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본 이준석 "쉬운 해고 가능해야..엘리트가 세상 바꾼다"
저서 '공정한 경쟁' 들여다보니…국힘 대표의 세계관 "젠더투쟁 내 대중적 인기기반" "영리병원 허용해야"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보수정당 국민의힘의 대표에 청년 이준석이 선출된 까닭이 뭘까. 여러 이유에 대한 분석이 있지만 무엇보다 이준석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시절 자신의 정치·경제·여성 등 세계관을 정리해놓은 저서를 보면, 이준석은 “여성을 지원하는 제도의 거부” “쉬운 해고” “엘리트가 세상을 이끈다”와 같은 주장을 하며 기반을 쌓아왔다. 본인은 자신을 '합리적' '실용적'이라고 하지만 몇몇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은 다소 극단적 선택과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자신의 정치적 운동장이 펼쳐진 것은 젠더 문제에 대한 투쟁이었다고도 했다. 그의 저서 '공정한 경쟁'(2019년)을 살펴봤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정치입문 계기를 두고 “솔직히 생물학적으로 젊은 정치인으로 정치를 해오면서도 최근까지 나의 주요 지지층은 전통적 보수 이념에 경도된 중장년층이 주력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러던 중 2018년 11월에 이수역 사건을 발단으로 거대한 젠더 갈등이 터졌고, 그를 기점으로 지금까지의 보수-진보 구조 사이에서 형성된 정치적 운동장이 아닌 다른 형태의 운동장이 마련되었다”며 “2019년 2월에 있었던 여성할당제에 대한 '100분 토론'을 기점으로 나는 의외의 영역에 젊은 세대에서의 대중적 인기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한 부정은 젊은 신진 정치 세력에게 블루오션과 같은 기회였고, 동시에 부담스러운 새로운 매력적인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 주었다”고 평가했다. 이준석의 정치적 성장을 가져온 문제가 바로 '젠더'였다는 자평이다.
이 대표는 젠더 문제를 두고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행했던 가부장적 질서로 여성에게 안겼던 불평등에 대한 보상 청구서를 뒤늦게 2030세대 남성에게 들이밀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미래 세대는 앞으로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그들 앞으로 남겨 놓은 대책 없는 부채들을 상속하지 않기 위해 더 강하게 투쟁하겠다”고 주장했다.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 여성 진보는 제도 아닌 과학기술 덕?
이 대표는 한국의 페미니즘에 대해 “우리나라는 남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며 “그때그때 유리한 쪽으로 편승해 이익을 취하려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차이가 존재한다며 보정을 주장했다가 불리하면 차이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폄훼했다. 이 대표는 특히 여성을 위한 제도를 부정했다. 그는 “여성의 진보는 사회적인 제도가 만들어낸다는 믿음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최근에 여성들이 여러 직군으로의 진술이 활발해 진 것도 과학기술의 발달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여성의 사회참여를 촉진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기나긴 투쟁의 역사를 간과한채, 기술과 제도 중 기술이 더 기여했다는 선택의 문제로 단순화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는다.
이 대표는 “남녀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정해주려고 했던 시도들은 의외로 성공적이지 못했다”며 “여성 비례대표를 50퍼센트 정도 할당하는데, 그 제도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젠더갈등의 원인이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정신병이고 파시즘이며 반지성주의'라는 말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이 말 중에 동의하는 바가 있다면 페미니즘이 다소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페미니즘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질성에 대해 공격하고 남성 혐오로 변질되는 것들이 상당히 목격됐다”고 주장했다.
젊은 세대의 관심사가 젠더문제인 까닭이 사회의 여성 지원이 불공정하다고 느껴서라는 인식이 묻어난다. 그는 “가령 여성에 대한 지원책을 정부에서 발표하면 저것을 왜 여자들에게만 주냐? 혹은 내가 소방관이 되고 싶어 시험을 봤다 떨어진 경우, 불을 제대로 끄지도 못할 여성을 왜 뽑냐? 혹은 나는 군대에서 고생하고 왔는데, 정부는 왜 혜택을 주지 않냐? 그들의 관심이 젠더를 향해 열려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그는 “여성할당제 등 복잡해진 성평등 정책이 더 많은 사회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수치적 평등에 가까워지게 하려는 노력이 결국 우리 사회의 젠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원과 시의원 비례대표의 홀수를 여성으로 뽑는 제도를 두고 이 대표는 “사실상의 여성할당제가 되어 버렸다”며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의회에 진출시켜야 한다는 것이 비례대표제의 취지인데 현재는 전문성을 가진 남성은 의회에 진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이것은 제도가 만든 불평등이고, 제가 생각하는 공정한 경쟁의 틀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남성들이 생각하는 공정한 경쟁의 의미를 묻자 이 대표는 “사기업에서 남녀평등을 주장해 할당제, 성별에 대한 우대 선발이 용인되면 안 된다”며 “공적인 영역에서 할당제가 있기 때문에 할당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남성은 더 많은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여성을 돕는 것이 절대선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는 자신과 하태경 의원이 “일방적으로 여성을 돕기만 하는 정책이 절대 선이 아니라는 생각을 정치권에 일깨워 왔다”며 “저는 페미니즘 운동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논쟁의 영역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군 가산점제를 부활하고 여성에 군 복무기회를 주자고 한다. 그는 “여성에게도 사병 복무의 기회를 열어준다면 가산점을 원하는 여성은 군대에 가면 된다”며 “남성은 징병제를 유지하더라도 여성에게는 선택의 기회를 준다”고 했다.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내 자유를 주장하는 행위, 혹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자신의 이런 주장이 다른 사람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쉬운해고가 사회에 득된다…부자에 고급의료혜택 영리병원 왜 반대하나
이준석의 경제관을 보면, 극단적인 시장만능론에 기대어있다.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부직 전환정책을 지속불가능하고 비판하면서 “기업이 해고를 쉽게 할 수 있어야 경영 효율성이 높아져서 결국에는 사회에 득이 될 것”이라며 “해고는 쉽게 하고 실업급여·재취업 프로그램·기본소득 등등의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겠죠”라고 주장했다.
영리병원 찬성론까지 거침없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가진 도덕적 터부를 타파해야 한다”며 “저는 국민의료보험 체계가 무너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국민 다수에게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 고급 의료 혜택을 부자에게 제공하는 영리병원을 우리가 굳이 반대해야 하느냐”며 “돈 많은 사람들이 선택적인 의료를 받는 것을 국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영리병원 때문에 현재 우리가 가진 의료보험 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에 대해서도 그는 “임금구조의 왜곡을 가져온다”고 평가절하했다.
엘리트가 세상을 바꾸고 평범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이 같은 그의 인식의 근저엔 뿌리깊은 엘리트주의가 담겨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며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해도 감수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과학기술의 발전도 따지고 보면 탁월한 엘리트 과학자와 명석한 공학도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없는 대한민국을 생각해보라”며 “한국경제가 이렇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기틀을 만든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엘리트가 세상을 바꾸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그는 자신이 성장하게 된 여러 상황에 대한 언급도 남겼다. 이 대표는 “방송 환경이 이준석을 정치인으로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종편이 생기기 전에는 방송 토론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방송환경이 종편 때문에 많이 변했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토론의 장이 열배 정도 늘어났고, 논객들을 발굴하는 과정이 있었다”며 “제가 정치를 시작할 때가 종편이 생긴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로, 종편의 시작이 제 정치의 시작과 똑같다. 종편 입장에서는 신선하면서도 새로운 논객이 필요했고, 저로서는 토론장을 만난 셈이었다”고 해석했다. 그는 종편이 자신을 키웠다고도 설명한다.
박근혜, 권력 얻기 전과 후과 너무 달라 '보수의 스트레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권력을 잡기 전의 모습과 권력을 얻은 뒤의 모습이 너무 달랐다”며 “보수 정치인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입장에서 저는 하나의 소모품이었다”며 “정치인으로 성장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후원을 했겠으나 후원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제게는 행운이었다”고 해석했다.
공학도가 정치하는 세상, 율사에 대한 반감
이밖에도 이 대표는 공학도의 정치 진출 필요성과 함께 율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공학은 실체화하거나 구체화하는 직업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정치에는 율사가 너무 많다. 그들은 항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들인데, 그것만으로는 그다음 단계가 뭔지 말할 수가 없어요. 율사들은 실제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고 경계했다.그는 “한국의 정치는 율사들의 카르텔이 정치 발전을 막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한국의 정치관은 다양성을 상실한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공학도나 공학 전공의 정치인이 많다는 점을 들어 “중국의 급성장은 실용적인 공학도가 나라를 운영하는 것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 본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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