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보다 더 예측 어려운 사람 마음..그렇기에 흥미로운 인간관계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⑭]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2021. 6. 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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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한다는 착각

[경향신문]

교실 친구 사이 관계도를 그려보면
‘호감 화살표’ 70~80%는 일방통행
다른 사람의 의도에 대한 오해가
삶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틀기도

남이 내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속상해하기 이전에 ‘과연 나는 남의 마음을 올바로 알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본 사람은?

몇 해 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날씨 버텨내기(weathering the weather)’라는 카툰이 실린 적이 있다. 이 카툰은 변덕스럽고 알기 어려운 날씨 때문에 수만년 동안 불평해온 인류에게 기후를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세상을 상상한다. 농부들은 충분한 비를, 스키어들은 충분한 눈을, 그리고 바닷가에 놀러간 사람들은 넘치는 햇살을 마음껏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고비 사막 같은 곳은 곡식이 풍성하게 자라는 비옥한 땅으로 바뀔 것이며,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끝내주는 세상이 오게 된다…는 기쁨도 잠시, 소풍을 가기 위해 지금 당장 해가 필요한 사람은 정원 잔디를 살리기 위해 당장 비가 필요한 이웃과 갈등할 것이고, 날씨를 무기로 만들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테러리스트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이 카툰의 결론은 날씨를 제어할 능력이 있으나 없으나 날씨로 인한 불평은 끊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불평할 수밖에 없는 갑갑한 현실을 생각하면 친구를 찾아가 걱정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싶어진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날씨라는 고약한 녀석과는 달리, 나와 생각이 같고 마음이 통하는 편안한 ‘친구’라는 존재!

(그림1) 사회심리학자 모레노가 만든 초등학생의 친구 관계 연결망.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친구라는 개념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뉴에이스 국어사전에는 ‘친구’를 ‘오랫동안 가깝게 사귀어온 사람’이라고 하고,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friend’를 ‘a person with whom one has a bond of mutual affection(서로에 대한 정감으로 이어진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의 친구관계에서 사전적인 정의에 맞게 똑같은 거리감을 갖고 서로 정감을 주고받는지 관찰한 실험들이 있었다. 사회심리학자 모레노(Jacob Moreno·1889~1974)의 초등학생의 친구관계도(그림1)를 보자. 이 그림에서 친구관계선이 사실은 화살표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친구라고 할 때 다른 아이는 이 아이를 친구라고 하지 않았던 경우를 뜻한다. 이처럼 사람 사이엔 보통 20~30%만이 쌍방을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전적 정의(동일한 거리감·상호 정감)를 생각한다면,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불과 20~30%만이 진짜 친구라는 것이다. 자, “저 사람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할 것이다!”라는 우리들의 예상이 20~30%만 맞는 셈이므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불평의 대상은 날씨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 생각해보면 우리는 날씨보다는 사람에 대한 불평불만을 더 많이 갖고 있지 않은가? 그 까닭이 일부 여기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는 사실로 인해 반드시 우리에게 고난이나 어려움만이 닥치는 것은 아니다.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일들도 많은 것이고, 어떨 때는 우리 삶의 방향이 더 좋은 쪽으로 틀어지기도 한다.

(그림2) 연결망 연구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해 방에 그려놓았던 그림.
수학적 고민 담긴 연결망 그림을
축구 대진표로 오인한 친구 덕분에
미식축구 ‘랭킹 알고리즘’ 개발

젊은 학생으로서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도 제일 어려웠던 것이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대학원 졸업이라는 거대한 산이 나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쉬지 않고 다가오는 것에 압박을 느끼면서(그 압박감은 실로 대단히 커서 학생끼리는 ‘언제 졸업하시나요’란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전 세계의 불문율이다) 그 산이 내 발 앞에 오는 순간까지의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남달리 컸던 것도 같다. 먼저 지도교수님의 전문 분야인 마디와 선으로 이루어진 연결망이라는 수학적 구조에 대한 연구를 해보자는 결심을 한 다음에도 어떤 계(system)나 문제를 연결해야 할지 헤매던 중 자그마한 칠판을 사서 간단한 연결망(그림2)을 그린 뒤 자취방에 걸어놓았다. 하루 종일 쳐다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까봐 그랬다. 그러던 얼마 뒤, 함께 자취하던 룸메이트가 들어오더니 그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아, 풋볼(미식축구) 대진표다. 여기 네모들이 팀이고, 선이 경기네.”

그 당시 나의 생활은 학교에 가 있는 시간과 자취방에 돌아와 축구를 보는 시간으로 나뉘어 있었다(워낙에 많이 봐서 풋볼을 그냥 축구로 불렀다). 대학 축구 전통의 강호인 미시간대였기 때문에 남는 시간엔 축구만 보는 사람들이 곳곳에 즐비했는데, 나보다 먼저 유학 와 축구에 빠져 있던 룸메이트들에게 복잡한 규칙을 설명 들으며 비슷한 사람으로 변신해가는 것이 나의 평일 저녁, 그리고 주말의 일과였다. 미국 사람들은 가을·겨울에 토요일은 대학 축구, 일요일은 프로축구(NFL)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니, 축구에 빠져 있을 대로 빠져 있던 룸메이트는 그 그림을 보고 딱 그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던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인터넷, 세포 속 단백질 상호작용망(단백질 분자들은 다양하게 꼬이고 접힌 꽈배기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모양이 들어맞는 단백질들끼리 서로 붙고 엉키는 현상을 연결망으로 모델링하여 연구하기도 한다) 같은 ‘진지’하고 ‘큰’ 과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는지, ‘저런 걸 연구하면 좀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 사회연결망이나 통계물리학 원리에 기반한 매우 이론적이고 수학적인 연구로 대학원 시절을 보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더욱더 축구에 빠지게 되면서 결국에는 그때처럼 축구를 한번 분석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지하고 큰’ 과학은 연구하는 사람도 많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으니 쉬어갈 겸 특색 있는 것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축구처럼 취미와 일 사이를 오가는 재미 위주의 분야라고 해도 과학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제대로 풀어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먼저 축구에서 제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내가 연구자로서 갖고 있는 기술이나 도구로 다뤄볼 만한 문제인지를 따지는 과정이 있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한 결과(학교와 집에서 하는 일이 구별되지 않는 상황이므로 하루 종일) 당시 대학 축구에서 많이 논쟁이 되고 있던 ‘우승팀 결정하기’ 문제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게 논쟁이 되고 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국 대학 축구의 최상위 리그(당시엔 디비전 I-A, 지금은 FBS라고 부른다)에는 약 120개 대학이 있었는데 한 대학이 한 해 치를 수 있는 경기는 10경기 안팎이었으므로 리그 상대 가운데 10% 내외하고만 경기를 한 다음에 한 팀을 우승팀이라고 선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손흥민 선수가 뛰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같은 경우는 모든 팀과 경기를 하므로(게다가 두 번씩) 최다승팀을 우승자로 정하는 데 이견이 생기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 대학 축구에서는 한 팀이 10경기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시즌 전적이 10-0(10승 무패)에서 0-10까지 있을 수 있으므로 승점(승패 차이)은 10, 8, 6, …, -10까지 11개 값이 가능하며, 각 값을 한 ‘상자’로 생각했을 때 120개 학교가 10개 상자에 나눠져 들어가게 되니 평균적으로는 한 상자에 12개 학교가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제일 높은 승점을 가진 학교가 둘 이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할 수밖에 없고, 최종 승점이 더 낮더라도 ‘이건 너희가 스케줄 운이 따라줘서 그런 거고, 우리랑 붙으면 우리한테 져!’라고 할 때 그게 틀렸다고 할 뾰족한 방법이 없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 경기를 하지 않아도 두 팀 사이의 우위를 정할 수 있는 방법을 연결망 과학의 힘을 빌려 따져보기로 했다.

(그림3) 실제로 경기를 하는 대학 사이를 선으로 연결하여 만든 연결망.

먼저, 실제 경기를 치르는 대학 사이를 선으로 연결하여 경기 스케줄 전체를 연결망으로 표시할 수 있다(그림3). 그러고서 ‘M’, ‘O’ 대학 사이에 승패가 결정되면 연결선은 이긴 팀에서 진 팀으로 가는 화살표로 표시되는데, 이 화살표를 따라가다보면 직접 경기를 하지 않는 ‘M’과 ‘P’ 대학 사이에도 다른 팀을 거쳐 도착하는 길이 생기게 된다(그림4). “M이 O에 이겼고 O가 P에 이겼으니 M이 P를 이긴 꼴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술자리에서 나올 법한 논리에 기반한 알고리즘을 만들면서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모든 과학의 진정한 테스트는 실전 예측에 있는 법, 그해 1·2위 사이에서 벌어지는 챔피언전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1위로 텍사스대, 2위로 남가주대를 예측하였으나 우리 같은 세상 물정 모르는(?) 물리학자들보다 훨씬 더 스포츠를 ‘잘 안다’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남가주대 승리를 예측하고 있었으므로 재미로 시작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상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림4) 연결망 과학을 이용한 스포츠 랭킹 시스템의 기본 아이디어. M대학이 O대학에, O대학이 P대학에 실제로 이기면(실선) M대학은 P대학에 간접으로 승점을 따게 된다(점선).
내 개인 연구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채용 인터뷰마다 관련 질문 쏟아져
직장 찾고 인생을 바꾸는 계기 돼

그런데 2000년대 최고의 명경기로 꼽히는 그 시합에서 텍사스는 단 19초를 남기고 1점 차이로 역전하며 이기고 말았고, 이불 속에서 이 장면을 보던(미국 오대호 근방의 겨울은 춥디춥다) 나는 환호성을 몇 번이나 질렀는지 모르겠다. ‘베팅해서 돈 좀 벌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내기 같은 건 안 한다고 대답할 때 오히려 ‘자기 연구에 자신이 없는가보네?’라고 할까봐 걱정도 해야 했지만.

이때까지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흥미로 한 연구일 뿐,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는 취직 준비를 하며 당시 ‘뜨겁다’고 하는 네트워크 의학(network medicine)이나 계산사회과학(computational social science)을 들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직장인 카이스트를 포함하여 채용 인터뷰 때마다 ‘축구 랭킹 알고리즘 재미있던데, 어떻게 만든 건지 설명해달라’며 눈을 반짝이는 교수님들이 있었고, 뜻밖의 질문에 위의 무용담을 섞어가며 설명을 해야 했다. 결국 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것들이 몇 번이나 내가 직장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고, 결국 나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과가 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번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들은 요즘 과연 몇 번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재단한 뒤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는지? 그렇게 함으로써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건 아닌지?

▶박주용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네트워크과학·복잡계과학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데이나-파버 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시스템스 생물학을 연구하고,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와 예술의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제주도에 현무암 상징물 ‘팡도라네’를 공동 제작·설치했고, 대전시립미술관의 ‘어떻게 볼 것인가: 프로젝트 X’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창시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남는 시간에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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