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다른 열망이 빛난다..부산 바다마을 이야기

부산 | 글·사진 김종목 기자 2021. 6. 9. 21: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영도는 부산항 대교 개통 이후 인기 야경 조망지로 떴다. 산과 하늘을 배경으로 대교, 부두, 주택의 불빛이 어우러지며 부산 특유의 야간 경관을 만들어낸다. 풍경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산업화의 역사도 층층 쌓여 있다. 영도 와치산로 신기산업 옥상에서 촬영했다.
세월의 때가 묻으며 겹겹으로 형성된 골목길,
지친 몸 누이던 ‘하꼬방’, 층층계단 옆 담벼락의 벽화…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흰여울마을에 새겨진 삶의 흔적들에 매혹된다
해가 지면 고된 노동도 가난한 이의 삶터도 가리는 화려한 불빛들…
해안선마다 자리 잡은 빌딩 사이로 ‘경관의 불평등’은 깊어간다

문에 들어서자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얼굴이 담긴 판화가 눈에 들어온다. 한 귀퉁이에 “김종철 선생님을 각(刻)하다”라고 적혔다. 판화 곁 책 선반엔 <땅의 옹호> <대지의 상상력> <녹색평론 선집> 등이 꽂혔다. 고인의 1주기(6월25일)가 다가와 더 눈이 갔다. 서가 책들이 예사롭지 않다. 조지 오웰, 마르크스, 리베카 솔닛의 책에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도 있다.

지난 3일 부산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을 걷다 작고 이쁜 테라스를 둔 건물 하나가 보여 들어갔다. 이곳은 손목서가(흰여울길 307)다. 인테리어용 칠판엔 ‘바닷가 서점’이라 적었다. 동행한 이가 “여기 어쩐 일이냐”며 주인과 아는 척한다. 손문상 화백이다. 아내 유진목 시인과 독립서점인 손목서가를 꾸린다. 유 시인이 서가를, 손 화백이 주방을 담당한다. 서점 명은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왔다.

3일 부산 영도 흰여울 마을엔 비가 내렸다. 절영 해안길은 테트라포드와 자연해안 암석이 어우러진다.
손목서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판화. 손문상 화백 작품이다.

여행 묘미 중 하나는 예기치 못한 발견이다. 손목서가나 판화가 그랬다. 부부는 2018년 4월 가게를 냈다. 손 화백은 2년 동안 동네가 많이 변했다고 한다. 이곳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중이다. 주민들 간 마찰도 가끔 일어난다.

“세월의 때가 겹겹 묻으며 형성된 골목길 정체성을 살려가면서 리모델링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기존 건물들을 때려 부수고 상가 건물을 짓곤 해요. 새 가게들이 주민들 사생활도 고려하지 않고 창을 내기도 해요.”

흰여울마을도 사생활 침해, 지가 상승, 관광객에 대한 반감 등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을 겪었다. 2019년 83만명이 방문했다. 좁은 골목과 층층계단으로 이뤄진 마을의 수용력을 초과했다.

4일 흰여울 마을을 다시 찾았다. 계단길과 절영 해안길.
흰여울 마을 절영 해안길. 저 거대 콘크리트 구조물은 태풍과 산사태 방지용이라고 한다.
영도 절영 해안길. 송도해수욕장을 둔 암남동을 1송도, 흰여울 마을을 2송도라 불렀다. 오른쪽 다리가 남항대교.

부산발전연구원은 2018년 낸 보고서에서 “흰여울마을 주민들은 지가상승으로 터전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오버투어리즘과 젠트리피케이션이 다시 두드러질지 모른다. 연구원의 대안은 관광지 예약제, 책임 관광 문화 구축, 묵음 존(Silent Zone) 설치다.

손목서가에서 책 한 권 사서 나왔다. 폴 서루의 <여행자의 책>(책읽는수요일)이다.

“어떤 곳이 낙원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면 이내 지옥으로 바뀐다는 사실은 공리에 가깝다”(<오세아니아의 행복한 섬> 중). 젠트리피케이션과 갈등 없이 주민과 상인, 방문객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마을이라면 낙원에 비유해도 될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 화백은 프레시안에 연재한 ‘손문상의 흰여울 일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갈라지면 덧붙여 잇고 막히면 길을 내고, 십시일반 쌓아 올려 지친 몸을 누일 방 한 칸을 만든 겹겹의 층위는 흰여울마을이 지닌 생존의 실체입니다.”

저 ‘봉래산 아래로 난 겹겹의 층위’ 사이 ‘하꼬방’과 ‘층층 계단’ 옆 담벼락에서 “나쁜 날씨란 없다. 다른 날만 있을 뿐이다”라는 문구를 읽었다. 지난 3일 비가 내렸다. 안개도 자욱했다. 취재 일정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 덜어냈다. 언제 또 비 내리는 흰여울을 볼 수 있을까 하고 비 내리는 마을에 집중했다. 마을 길 아래 절영 해안길을 산책하는 한 커플의 노란색 우산이 비구름으로 어둑한 해안가 일대에서 환하게 빛을 냈다. 그 길 너머 우중의 묘박지(錨泊地: 선박이 계류, 정박하는 장소로 선박의 정박에 적합하도록 항 내에 지정한 넓은 수면)에 배들이 닻을 내린 채 물결 위로 부유했다. ‘배들의 주차장’엔 일거리가 없어 장기 대기 중인 배들도 있다고 한다.

절영 해안길 흰여울 해안터널. 연인 한쌍이 촬영에 흔쾌히 응해줬다.
흰여울 마을길 옆 바다의 묘박지(錨泊地, 선박이 계류, 정박하는 장소로 선박의 정박에 적합하도록 항내에 지정한 넓은 수면)에 배들이 닻을 내리고 부유했다.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해가 지는 쪽으로 가야 해.” 어린왕자를 그린 벽화엔 <어린왕자>의 글이 새겨져 있다. 감천문화마을의 어린왕자와 여우 조형물이 인기를 끈 덕일까. 4일 찾은 송도해상케이블카 승강장 옥상은 아예 어린왕자 테마파크로 꾸몄다.

서루는 <여행자의 책>에서 “풍경은 거기 있는 사물들의 이름을 알 때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흰여울. ‘봉래산(396.2m) 기슭에서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마치 흰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 같다’고 붙인 이름이다. 흰여울마을을 이송도라 부르기도 한다. 송도해수욕장을 둔 암남동이 1송도, 흰여울 마을이 2송도라는 뜻이다. 두 곳을 오가면 각각의 풍경과 매력 덕에 제1과 제2의 구별이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흰여울 마을 골목에서 만난 어린왕자 이미지와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해가 지는 쪽으로 가야 해”라고 적은 글귀.
송도해상케이블카 승강장 옥상은 아예 어린왕자 테마파크로 꾸몄다. 쁘띠프랑스 등 전국 여러 관광지가 어린왕자로 조형물 등을 만든다.
송정해수욕장과 서퍼들. 서퍼홀릭은 ‘송정에서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평일 하루 숙박에 7만~15만원 하는 호텔 30일, 서핑 강습 10회와 무료렌털 30일을 포함해 120만원에 내놓았다. 여기에 밥값만 더하면 된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하는 이들도 ‘한달살기’에 온다는 말을 들었다.

흰여울마을 주민들은 ‘2’에 개의치 않는 듯했다. 마을 ‘이송도 전망대’ 안내판에 주전자섬, 대마도, 남형제도, 암남공원, 송도해수욕장, 남항대교를 표시한 대형 가로 사진을 붙였다.

영도 역사는 흰여울마을의 층층처럼 쌓였다. 옛 이름은 절영도(絶影島)다. <고려사>엔 924년 “견훤이 사신을 보내 절영도의 명마를 바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절영은 ‘명마가 빨리 달려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영도 목마장에서 기른 말이 ‘절영마’다. 신라 성덕왕이 김유신 손자인 윤증에게 절영마를 선물로 줬다는 기록도 있다.

한반도 최초로 고구마를 재배한 곳이다. 1763년(영조 39) 통신사 조엄이 대마도에서 가져온 종자를 모내기하듯 뿌렸다고 해 조엄의 조와 모내기의 내기를 따 조내기라 불렀다고 한다. 한국해양대가 있는 조도(朝島)의 다른 이름은 아치섬이다. ‘작고 귀여워 예쁜 것’을 표현할 때 쓰는 ‘아지’가 아치가 되었다는 설, 부산포해전 때 이곳에 주둔한 왜군 깃발을 끌어 눕혔다 하여 ‘눕힐 와(臥)’와 ‘깃발 치(幟)’를 써 부른 와치섬이 아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역사는 동삼동 패총을 포함하면 신석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영도에 뚜렷하게 남은 건 일제 유산이다. 미광마린타워 아파트는 일본경질도기 자리다. 이 공장은 전쟁 미화 그림을 새긴 도자기를 만들어 팔았다. 영도는 일제의 수산 침탈 거점이었다. 조선소거리에는 일제강점기 때 독, 물양장, 공장건물 등이 남아 있다.

옛 지명을 살린 조내기로와 와치로가 교차하는 곳이 부산 야경 조망지 중 하나다. 일대엔 ‘바다뷰 카페’들이 들어섰다. 지난 4일 신기산업 옥상에 올랐다. 회사 사옥을 카페로 운영하면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조내기로와 와치로 일대 조망지들은 영도구 청학동과 남구 감만동을 연결하는 부산항대교 개통(2014년) 이후 부각했다.

부산항대교 왼쪽이 북항재개발구역이고 오른쪽이 감만동이다. 감만포는 1635년(인조 13)부터 1652년(효종 3)까지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19~1927년 지금의 감만동, 1934~1937년 말 우암동이 매립됐다. 감만포 일대에 일본 육군 선박 수송 부대인 아카쓰키 부대가 주둔했다.

사람들이 왜 이곳에 야경을 보러 몰리는지 이유를 알 듯했다. 일몰 즈음 노동과 휴식의 공간에서 하나둘 발하는 빛들이 거대하고 역동적인 풍경을 이룬다. 시시각각 색깔이 변하는 일몰과 어우러질 때의 야경은 초대형 미디어아트라 할 법하다. 낮에 시야를 가리는 빌딩 불빛도 올망졸망한 주택과 함께 빛을 냈다.

부산의 낮과 밤은 다르다. 야경은 ‘낭만’의 이미지 때문에 야간 노동도, 낮의 고된 삶도 가리곤 한다. 한국전쟁 때 밤에 부산항에 도착한 미군이 불빛을 보고 빌딩의 그것인 줄 알고 놀랐다고 한다. 아침에야 전날 불빛을 낸 것들이 빌딩이 아니라 판잣집인 걸 알고 다시 놀랐다는 이야기가 야사처럼 내려온다. 낮이 되면 감만포 일대의 재개발, 부둣가 노동자들의 노동, 가난한 이들의 삶터가 다시 드러날 것이다.

감만동 일대 부두는 부산의 해안선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해안선 길이는 306.2㎞다. 육지와 섬 지역 해안에다 방파제, 부두 등 인공해안 등을 포함한 길이다. 부산은 자연해안과 인공해안이 묘하게 공존한다. 한때 혼돈과 부조화로 보인 지형지물이 지금은 혼종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과거 부산 사람들이 해안을 중심으로 어로, 수렵, 농경으로 생존했다면, 지금은 해안선 따라 난 상업과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먹고산다.

‘부산 관광’의 핵심 시설이 해안선에 몰려 있다. 부산진역에서 포항역을 오가던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 중 해운대구 미포~청사포~송정(4.8㎞)을 잇는 해변열차가 그중 하나다. 기찻길 옆으론 둘레길도 만들었다. 달맞이고개 너머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에선 부산 자연해안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청사포다릿돌 전망대.
해운대 미포-청사포-송정을 오가는 해변열차.

청사포 설화는 이곳이 실종·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던 삶터라는 걸 보여준다. 용왕이 고기잡이 나가 사라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에게 푸른 뱀(청사·靑蛇)을 보냈고, 아내가 이 뱀을 타고 용궁으로 가서 남편과 백년해로했다는 이야기다. 전국 바닷가마을에 죽거나 실종된 어부 남편과 그를 기다리는 아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아내가 목매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설화가 많은 걸 보면, 청사포 설화는 해피엔딩인 셈이다. 지명에 뱀이 들어갔다고 푸른 모래라는 뜻의 청사포(靑砂浦)로 바뀌었다.

부산연구원이 전문가·직원 추천, 지역 언론사와 SNS 키워드 빅데이터를 분석해 내놓은 2020년 부산 10대 히트 상품’에 ‘미포~청사포~송정’을 오가는 해변열차가 들어갔다. 10대 상품은 거대 건축물, 랜드마크 같은 토건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 가덕신공항, 이케아, 경부선 지하화가 포함했다.

부산 동백섬 요트 계류장엔 비내린 뒤 고인 물에 비친 건물 반영을 촬영하러 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맑은 날에 물 한두 바가지 바닥에 뿌리고 촬영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해안선에 들어선 고층건물군은 그 자체로 풍경을 이루지만, 장벽처럼 들어선 탓에 건물군 뒤 사는 이들의 시야를 막기도 한다.

또 하나가 엘시티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 집계를 보면, 2021년 6월 기준 세계 고층 빌딩 78위다. 100위 안에 들어가는 나라는 아시아와 중동 국가가 대부분이다. 현대 마천루 모델과 건축 기술의 원조 격인 유럽에서는 초대형 마천루를 찾기 힘들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는 <길모퉁이 건축 : 건설신화를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에서 “(유럽은) 역사도시를 훼손하고 개발의 도구로 악용되는 초고층건물에 유보적이었고, 각종 도시건축 관련법으로 건설을 제한했다”고 말한다. 그는 “도시와 건축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설계하는 관성”을 지적했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엘시티가 해안선에 장벽처럼 우뚝 서 시야를 가로막는다. 점점 바다 조망은 부자들만의 것이 되어간다. 경치 좋은 해안선엔 어김없이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다. 경관의 불평등은 깊어진다. 부산의 매력 중 하나는 여러 곳에서 바다를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인데, 그 바다를 온전히 감상하려면 주상복합아파트에 살거나, 전망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해변열차 출발지인 미포 부근 오래된 빌라 앞엔 “상가건축 결사 반대”라고 적은 현수막이 내걸렸다. 몇몇 주민들이 해변길 주변 밭에서 농작물을 가꿨다.

부산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