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종로5가는 약국 거리? 개신교 타운이 더 먼저!
서울 종로5가는 약국 거리로 유명합니다.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에 내리면 어떤 출구로 나오더라도 사방에 약국이 즐비합니다. 건물 1층은 거의 약국들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지요. 전국에서 박카스가 가장 싼 곳이 종로5가 약국들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종로5가에서 북쪽 대학로쪽으로 살짝 올라가면 ‘개신교 타운’이 펼쳐집니다. 한국기독교회관과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이 나란히 이웃하고 있고요, 길건너 맞은편엔 연동교회가 있습니다. 연동교회를 끼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교단의 총회 회관인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이 나옵니다. 그 뒤편으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여전도회관이 있고요. 주변엔 정신여고의 옛터도 있습니다. 가히 ‘개신교 타운’이라 할만 하지요. 이런 개신교 건물에는 수많은 단체·기관이 입주해 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계에선 ‘종로 5가’ 혹은 ‘종로 5가 사람들’이란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개신교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왜 개신교 단체들은 종로 5가에 모였을까요. 불교 단체나 기관들은 조계사 주변, 천주교 단체·기관은 명동성당 주변 특히 가톨릭회관에 모여있는 것은 각각 조계사와 명동성당이라는 상징적인 종교 기관이 있으니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개신교 기관·단체들은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장로교)나 정동제일교회(감리교)가 있는 광화문이나 정동쪽이 아니라 왜 종로 5가로 모였을까요.
시작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부터였다는 것이 개신교계의 정설입니다. 서울 정동에 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가 1894년 연지동으로 이전을 결정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당시 북장로교 선교회는 정동 덕수궁 인근 선교회 땅을 팔아 새로운 선교 단지를 만들기 위해 1903년까지 연지동 일대에 거의 한 블록에 이르는 땅을 샀다고 하지요. 1894년 연동교회가 설립되고 선교사들은 1895년 정동에 있던 정동여학당을 옮겨와 사립연동학교를 세웠지요. 오늘날 정신여고의 뿌리입니다. 또 1901년엔 경신학교를 연지동에 세웁니다. 두 학교 모두 정동에 있다가 옮겨 왔지요. 이렇게 교회와 남녀 학교, 그리고 선교사들의 사택이 자리잡으면서 ‘종로 5가 개신교 타운’이 시작된 것이지요.
정신여고는 1978년 서울 송파구로 이전했지만 옛 건물은 지금도 연지동에 남아있습니다. 바로 옆 SGI서울보증 구내에는 정신여학교 출신으로 대한애국부인회를 만들어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김마리아(1892~1944)의 흉상이 서있습니다. 흉상은 3·1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 SGI서울보증 임직원이 만들어 김마리아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연지동엔 ‘김마리아의 길’도 있습니다. 연동교회-세브란스관(정신여학교 옛 본관)-회화나무·김마리아 흉상-선교사의 집-여전도회관으로 이어지는 코스지요. 사실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는 선언으로 유명한 김마리아는 연지동 개신교 타운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황해도에서 태어난 김마리아는 서울로 이사와 연동교회에 출석했고, 정신여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문을 숨겨서 국내로 들여와 민족지도자들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3·1운동 이후 옥고를 치른 김마리아가 요양한 곳이 정신여학교 뒤의 선교사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연동교회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여전도회관엔 역사 사료실도 마련돼 있으니 코로나가 끝나면 산책 삼아 연지동 투어에 나서도 좋겠습니다.
‘종로5가 개신교 타운’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1968년 한국기독교회관이 세워지고 1984년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987년 여전도회관, 1994년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이 연지동에 세워지면서 여전히 개신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요. 한국기독교회관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요람 역할도 했습니다. 2층 강당에선 수시로 시국강연회도 열렸고요. 1992년 목동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CBS기독교방송도 이 건물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연지동 주변에는 곳곳에 선교단체와 개신교 관련 기관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개신교 내부의 각종 송사(訟事)를 전문으로 다루는 법률사무소도 있습니다. 조계사 근처에선 스님들을, 명동성당 부근에선 신부님들을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이듯, 종로5가에선 목사님, 장로님들을 수시로 마주치게 됩니다.
한때 한국기독교회관엔 진보적 개신교계를 대변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엔 보수 개신교계를 대표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입주해 바로 이웃한 건물에서 각기 다른 개신교계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요. 최근에는 한국 개신교 주요 교단 30여개가 가입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한국기독교회관에 입주했습니다. 한교총은 9층, NCCK는 7층에 각각 입주해 있지요. 한국기독교회관이 개신교계 ‘대표 건물’(?)의 위상을 찾았다고 할까요. 덕분에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 김부겸 총리는 개신교 방문 때 같은 건물에서 위아래층으로만 이동해 한교총과 NCCK 지도자를 ‘원스톱’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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