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 골목에서 마주친 기억 너머 영원의 시간 [골목 내시경]

2021. 6. 1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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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곳이 천호동이다. 서울 시내에서 보면 천호동은 아주 먼 곳이었으나 이제는 지하철 5호선과 8호선이 지나고 곳곳으로 길이 뚫린 교통 편한 부도심이 됐다. 동서울의 대표적인 요지일 뿐 아니라 한참 성장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천호동은 아직도 개발이 진행 중인 서울의 대표적인 부도심이다.


강을 낀 한적한 농촌 마을이 지금처럼 북적이게 된 것은 한국전쟁 직후부터라고 한다. 피란민이 몰려오고 구호시설과 관공서가 들어서면서 지금 천호동의 바탕이 됐다. 천호동이 본격 개발된 것은 1960년대 말 택지개발과 1980년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라 할 것이다. 그런 탓에 천호동 골목은 반듯반듯 잘 정리돼 있다. 골목이 끝나면 또 반듯한 찻길이 넓게 구역과 구역을 경계 짓고 있어 도심처럼 미로를 헤매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길이 새로 나면 도시의 축은 길을 따라 옮아가게 된다. 광진교를 축으로 번져가던 천호동의 번영은 천호대교가 생기고 넓은 천호대로로 교통이 몰리면서 천호사거리가 천호동의 중심이 됐다. 현대백화점과 이마트가 있어 천호동뿐 아니라 강동구 전체의 번화가가 펼쳐진다. 백화점을 끼고 젊은이가 모이는 로데오거리가 있고 그 주변 골목은 대낮에도 흥청망청 활기를 띠는 식당가가 있다. 조금 더 골목을 들어서면 왜인지 수많은 모텔과 여관이 촌을 이루고 있어 이곳이 환락가임을 알려준다. 골목 곳곳에 뿌려져 남아 있는 명함 속 요염한 사진이 흔하다. 천호사거리 일대는 부지런히 먹고, 마시고, 놀고 쇼핑하는 곳인가 보다.

팬데믹에도 붐비는 천호동 로데오거리

팬데믹 사태에도 불구하고 천호동 로데오거리는 붐빈다. 철이 이르다 싶었지만,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사람들이 줄 서 있고, 젊은 연인뿐 아니라 경기도 광주 어디쯤 다녀왔을 등산복 차림의 중년들도 수줍게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다. 그런데도 이 긴 질병 사태의 그림자인 듯 문을 닫고 폐업한 유명 상표의 대형매장도 보였다. 큰길에 잇댄 골목엔 유행을 타는 주점들이 밤 장사를 준비하고 있고, 소문난 맛집인 듯 젊은이들이 줄을 선 가게도 보인다. 맛만 있다면 골목이나 큰길이나 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천호택지개발로 조성되기 시작한 골목 모습이 남아 있다.


백화점의 번영과 로데오거리의 활기와 달리 그곳에 잇댄 골목과 길들은 우울한 모습이다. 천호대로의 이면도로엔 오래전 재개발이 결정됐으나 더는 진행하지 못해 방치된 주상복합건물과 곳곳에 리모델링을 위해 붉은 페인트를 칠한 상가들이 흉물로 방치돼 있다.

천호동이 아주 오래된 동네인 것은 길가의 대장간과 헌책방이 말해주고 있다. 대장간 주인은 엿장수 가위며 낫과 목수용 수공구들을 잔뜩 걸어두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나 행인만이 무심히 지나칠 뿐 호미 하나 팔지 못했다. 간판에 크게 써둔 “칼 가위 갈아줍니다”라는 문구가 그 신세의 몰락을 알게 한다. 대장간의 화로는 식었고, 한때 그의 단골이었던 노동꾼들도 이젠 잘 벼른 수공구 대신 전동 기계 공구를 찾는 시절이다.

그 곁의 헌책방은 문을 연 지 30년이 됐다고 한다. 본디 아래쪽에 번화한 곳에 문을 열었으나 헌책을 팔아서는 비싼 임대료를 감당치 못해 이곳으로 옮긴 지 20년이 됐단다. 책방 주인은 “돈이 안 된다. 이젠 술값이나 벌려고 하던 일이니 문을 닫지 못하고 사람과 세월을 기다릴 뿐이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귀찮게 말을 걸면 그제야 고개를 들어 대꾸하곤 다시 책으로 눈을 옮겼다. 그에 따르면 책은 이제 끝났고 만화책은 돈이 된다고 했다. 30년의 세월이 묻은 덕에 그의 책방에는 구석구석 예술 서적부터 고급 전집류며 전공 서적까지 없는 것 없이 쌓여 있다. 요새 헌책방은 인터넷으로도 많이 영업한다는데 여긴 어쩌냐는 물음엔 “그거 하면 온종일 컴퓨터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컴퓨터가 주인 행세를 해서 못 쓴다”고 단호히 대꾸했다. 그는 자신이 쌓아둔 책과 자기 인생의 주인임이 분명했다. 우리는 때때로 무엇을 얻기 위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잊어버린다. 조금 덜 벌어도 된다는 결심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천호동 골목 곳곳은 한창 재건축과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천호동엔 꽤 큰 시장이 있었다. 순대 족발부터 반찬거리에 옷과 그릇까지. 없는 것 없이 넘치고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다. 멀리 신장과 광주 일대 사람들도 천호시장에서 장을 봐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천호시장이 있던 자리는 길게 담이 쳐졌다. 땅을 파고 주상복합건물과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이 시작됐다. 천호시장은 천호시장 교차로와 천호시장 버스정류소란 이름만으로 남게 됐다.

버스정류장 이름만 남은 천호시장

시장바구니를 든 노인에게 어디로 장을 보러다니냐고 물었다. 그는 굽은 허리를 펴며 “저기 고분다리시장이나 백화점 옆 대형할인점으로 간다. 마트 생기면서 천호시장이 쭈그러든 지 꽤 됐다. 그래도 없으니 불편하네”라고 답했다. 쪼그라들었어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라 세상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푸념한다. 천호시장에 아파트를 짓는 공사는 앞으로 3년이나 더 있어야 끝난다고 했다. 그 옆으로 내년 여름에 공사가 끝날 아파트가 있고 주변이 모두 재개발지역으로 묶여 있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리라고 한다.

골목 안에는 오래된 대장간과 헌책방도 있다.


천호시장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골목길은 천호동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 1980년대 이후 지은 양옥집이 낡은 모습으로 지키고 있다. 골목에 장의자를 놓고 앉은 두 노인은 치열하게 말싸움을 했다. “네가 나더러 첩살이했다고 했냐?”, “첩이라고는 안 했지”, “했다던데. 네가 해놓고 안 했다고 우기는 거라더라”, “아니라니까” 심란하고 심각한 대화인 듯싶었으나 이미 지나가 버린 시절 흉도, 탓도 없어진 덕분인지 말에 날은 서 있지 않았다. 노인들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비나리’하듯 꺼내놓고 어루만진다. 미움이 없는 싸움은 싱겁다.

천호시장이 사라진 덕에 고분다리시장은 졸지에 천호동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 됐다. 전통시장 현대화 덕분에 비를 맞지 않도록 천장도 씌우고 간판도 번듯해졌지만 큰 활기는 보이지 않는다. 겹치는 물건 없이 찬가게와 떡가게며 과일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과일가게 앞에서 노인 손님이 자꾸만 수박을 어루만지며 바쁜 주인을 쳐다본다. 한통 9500원. “이게 익었을까 안 익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예전 같으면 아직 수박 꼴도 못 볼 때인데 보니까 먹고 싶네” 그 선택이 운명을 가를 것은 아니겠으나 쉬운 결정은 없는 법이다.

천호공구거리는 동서울의 건설 기계 장비 중심지이다.


고분다리시장을 더 깊이 들어가면 정비된 시장통이 끝나고서도 가게들이 이어졌다. 아주 오래된 ‘삼거리 이발소’는 여전히 뺑뺑이 간판을 힘차게 돌리며 성업 중이고, 그 옆 빵집은 이 골목의 축복인 듯싶다. 멀쩡한 빵이 2개 1000원. 좀더 큼직한 빵은 3개 2000원. 믿을 수 없는 가격에 맛도 좋았다. 터를 잡은 지 아주 오래됐다는 빵집 주인은 손님을 맞다가도 부지런히 오븐으로 달려가 불을 봤다. 싸게 팔아도 될 만큼 장사는 잘되고 있나 보다. 콩물을 파는 가게 앞에선 주인과 친구가 골목 안 사정의 시시비비를 재판하고 있었다. 말끝에 지나가던 주민을 불러세워 누가 옳고 그런지를 되묻는다. 골목은 살아 있다.

지하철 5호선 길동역까지 이어진 천호3동 골목길은 지은 지 20년쯤 된 공동주택들이 들어차 있다. 들고 나는 사람들이 많아 부동산 업소가 성업 중이고, 간간이 높이 지어 올린 주거용 오피스텔도 보인다. 부동산 주인은 “여긴 정체된 지 오래다. 길가를 중심으로 서서히 개발 움직임이 있는데, 앞으로 10년은 이대로 유지될 것 같다”라고 했다. 교통도 나쁘지 않은데다 가격대가 다양해 세 살기엔 괜찮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아파트촌 건설이 지운 ‘천호동 텍사스’

천호동엔 한때 텍사스촌이란 이름의 골목길이 있었다. 서울의 미아리와 천호동에 있던 텍사스는 붉은 등이 켜진 홍등가였다. 그 두곳 모두 재개발로 이젠 사라진 역사가 됐다. 1990년대부터 한집 두집 들어섰다가 대략 30년을 버틴 끝에 끝장이 났다. 쇠심줄보다 더 질기고 잔혹하게 살아남았던 텍사스의 얼룩은 아파트 건축이 확정되면서 지워지고 말았다. 그 곁에 있던 동서울시장이며 낮은 지붕의 집들이 들어선 좁은 골목들도 조만간 삭제될 예정이다.

고분다리시장이 천호동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 됐다.


그 건너 강변과 붙은 천호2동 쪽엔 기계공구상가가 들어서 있고, 주변엔 인력소개소 사무실이 흔히 보인다. 공구상 주인은 “여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이 많다. 청계천이나 구로동 쪽 공구상과 달리 자잘한 공구에 농장용 예초기 등을 많이 취급한다”고 했다. 곳곳에 아파트 건축 현장이 많고 광주 쪽 농장에 일손도 많이 필요해 일거리 찾기는 쉬운 편이란다.

기계공구상가 뒤편 골목은 길게 완구 문구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1990년대부터 생겼다는 문구점과 완구점은 주변에 수입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어 동대문 완구 골목만큼의 활기를 보인다. 물건을 정리하던 점원은 요즘 가장 인기라는 뽁뽁이 퍼즐을 들며 “이게 가게에서는 1만8000원인데 여기서는 1만3000원이다. 도·소매 모두 하니까 부모들이 날 잡아 온다”고 했다.

천호사거리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거대한 풍납토성이 보인다. 풍납토성은 역사 속에서 잊혔다가 우여곡절 끝에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이곳에 2000여년 전의 역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실체를 드러내기 전까지 억측과 오해에 싸여 있던 고대사의 비밀이 풍납토성으로 풀렸다고 한다. 하나 그 실마리도 아파트 건설을 위한 지표조사가 시발이었다는 점이 오늘의 현실에서 수긍이 간다.

우리는 지나간 이들이 걸었던 길을 밟고 살아간다. 그 길을 잊었건 기억해내건 간에 홀로 걷는 길이란 없고 기껏 새로 닦은 길 또한 옛길이 겹쳐 있을 뿐이다. 천호동 골목들은 재개발되고 있거나 그럴 예정이다. 날로 높은 건물이 올라가 이제 활짝 펼친 하늘을 볼 수 있는 날들도 오래 남지 않은 듯싶다. 천년이 두 번이나 지나기 전, 침략한 고구려의 장수왕과 맞섰던 백제인의 후손이 이 골목을 걷고 있지 않을까. 천호동 골목에서 기억 너머 영원한 시간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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