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어청도까지 왔나, 아름답고 귀한 손님 '바람까마귀'

한겨레 2021. 6. 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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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세계적 철새 기착지 '보물섬' 어청도, 개발로 먹이터 사라져
'새 어디 많나' 탐조인 물으면 '쓰레기장 가보라' 답 돌아와
낯선 모습의 이 까마귀는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에 주로 살다가 길을 잃고 우리나라를 찾아온 희귀한 바람까마귀이다.

바람까마귀는 길을 잃고 한반도를 찾아오는 매우 드물게 관찰되는 새다. 1959년 11월 11일 경남 고성에서 처음 한 마리가 채집된 이후 제주도, 전남 신안 홍도, 전북 군산, 인천 옹진 백령도, 소청도, 굴업도 등지 가끔 관찰된 기록이 있다.

5월 16일 늦은 저녁 무렵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하늘에 검은 새가 날아간다. 검은바람까마귀인지 바람까마귀인지 날아가는 모습을 얼핏 봐서는 무언지 알 수 없다. 이튿날 이른 아침 야산을 개간해 밭으로 사용했던 평평하고 개방된 풀숲을 찾아갔다.

대부분의 새는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버려둔 밭을 찾는다. 특히 넓고 평평한 곳은 바람까마귀과 새들이 사냥하기 좋은 곳이다. 예측한 대로 바람까마귀가 나무에 앉아있다. 그것도 부부가 함께 있다. 처음 보는 바람까마귀에 마음이 설렌다. 큰 행운을 잡은 것 같다.

안개 낀 이른 아침 바람까마귀 부부가 사이좋게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검은바람까마귀도 바람까마귀마 함께 있다. 검은바람까마귀는 꼬리가 끝으로 내려가면서 갈라져 있고 부리가 곧게 벋어 바람까마귀와 차이가 난다.

날씨는 잔뜩 흐리고 안개가 끼었다. 가끔 비가 내리다 이윽고 안개가 사라졌다. 바람까마귀는 젖은 날개를 털어내고 하늘을 나는 곤충들을 사냥한다. 바람까마귀가 나는 모습은 검은바람까마귀보다는 유연하지 않아 보인다. 바람까마귀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바람까마귀가 날벌레를 발견하고 사냥을 한다.
바람까마귀가 날벌레를 발견하고 공중에서 낚아채려 한다.

바람까마귀는 사냥감 관측을 위해 높거나 낮은 나뭇가지를 횃대로 정해 놓고 옮겨 다니며 기다리다 날아오르는 곤충을 보면 풀숲의 평지를 낮게 날며 물결처럼 혹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으로 날아가 독특한 사냥을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나뭇가지 횃대와 풀숲을 오가며 부지런히 움직인다.

몸무게가 새치고는 무거운 90g 가까이 나가니 먹이를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어청도는 현재 습지와 농경지가 많이 사라져 먹이원이 풍부하지 않다. 여름 철새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지정석 횃대로 날아와 앉는 바람까마귀.
바람까마귀는 나무에서 오래 쉬는 법이 없고 지속해서 사냥한다.

5월 19일 오랜만에 쾌청한 날씨다. 깃털이 젖어 꽤 지저분해 보이던 바람까마귀가 사흘 전과는 달리 미끈하게 정돈된 깃털에 광택이 난다. 바람까마귀를 자세히 살펴보면 부리가 시작되는 곳과 이마 앞에 머리칼처럼 길게 뻗은 몇 가닥의 깃털이 있다. 귀깃 뒤와 가슴에 비늘 모양의 유난히 검푸른 색 깃털이 뚜렷하게 반짝인다. 어깨깃과 작은날개덮깃, 작은날개깃와 큰날개덮깃, 첫째날개덮깃 셋째날개깃과 둘째날개깃은 검고 푸른빛을 띤다. 얼굴 목 등 배 옆구리 허리는 검고 꼬리는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색이다.

비에 젖어 초췌하던 깃털이 말라 온전한 모습을 갖춘 바람까마귀.

긴 꼬리는 끝으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며 꼬리 끝에서 바깥 양쪽 꼬리의 모서리가 약간 위쪽으로 말려 있다. 눈 홍채는 갈색이다. 부리와 다리는 검은 회색이다. 몸매가 날씬하다. 깃털은 암수가 차이 나지 않는다.

바람까마귀는 어청도를 찾아온 지 4~5일쯤 지나자 사냥 장소를 옮기고 절벽 위 아주 높은 나무에 앉아있다가 평지로 가끔 내려와 사냥할 뿐 곁을 주지 않는다. 어청도를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검푸른 광택과 살짝 말린 꼬리 끝 깃털이 유난히 눈에 띄는 바람까마귀.

바람까마귀는 방글라데시, 인도와 부탄에서 중국,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에 이르는 동남아에 서식한다. 몸길이는 24~32㎝이며, 수컷이 암컷보다 약간 더 크다. 주로 혼자 활동하며 쌍으로 살기도 한다.

날벌레, 개미, 딱정벌레, 메뚜기와 다른 무척추동물뿐만 아니라 작은 척추동물, 새, 쥐, 작은 파충류 및 양서류를 먹을 수 있다. 열매와 작은 과일까지 먹는 잡식성이지만 곤충을 매우 좋아한다. 영역을 정해 놓고 그 영역을 돌아다니며 먹이 사냥을 한다.

사냥을 마치고 나뭇가지 속에 몸을 숨기고 휴식에 들어간 바람까마귀.

짝짓기 기간 바람까마귀는 평소보다 노래 실력을 끊임없이 발휘하고 침입자에게 공격적으로 변한다. 가지 끝에 평평하고 오목한 둥지를 짓는다. 바람까마귀는 일부일처제의 새이며 일반적으로 3~4개의 알을 낳고 번식기에는 암수가 교대로 20일간 알을 품고 부화 후 21일 정도면 둥지를 떠난다.

필자가 해마다 어청도를 방문하면서 아쉬운 점은 저수지 아래 습지가 사라지고, 그나마 있던 밭마저 휴경지가 되어 새들의 먹이원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정된 섬의 환경적 요인을 검토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당연한 결과로 어청도를 찾아오는 새들이 크게 줄고 있다.

어청도는 세계적으로도 오스트레일리아-동아시아의 철새 이동 경로에 있는 새들의 중간 기착지로 잘 알려진 보물섬이다. 군산시는 이런 천혜의 자원을 보호하고 자연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자연환경을 보전할 책무가 있는 환경부에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죽하면 새들이 쓰레기 집하장에서 먹이를 찾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바람까마귀도 예외는 아니다. 어청도 탐조를 다녀온 탐조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새 어디에 많아요' 하면 ‘쓰레기장에 가보라’는 답이 돌아온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고 새들이 머무는 시기인 4~5월에 풀숲으로 변해버린 밭의 풀만 잘 깎아 줘도 새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저수지 아래 습지를 복원해주면 어청도의 생태계는 살아날 것이다. 여름 철새가 이동 중에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정거장이 아닌 꼭 필요해서 찾아오고 싶은 여름 철새들의 천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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