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전환 하려면 5억 더 내세요"..판교 판박이 세종 임차인 분통

조성신 2021. 6. 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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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계약자 초기 확정분양가
월세 계약자 감정가
전국서 2018년 판교사태 재현
대출규제로 목돈 마련 힘들어
세종시 아름동 일대 모습 [사진 = 세종시]
최근 세종시에서 10년 공공임대아파트의 5년차 조기 분양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전환 비용을 두고 입주민과 건설사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분양전환 절차 과정에서 전세, 월세 등 거주형태에 따라 임차인 간의 분양전환 가격이 수억원씩 차이가 나는 등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3일 주택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세종시 민간 10년 공공임대 아파트인 'H아파트2·9단지'가 올 7~8월 분양 전환을 앞두고 '감정가격'이 공개되면서, 전·월세 세입자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시가 선정해준 2개 업체의 산술 평균 감정평가금액은 전용 59㎡ 5억원대, 84㎡ 6억8000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아파트 공급 당시 전용 59㎡ 1억9650만원, 84㎡ 2억6290만원대에서 분양전환 계약서를 작성한 전세 입주자들은 몇 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실현할 수 있게된 반면, 전세 방식 대신 월세를 택한 이들은 감정평가 금액으로 분양을 받아야하는 상황이다. 당장 5억~6억8000만원의 주택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2003년 처음 도입된 10년 공공임대아파트는 LH와 민간건설사가 주택도시기금 지원을 받아 공공택지에 건설한 임대주택이다. 세종시에는 2014년부터 본격 공급됐다. 이번에 문제제기에 나선 호려울마을 9단지와 새샘마을 2단지는 2016년 입주했다. 10년 공공임대주택이지만 5년차 합의 조기전환이 가능해 대다수 입주민들이 조기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당시 5년 후 확정분양가를 조건으로 계약한 입주민의 경우 59㎡ 기준 2억원 가량에 분양전환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H건설이 감정평가를 통해 제시한 금액은 전용 59㎡ 기준 5억원이 넘는다.

이들 아파트의 월세 입주자들은 3500만원에 50만원의 월세(59㎡ 기준)를 내고 살고 있다. 갑자기 수억원을 마련할 만큼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빚으로 분양전환가를 마련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투기지역인 세종은 집값의 40%(서민·실수요자는 50%)밖에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입주민들은 기존 5년 임대아파트와 동일한 금액 산정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건설사는 현재 시세를 반영한 감정평가가 기준이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단지는 총 2170가구로, 이 가운데 90가구가 월세 계약자들이다.

월세 입주자들은 "2014년 분양 당시에는 미분양으로 건설사에서는 전세보증금이 부족하면 먼저 월세 계약을 한 뒤 돈이 마련되면 전세 계약으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광고했다"면서 "하지만 이후 건설사에서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간에 해지 세대가 나온 아파트 물량에 대해서는 전세 계약에 대한 조건은 전혀 제시하지 않은 채 월세 계약만을 종용했다"며 "시행사만을 위한 폭리 장사를 하면서 임대아파트 계약자들에게는 공정성에 반하는 계약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H건설 관계자는 "분양 당시 확정분양가와 감정평가금액 기준에 대한 선택을 입주민들에게 제시했고, 입주민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 반박했다.

분양전환 앞둔 공공임대 곳곳서 논란

집값이 안 오른 데 없이 급등하면서 2018년 판교 공공임대 분양전환 갈등 사태 같은 일이 전국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내 집 마련을 꿈꾸고 공공임대에 입주한 뒤 그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던 사람이 크게 오른 분양전환가 때문에 포기하고 내몰리고 있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 주요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이고 대출규제가 강화되면서 빚을 내 분양전환가를 감당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하소연이 많다. 하지만 국토부는 법령에 근거한 분양전환가 산정인만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0년 공공임대의 분양전환가는 분양전환 시점의 시세를 반영한 감정평가액을 기초로 산정한다. 건설원가와 분양시점 감정가의 평균값으로 하는 5년 공공임대에 비해 집값 상승기엔 분양전환가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2018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서도 10년 공공임대아파트 분양전환 금액을 놓고 입주민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간 갈등이 불거진 바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판교 봇들마을 3단지' 전용 59㎡는 작년 7억원 내외에서 분양 전환가가 매겨졌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공공분양 아파트 '판교 봇들마을 3단지' 전용 59㎡의 분양가는 2억5000만원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3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임차인들은 분양 전환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LH와 정부를 상대로 집단 항의에 나섰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집값이 멈출 줄을 모르고 치솟는 바람에 분양가가 비싸졌다고 하더라도 '로또 분양'인 꼴이 됐기 때문이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를 보면 지난 4월 9일 기준 판교 봇들마을 3단지 전용 59㎡는 13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비슷한 시기에 분양전환된 다른 단지도 유사한 상황이다. 서울 강남구 자곡동 'LH강남아이파크'의 평균 감정금액은 각각 전용 59㎡ 7억4535만원, 74㎡ 8억5502만원, 84㎡ 9억6061만원이었다. 이 아파트 전용 84㎡의 지난 3월 실거래가는 17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6년 입주해 최근 조기 분양전환을 진행하고 있는 충남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 'LH천년나무7단지'도 분양가 심사에 반발하고 있다. 국토부 산하 감평사협회는 인근 LH 아파트 시세의 80~90% 수준인 3.3㎡당 1350만원으로 분양가를 산정했다. 문제는 이 금액이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일반 아파트보다 비쌌다는 것이다. 천안시의회 의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책정가가 시세의 80% 달해 공공임대주택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10년 공공임대와 같은 방식의 분양전환형 임대주택은 애초부터 분란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년 뒤 분양전환 시점에 가격이 오르던 하락하던 임차인과 사업자 어느 한 쪽은 불복할 수 밖에 없다"면서 "분양주택이면 처음부터 분양하고, 임대주택은 아예 임대만 하는 식으로 이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확정분양가' 전환 요청 내용증명 발송

H아파트 2단지와 9단지 등 세종시 공공임대아파트의 일부 입주민들은 H건설사를 대상으로 '확정분양가'로 전환을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10년 공공임대는 분양전환가격을 10년 경과 후 분양전환 시점의 거래 시세에 따른 감정평가금액 이하를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분양가 산정 철회 촉구 집회 모습 [사진 = 세종 H 아파트 입주민]
한 월세 입주민은 "분양 당시 전·월세 차별 없이 분양 시점에서 (최초)분양가로 분양전환 할 수 있다고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와 감정가로 분양한다고 하니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다"면서 "전세 형태 계약자는 분양가, 월세 세입지자는 감정가로 공급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단지에서 월세사는 사람들은 주변 집값이 치솟아 이사 갈 수도 없고 다른 분양을 받을 수도 없다"며 "어떻게든 분양을 받기 위해 열심히 살아 왔는데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

입주민과 건설사간 갈등은 최근 세종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며 시작됐다. 감정평가 금액이 5년전 건설사가 확정분양가로 제시했던 2억원에 비해 3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세종지역 아파트값이 지난해 44.93% 오르는 등 전국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감정평가액도 높게 산정된 것이다.

감정가를 바탕으로 분양가가 산정되더라도 여전히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집값을 우리가 올린 게 아니지 않냐"며 "주변보다 싸더라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내쫓기게 될 판"이라고 반박한다.

일부 입주민들의 이 같은 외침에도 건설사가 월세 입주자까지 분양가(최초)로 계약 체결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에 대해 세종시 관계자는 "최근 일부 입주민들로부터 계약 조건 개선 요구 민원이 들어오고 있지만, 감정평가 업체를 선정해 공정하게 감정가를 제시하도록 지원하는 역할 이상은 어렵다"며 "사업시행자가 입주민들과 협의해 계약을 진행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국토부 집계를 보면 10년 공공임대의 분양전환 물량은 전국적으로 12만 가구(2018년 12월 기준)에 달한다.

분환전환 임대아파트에서 계속해서 문제가 나오자 국토부도 자금이 부족한 경우 장기저리 대출을 주선하고, 분양전환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4년간(취약계층은 8년) 임대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2019년부턴 10년 공공임대 분양전환 주택 공급을 사실상 중단했다.

최근 여권에선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도 임차인에 우선 분양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두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을 분양전환할 경우 거주하고 있는 무주택 임차인에게 우선 분양하도록 하는 내용의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될 경우 다시 분양가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하려는 민간 사업자를 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robgu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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