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들어서는거 아니었어?".. 신규택지 둘러싼 정부와 지자체의 '동상이몽'
정부가 지난해 5·6대책과 8·4대책에서 대규모 신규공급 택지로 선정한 곳들에서 지자체가 정부 계획과 다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에 지자체가 ‘탈출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급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하되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을 설득할 수 있도록 아파트 외의 시설들도 함께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김종천 과천시장은 김부겸 국무총리를 만나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들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천 시장이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제시한 부지는 과천 정부청사부지로, 지난해 4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공급부지로 선정된 곳이다.
김 시장은 당초 정부청사 부지에 복합환승센터나 의료·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며 정부 발표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그러나 반발이 소극적이라고 생각한 과천 주민들에 의해 주민소환 절차까지 진행되고 있다. 김 시장의 이건희 미술관 카드는 지역 내 반발 여론과 정부의 4000가구 공급 계획을 함께 잠재우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4일 당정 협의를 열고 과천청사 유휴부지 개발을 취소하기로 급선회했다.
서울 용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용산 주한미군 기지 이전으로 나온 캠프킴 용지에 31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 1일 용산구는 지구단위계획 변경 결정안을 주민 공람하기 시작하면서, 캠프킴 부지를 일반상업지역으로 상향하고 한강변 오픈스페이스·공공청사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역시 용산구 측에서 정부의 주택공급계획을 정면으로 반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과천 정부청사부지와 용산 캠프킴 부지만 하더라도 정부가 8.4대책에서 발표한 서울 안팎의 신규택지공급 계획 3만3000가구 중 20%가 넘는 7000여 가구의 계획이 꼬인 것이다.
다른 지역들도 공급 계획이 난관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다. 신규택지공급 중 가장 많은 1만 가구가 계획된 노원구 태릉 골프장 부지 일대는 당초 이번 달까지 교통 대책 마련과 지구지정이 마무리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태릉 일대 주민들의 반대와 노원구의 공급 규모 축소 건의에 일정을 연말까지 늦추기로 했다.
공공 주도 공급보다 민간 주도 정비사업을 선호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취임도 사업 진행의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태릉과 함께 서울 내 최대 규모 공급 택지로 예정된 용산의 철도정비창 부지를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육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1기 시정 당시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밑그림을 그렸던 오 시장이기에, 시장에선 용산에 대규모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오 시장은 선거기간 모두 6200가구를 공급이 계획된 마포구 상암동에 대해서도 “손쉬운 곳에 주택공급을 늘려 생색을 내고자 하는 중앙정부의 갑(甲)질로 희생될 장소가 아니다”라고 밝혀 사실상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특히 용산과 태릉이 국유지인 데 반해, 랜드마크 부지(2000가구)와 서부면허시험장 부지(3500가구)는 시유지라서 오 시장의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오 시장뿐 아니라 마포구의 반발도 극심하다. 서부면허시험장 부지의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를 매입할 경우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마포구의 반대로 교환 작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정부가 주택 공급 수에 연연해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을 키우기보다는 다양한 주거 인프라·자족 시설을 포함해 설득하는 ‘운용의 묘’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공급은 정권을 막론하고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면서 “작년에 발표한 공급대책을 꾸준히 추진해 5~6년 정도 공급이 이뤄져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 채라도 공급돼야 가격이 안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 하락의 신호탄은 ‘미분양’”이라며 “미분양이 나올 때까지 공급하면 세금 규제는 필요도 없다”고 했다.
고준석 교수는 그러면서도 “대상지에 전부 아파트만 넣는다면 부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기존 주거지역의 효율을 높이고 공급을 늘리는 방안이 최선이지만, 신규 택지로 아파트를 공급할 때는 숨 쉬는 공간이라도 포함해 시민들에게 (공간을)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아파트 공급은 원칙대로 진행돼야 한다”면서도 “단순히 주택만 공급하겠다는 기존의 개발 방법을 넘어 새로운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 상업시설은 물론 문화·예술시설을 포함한 복합적 형태로 개발을 추진해야 기존 주민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공급 계획에 우호적인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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