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 아들의 살인예고, 아버지 SOS는 왜 외면 당했나(종합)

이민지 2021. 6. 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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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민지 기자]

조현병 아들에 살해 당한 아버지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6월 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피해자가 사전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참혹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남양주 살인사건을 파헤쳤다.

한달전 경찰의 검거 현장. 차량 안에는 검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남겨있다.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 안에서 발견된건 커터 칼 한자루, 피해자 이씨의 것이 아닌 휴대전화 미납요금 독촉장 등이 발견됐다. 살인범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여러장의 메모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죽일 수 밖에 없어', '살인허가' 등 누군가를 살해하겠다는 끔찍한 다짐과 계획으로 가득했다. 이 살인예고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경기도 한 빌라에 살던 피해자 이씨가 사라진건 지난 5월 5일이었다. 주차장에 차가 없는 것까지 확인하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는 매제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성인남성인 이씨의 연락두절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의 불길한 예감은 참담한 비극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6일 오전 11시께 빌라 주민에 의해 경기도 남양주 한 다세대주택 뒤편 화단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빌라 주민이 아니면 잘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숨진 이씨는 자신이 살던 빌라 3층에서 추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신 검안서를 확인한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씨의 사인은 두개골 골절 및 뇌내 손상. 단순 추락사로 보기 어려운 상처였다. 둔기에 의해 수차례 가격당한 손상이고 명백한 타살을 의미했다. 부검 결과 두개골 뿐 아니라 갈비뼈도 골절된 상태였다. 법의학자는 "시망한 상태에서 시체가 유기, 추락됐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범인이 도주에 사용했던 피해자 이씨의 차량에는 범행 당일 사용한 여러장의 카드 영수증이 있었다. 범행 직후 그는 강원도 옷가게에서 옷을 샀다. 옷가게 주인은 영수증을 보자 특이한 손님을 단번에 기억해냈다. 옷가게 직원은 "옷을 사면 치수도 보고 해야 하는데 그냥 집어서 '이거 주세요 이거 주세요' 했다. 처음엔 좀 황당했다. 다른 손님이 '간첩아니냐' 그러더라", "바지도 신발도 집히는대로 샀다"고 회상했다.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한시간에 걸쳐 다양한 옷을 구입한 범인은 피팅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입고 왔던 옷은 포장해달라고 요구했다. 범행을 계획하고 예고했을 뿐 아니라 증거인멸까지 시도한 것이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한 것은 시신 발견 5시간 후였다. 경기도 안산 한적한 산길에 차를 세워두고 있던 범인은 도주를 시도했으나 검거됐다. 차에서 내린 범인은 "왜 내 차 유리를 깼냐?", "내가 죽인거 봤어요?"라고 말했다고. 검거 당시 차 안에서 갈아입었던 옷과 신발은 발견되지 않았다. 집안에서 발견된 둔기와 DNA, CCTV 촬영된 영상 외에도 증거가 된 것은 차에서 발견된 그의 일기장이었다. 그날 피해자 이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 당일 집 주변 진입로 방범카메라에 따르면 5월 5일 오전 8시 7분 피해자 이씨의 차량이 집으로 들어간다. 33분 뒤 집에서 나온 차량은 도로로 바로 나가지 않고 마을 입구 편의점 앞에 정차한다. 이날 편의점을 찾은 사람은 피해자 이씨의 아들이었다. 늘 현금으로만 물건을 사고 돈 없어 쩔쩔 매던 이씨의 아들은 이날 따라 처음 보는 카드로 담배를 한보루나 구입했다고 한다. 다음 날 아버지 이씨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건 바로 이 아들이었다.

피해자 이씨 시신을 발견한 주민은 범인이 아들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얼마 전 집을 떠나 노모와 함께 지내던 아버지는 식료품을 사다주러 가끔 집에 들렀다. 29살 아들은 아버지가 떠난 후 거의 접촉하는 사람 없이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아들 이씨가 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 아버지 죽음과 아들이 관련있다고 예감했던 건 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2살 되던 해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워왔다던 이씨.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 살인예고를 하고 끝내 실행에 옮겼다. 아들은 왜 아버지를 살해한 것일까.

수사 종결 후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만난 이씨의 매제는 사건 현장이 모두 정리되기 전 집안에서 확인할 것이 있다고 했다. 사건 당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안. 8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들과 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는 피해자 이씨가 아들을 혼자 두고 노모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씨 매제는 "얘가 자꾸 살해위협을 하니까 집에 칼을 둘 수가 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아버지가 칼을 없애면 아들이 칼을 사다두곤 했다고 한다. 싱크대 환풍기 안쪽 구석에 있던 칼에는 아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죄인처벌 준비 중'이라는 심상치 않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아들이 쓰던 방에 방치돼 있던 TV에서도 '아무도 믿지 말자. 칼로 쪼니까 사람으로 보이냐'라는 글귀가 발견됐다. 벽과 방바닥에도 '이제 막나가는거지', '다 죽이자' 등 맥락을 알 수 없는 글들이 빼곡하게 발견됐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살해위협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씨 매제는 "휴대전화가 정지되니까 아버지 휴대전화 몰래 쓰고 뭘 사고 했다. 안된지 2,3년 정도 됐다. 자꾸 도박이나 하고 돈 빼서 쓰니까 컴퓨터도 없앴다. 차, 오토바이 사달라고 엄청 요구했다. 형편도 안되고 사고 낼까봐 들어주지 않았다. 대포통장을 주면 150만원 준다고 했는데 신용 불량자가 돼 돈 갚으라는 독촉을 엄청 받았다"고 밝혔다.

아들은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정신병력이 있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살해 위협을 계속 하자 가족은 한달 전 112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이 4월 5일 집을 찾아왔으나 아들이 "내가 아버지한테 욕한 것 밖에 없는데 왜 왔냐. 앞으로 잘 할거다"고 침착하게 답변하자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씨 매제는 "사방에 죽이겠다는 문구가 있는데 집 한번 살펴보지 않고 '위험한 행동을 할 때 신고하면 다시 출동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씨 아들이 심각한 조현병 환자라면 어떻게 경찰을 따돌릴 수 있었을까. 도주 과정 촬영된 CCTV 영상에서도 아들의 행동, 행색은 정상으로 보인다.

피해자 이씨 차량에서 발견한 아들 소지품 중에는 그가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여러 단서들이 있었다. 남양주시청여권과에서 아들 앞으로 보내온 등기 우편 스티커에 따르면 배달날짜는 4월 28일이었다. 아들이 남긴 메모에서는 여권, 구체적인 나라명, 돈, 차를 사달라는 구체적인 요구 사항 등이 여러번 적혀있었다. 아들 이씨는 범행을 저지르기 얼마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집안에서 발견된 이씨의 여권용 사진. 아들은 해외 여행을 꿈꾸며 사진 찍고 시청에 방문해 여권을 발급받았다. 아들 이씨가 도주 과정에서 옷을 구입한 매장도 우연히 들른 곳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메모에 브랜드와 구매 내역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메모와 범행 내용을 비교해본 변호사는 이씨 범행 동기가 조현병과 관련됐다고 보기 어려워 재판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아들 이씨가 곳곳에 남긴 메모들은 조현병 환자들의 망상이었을까, 조현병으로 위장한 범행 계획이었을까. 정신의학과 전문가들은 아들 이씨의 메모 곳곳에서 발견된 명령어는 환청을 받아적거나 답변한 내용, 그에 대한 피해 망상을 적은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게다가 증상이 최악의 단계에 이르렀을 것으로 진단됐다. 체계적인 망상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것. 아들 이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이유는 오로지 조현병 증상 때문일까. 아들의 범행 동기를 면밀히 분석했다. 권일용 교수는 미리 준비해둔 칼이 아니라 벽돌과 통조림 캔을 사용한 것으로 볼 때 계획범죄 보다 충동적이었을 것이라 봤다. 그는 "도구를 꺼내오거나 현장에 있는 물건들로 공격하게 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신을 집안에 그대로 두는 대신 사람들 눈에 띌 수 있는 화단으로 추락시킨 점, 증거인멸을 위해 사건 현장을 정리하지 않은 점은 범행을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에게 나타나는 비조직적 범죄 특징이라고 한다.

반면 이씨의 경우 충동범죄를 저지른 조현병 환자들 사례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도 있다. 권일용 교수는 "상당히 오랫동안 살인계획을 세웠다. 실행하기 전까지 수많은 결심을 곳곳에 기록해놨다"고 말했다. 박지선 교수 역시 "해외여행에 대한 망상이 구체화 되면서 범행 엿새 전 여권을 발급받았다는 건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데 막는 대상이 가족, 아버지라고 생각했을거다. 나의 제한하는 가족, 아버지를 제거하겠다는 식으로 사고가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범행 동기는 망상 자체가 아니라 현실 도피를 위해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었으며 범행 계획을 기록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미 오래전부터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왔다는 점이 사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박지선 교수는 "아버지는 본인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몇달이 지난 상태에서 피해자가 됐다. 집안 곳곳에서 칼들이 발견된다는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공포다"고 지적했다.

아들의 살인 예고 속에 수개월 전 노모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아버지는 2,3일에 한번씩 식료품을 사들고 아들을 찾았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사건에는 아들의 범행 동기보다 더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가 있다. 수개월간 아버지에게 대놓고 살해위협을 하는 아들을 왜 아무도 막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아들이 조현병과 상관없는 계획범죄를 했더라도 이상한 일이지만 조현병 환자가 맞다면 더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다. 왜 진작 입원이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집안에 방치됐을까, 한달전 신고 받은 경찰은 왜 그냥 돌아갔을까.

아들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할 때까진 평범하고 건강한 청년이었다. 가족이 그를 걱정하기 시작한건 제대하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부터였다. 제대 직후 이웃집 여자를 훔쳐보다 경찰에 체포되자 아버지는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받겠다고 하며 선처를 부탁했다. 1년 간 두군데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꾸준히 약을 복용하며 증상이 호전됐다는 아들. 2017년에는 집근처 식당에서 배달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배달 일을 그만뒀다는 아들 이씨. 그무렵 아들이 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다 경찰이 출동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추락을 대비해 1층에 매트리스를 까는 소동 후에야 병원에 이송된 아들은 불과 두달만에 퇴원했다. 병원 관계자는 "아버지가 퇴원시켰다. 처음엔 치료를 조금 더 해야하지 않나 했는데 퇴원시켜야 한다고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반면 가족들은 "부모한테 데리고 가라 했다. 조금 더 치료하고 싶은데 안되겠냐 했는데 인권문제 때문에 조현병 환자라도 붙잡아둘 수 없다. 가서 또 안 좋으면 다시 입원시키라 했다. 그래서 데리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정신과 관계자는 "본인들은 다 정상으로 생각한다. 이번에 개정된 정신보건복지법에서 환자 인권이 워낙 강하게 돼있다. 입원한지 한달만에 입원적합성 조사하게 돼있다. EMS(사설구급대)가 옛날에 수갑 채워 데려와도 됐는데 그런 게 다 부적합 판정이 나 퇴원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9년 퇴원한 이씨는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했다. 그때부터 집 주변에서는 여러가지 위험 신호가 감지됐다. 주민에 따르면 훔쳐온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이웃 여성을 욕하고 위협했다. 사건 한 달 전 피해자 이씨는 아들의 위협을 이웃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4월 1일 아들 약을 타러 갔던 정신과에서는 "약을 먹여보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조언했다. 며칠 후 상황이 악화되자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씨 집에 경찰보다 먼저 도착한 사설구급대원은 이씨 증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봤다고 한다. 당시 출동한 사설구급대원은 "경찰이 보통 오면 '병원 가자' 한다. 근데 여기는 그냥 와서 환자한테 병원 갈거냐 안 갈거냐 물어보고 안 간다고 하니까 우리도 어떻게 할 수 없다 하더라. 보호자 입장에서는 경찰들이 오나마냐 아니냐"고 밝혔다. 경기북부경찰청 112관리팀장은 "현장에서 아버지 아들 간 폭행이나 협박에 대해 외적으로 관찰했을 때 보이지 않았다"며 "응급입원은 위험성 뿐 아니라 급박성 요건이 있어야 한다. 급박성 요건에서 가장 큰게 보호자가 없어야 한다. 보호자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상황. 보호자가 있는데 응급입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역 내 정신 질환자들을 발굴하고 관리하는 일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담당하게 돼있다. 지자체 주무부서인 보건소 측은 "아들 이씨는 가족이나 지인이 관리 등록 신청을 하지 않아 관리 대상이 아니었으며 환자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어떤 관리나 서비스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아버지 대신 정신질환자 복지혜택을 지자체에 문의한 적 있다는 친척들은 모든 절차가 본인 동의에서 막혔다며 허탈해 했다. 친척들은 "서류 작성을 해가지고 갔는데 본인이 가야 한다고 하더라. 서류만 작성하고 넘겨주고 왔는데 나중에는 얘가 서류를 찢었다 하더라",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다. 더 어떤 통제를 할 수 없는 입장이 되니까 포기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집과 차에 남긴 아들 이씨의 메모가 발견된 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친척들이었다. 살해위협으로 이사 간 친척도 있었다.

만약 재판에서 이씨가 심신미약을 인정 받는다면 예상 형량은 10년. 39살이면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그를 누가 품어줄 수 있을까.(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뉴스엔 이민지 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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