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성씨 고택 대청마루 내려서면 제주바다에 닿는다
서울 창덕궁 수강재 밖 구미 대해폭포
제주 애월 해걸음 공사장 앞 포항바다..
사진풍경 속 움직이는 다른 풍경 영상
이질적 조합서 이상적 조화 찾은 작업
고요한 중에 움직임있는 '정중동' 세상
그런데 말이다. 저 완벽한 풍경에 ‘균열’이 있다면 믿겠는가. 손 하나 보탤 데 없는 저 매끈한 장면에 ‘태생의 비밀’이 있다면? 맞다. 사실 완전체로 보이는 저 풍경에는 누군가가 작정한 금이 들어 있고, 그 금을 따라 나선 데에 창과 문이 나 있으며, 그 창과 문 너머로 전혀 의도치 못한 또 다른 풍경이 꿈틀대며 들어차 있는 거다.
알 듯 모를 듯한 이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사진으로 촬영한 어느 풍경, 거대한 그 화면 안쪽에 사각 프레임이 ‘열려’ 있다. 액자처럼 걸린 게 아니라 열려 있는 거다. 그래서 문밖이고 창밖인 그 프레임 안엔, 사진이 이미 담아낸 전경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장면이 또 펼쳐지는데. 그저 다른 풍경 사진을 끼워 넣었나 보다 할 게 아니다. 풍경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래, 짐작한 바로 그거다. 영상으로 촬영한 또 하나의 풍경. 파도가 밀려들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폭포수가 떨어지고 눈이 내리는 그것들이, 사진 안에 길을 내고 있는 거다.
닮은 듯 다른 결합이지만 그저 짜맞추기 위한, 조작의 합체는 아니란 얘기다. 그때부터 비로소 그가 만든 ‘정중동’의 세상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게 됐다. 그 안엔 ‘숨죽인 듯 고요한 가운데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 드라마틱한 움직임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 작가 임창민의 ‘프레임’들이 걸린 곳이다. ‘앳 더 모멘트’(At the Moment)라고 했다. ‘지금에’란 뜻이려나, ‘현재에’란 뜻이려나. 굳이 그런 주제의 전시명이어야 한 건 역설적으로 ‘지금에’로도, ‘현재에’로도 가능하기 때문일 거다. 두 개의 공간을 펼치고 두 개의 시간을 가둬 우리 눈앞에 나란히 펼쳐놓는 일이니까.
그렇다. 사진과 영상 그 합체로 작가가 담아내려 한 것은 사실, 풍경 그 이상인 ‘시간’이다. 그 시간을 담아내려는 데 풍경이 적절했을 뿐이고,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려는 데 사진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인가. 작가는 모든 작품에 ‘시간 프레임 속으로’(Into a Time Frame)란 타이틀을 붙였다.
그럼에도 작가의 작품 안에선 시공간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멀쩡히 존재하는 실제공간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떡하니 꺼내놓고 “이런 데는 없습니다”하는 셈이니까.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최소한 그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를 향하는 일이다. 가령 그이의 전시작 중 유일하게 사진과 영상이 겹치는 해인사 연화문의 눈 오는 풍경(‘시간 프레임 속으로: 산사의 눈’ 2021)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말이다. “연화문을 통해 내다본 꽉 막힌 풍경이 늘 답답했다. 그래서 그 답답한 전경을 걷어내고 눈이 소복이 쌓인 지붕, 확 트인 하늘과 산세가 보이는 영상을 들였다.”
멈춤과 움직임 늘 공존하는…어차피 이중적 세상
미디어아티스트로 불리는 작가지만 사실 전공은 사진도 영상도 아닌 응용미술이란다. “회화와 디자인의 경계라고 할 거다. 대학시절 사진에 기웃거렸던 게 계기가 됐다.” 그간 시도해온 형태는 다양하다. 비행기 창문 밖을 내다보게도 했고 회색벽에 걸린 액자를 들여다보게도 했다. 이번 전시작이 좀더 ‘생생’할 수 있었던 건 2019년 연구년으로 가 있던 미국 포틀랜드에서 촬영한 사진·영상을 보탠 덕이다. 전시에는 폭 300㎝ 대작부터 한눈에 들어오는 75㎝ 남짓한 작품까지 16점을 걸었다. 에디션은 8점 정도 만든다고 했으니 흔치 않은 ‘베스트 중 베스트’를 옮겨왔을 거다.
한바탕 긴 여행을 끝내고 진짜 현실로 돌아오는 길. 새삼 뒤돌아본 세상풍경이 작가의 작업을 닮아 있었다. 저곳에선 고정된 하나의 프레임을 서로 강요하지만, 그 안쪽세계는 늘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던가.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이중적이란 얘기를 작가가 에둘러 꺼내놨을 뿐이다. 멈췄다고 생각한 것이 움직이고, 흔들린다고 믿는 것이 정지해 있는. 실제라고 확신했으나 환상이었고, 꿈이라고 몰아갔던 일이 현실이 되는. 문득 ‘포항 화진해수욕장 허름한 간이건물 밖에 펼쳐진 제주 사계바다의 해넘이’가 아른거리는 것을 보니, 그 세상 구경을 제대로 한 거지 싶다. 전시는 7월 3일까지.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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