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라벨 디자인-디자인 없는 디자인에 박수를

2021. 6. 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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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라벨 디자인은 이제 대세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브랜딩은 대체 어떻게 하나?

살다 보면 인간이란 쓰레기를 만들려고 태어났나 싶을 만큼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언제 어디서든 쓰레기를 만들고 그걸 이고 지고 사는 우리들. 쓰레기는 재앙이 되어 인류에게 되돌아온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는 요즘. 디자인에 힘을 빼야만 지구와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브랜딩을 하는 것이 업계 경향이자 숙명이자 트렌드다.

이미 그 선두에 서서 유명 인사가 된 것은 롯데칠성음료의 무라벨 생수 ‘아이시스8.0 에코’. ‘2020 굿 디자인 어워드’에서 우수 디자인(Good Design)으로 선정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은 이 패키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아름답게 빛났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안 한 게 아니다. 재활용의 용이성을 위해 라벨을 과감히 떼어 낸 디자인이지만,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니까.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소비자의 알 권리, 즉 꼼꼼하게 전달해야 하는 제품 정보는 어디에 넣어야 한단 말인가? 결국 묶음 패키지를 포장하는 비닐에 스티커로 제작해 붙이게 된다. 아직은 묶음 패키지에만 무라벨 디자인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향후 많은 브랜드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빙그레 ‘아카펠라 심플리’. 세련된 로고 처리가 돋보인다. 이마트24의 ‘하루이리터’ 무라벨 버전. 옐로 컬러를 상징색으로 활용했다, 코카콜라 ‘씨그램’ 라벨 프리 버전. 씨그램처럼 병의 실루엣과 로고가 각인된 경우 무라벨 디자인으로 활용하기 용이하다.

또 하나의 숙제는 라벨도 없는 투명한 병에 대체 어떻게 브랜딩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기존 상품들을 보면 일단 두 가지 경우로 모아진다. 하나는 병 자체에 양각으로 로고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아이시스든 칠성사이다든 병 자체에 올록볼록하게 로고를 입체적으로 새겨 넣었다. 또 하나는 병 뚜껑의 컬러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아이시스는 분홍색, 칠성사이다는 녹색, 대표적인 무라벨 상품인 이마트 ‘하루이리터’ 무라벨 생수는 노란색 컬러로 포인트를 줬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또 있다. 상징하는 색이 없는 상품인 경우엔? 그리고 색이란 것이 너무 한정적이라, 디자인 요소나 타이포그래피 효과 없이 그것만으로 브랜딩을 하는 건 한계가 명확하다. 이것 역시 큰 숙제다.

제로 웨이스트가 생활 신조가 된 21세기에 무라벨 디자인이 대세인 것은 당연하다. 이는 생존의 문제이므로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이다. 이마트24는 히트 상품인 ‘하루이리터2ℓ’ 번들에 우선적으로 무라벨을 적용한 후, 500㎖와 1ℓ 생수를 포함한 이마트24 PB생수를 무라벨로 전면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농심도 무라벨 ‘백산수’가 출시되고, 코카콜라도 ‘강원 평창수’를 무라벨로 선보였다. ‘제주 삼다수’ 역시 뒤를 잇는다.

생수에 이어 그 정신을 이어받은 곳은 각종 음료다. 빙그레는 ‘아카펠라 심플리’를 출시했고, 씨그램도 라벨 프리 버전을 출시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커피 최초의 무라벨 디자인 ‘아카페라 심플리’. 패키지에 블랙의 음료와 대비되는 커다란 로고를 양각으로 새겨 세련되고 미니멀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이전의 생수 디자인이 브랜딩을 위해 로고를 새겨 넣은 정도였다면 ‘아카펠라 심플리’는 로고를 사선으로 전면 배치, 과감한 구도로 디자인적 가치를 높였다.

향후 무라벨 디자인이 가야 할 방향은 양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타이포그래피를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과감한 방식은 신제품을 출시할 때, 플라스틱 용기의 실루엣을 가용할 수 있을 만큼 변형하는 ‘실루엣 디자인’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빙그레, 이마트, 코카콜라]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82호 (21.06.0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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