람 한 명이었어요. 이정재 동지가 글을 잘 씁니다. 그리고 집안이 경기도 이천에서 좋았고 운동도 하고 그래서 참 친밀하게 지냈죠"라고 말했다. 이정재를 주먹계 데뷔시킨 자가 바로 김두한이었던 것.

1960년 3월 15일, 3.15 부정선거가 발생했다. 이승만과 이기붕이 각각 대통령, 부통령으로 당선됐고 이로 인해 민심이 폭발했으며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이때 마산 시위에 참여했던 17살 소년 김주열이 실종됐다. 실종 27일 만에 김주열은 바다 위로 떠올랐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였다. 이는 곧 혁명의 불씨가 돼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기붕은 경찰에게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것을 명령했다. 깡패들에게도 이승만을 지키라고 지시했다. 김주열 시신 발견 일주일 후 대학생들이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길 무기를 든 괴한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괴한들의 정체는 이정재 부하들이었다.

1960년 4월 19일, 혁명이 시작됐다. 이승만은 하야한 뒤 하와이 망명을 갔으며 이기붕은 가족들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승만과 달리 멀리 도망가지 못한 이정재는 곧장 체포됐다. 하지만 징역 8년형 선고가 전부였다. 실제로 움직인 것은 부하이기 때문에 혐의 대부분이 증거 없음, 입증 불가였던 탓이다.

1961년 5월 21일, 이정재의 조리돌림이 있었다. 이정재는 덕수궁부터 종로까지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조리돌림을 당했다. 이보다 며칠 전 군사 쿠테타가 벌어졌고 민심 수습책으로 깡패 1만 3천여 명을 검거하고 시가행진을 했기 때문.

당시 진행된 재판의 이름은 혁명재판이었다. 여기서 재판부는 이정재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사형 확정 21일 만에 속전속결로 형이 집행됐다. 이정재는 죽기 전 "저에게 죄가 있다면 어머니에게서 기운 세게 태어난 것뿐이다.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이 부패한 정치의 장난으로 나를 유인했다. 나는 억울하다"고 마지막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와 폭력이 만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준 비열하고 비참한 깡패 일대기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방송화면 캡처)

뉴스엔 김노을 wi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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