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글 전용 세대와 문해력

현병호 |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저자 2021. 6.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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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자를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고 학교교육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어휘력과 문해력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많은 대학생들이 전공서적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도 한자로 된 개념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어도 한자어로 표현되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 리포트를 ‘금일까지 제출’하라는 말을 ‘금요일까지 제출’로 알아듣고는 왜 헷갈리는 표현을 쓰냐고 오히려 교수에게 따지는 학생이 있을 정도다. ‘이지적(理智的)이다’는 표현을 ‘easy하다’는 뜻으로 알아듣기도 한다.

현병호 |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저자

이처럼 단어의 뜻을 대충 알거나 제멋대로 뜻을 짐작하고 있는 경우 책을 읽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잘 모르는 단어가 계속 나오면 맥락만으로 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들어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된다. 한글은 알지만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하는, 사실상 문맹에 가까운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해력의 기초는 어휘력이다. 우리말 어휘의 태반이 한자어다. 개념어는 더욱 그렇다. 한자를 알면 개념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같은 한자로 된 다른 개념어까지 알 수 있어 어휘력이 빠르게 는다. 개념어를 한글로만 아는 사람은 수많은 용례를 통해 개념이 잡힐 때까지 의미가 흐릿한 상태로 글을 읽어야 하므로 문해력이 더디 자랄 수밖에 없다. 해상도가 떨어지는 언어로는 정치한 사고를 하기도,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한글만으로는 이해하기 쉬운 신조어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요즘 ‘메타버스’ 같은 개념어뿐만 아니라 노트북, 레깅스 같은 일상어도 영어식 표현 그대로 쓰이고 있는데, 이런 현상 또한 한글 전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표기만 한글일 뿐인 외래어가 넘쳐난다. 만약 전화가 21세기에 들어왔다면 ‘텔레폰’ 또는 ‘폰’이라 쓰고 있지 않을까? 한글 전용이 오히려 외래어 범람을 낳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동안 한글 전용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프레임까지 덧씌워지면서 언어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가 되다시피 했다. 한글학회는 “한자는 특권층의 반민주적 문자”라며 한자교육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옛날에 그러했다고 한자교육을 하지 말자는 것은 문해력을 하향평준화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민주사회가 되었으니 특권층의 문자였던 한자를 민중도 쓸 수 있게 교육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한글 전용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글이 너무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뜻글자인 한자와 달리 소리글자인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조합 원리만 알면 못 읽는 글자가 없다. 이 때문에 읽을 줄 아는 단어는 뜻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 번쯤 본 단어, 어렴풋이 아는 개념어를 아는 단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학의 경우 사칙연산을 모르면 방정식을 풀 수 없고, 방정식을 모르면 함수를 풀 수 없다. 수학적 언어는 알고 모르고가 분명해서 아는 척을 할 수 없는데 반해, 인문학 언어는 대충 알고도 아는 척할 수 있어 정작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 사태가 생긴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그런 상태에 있다. 기초한자로 된 개념어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

한글 전용을 둘러싼 논란은 흔히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다. 한글은 한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의 하나다. 한글 전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것이다.

한글 전용을 해도 한자를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한자는 익히기가 힘들다고 하나, 이는 교육 방법을 개선하면 된다. 한문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기초한자로 된 낱말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쓰는 법은 몰라도 문해력에 별 지장이 없으므로 읽기 중심의 교육을 하면 된다. 문해력을 기르는 언어교육이 필요하다.

현병호 |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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