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사모님 사로잡은 '오전 11시 콘서트'

오수현 2021. 6. 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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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18년째 히트상품
띄어앉기에도 1천석 좌석 매진
스타 연주자가 직접 해설 인기
콘서트 보고 근처서 점심
새로운 클래식문화 자리잡아
매월 둘째주 목요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에는 `11시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모여든 5060세대 여성들이 눈에 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월 사진.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매월 둘째주 목요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평일 오전인데도 국내 최대 규모 클래식 공연장 객석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예술의전당 최고 히트상품인 '11시 콘서트'를 보러온 관객들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2500석에 이르는 전석이 매진돼 1~3층 객석이 꽉 찼고 한 자리 건너 앉기를 하는 요즘에도 1000여 석의 티켓이 매진된다. 지난 3~4월 공연 티켓을 인터넷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서 구매한 고객 인적사항을 살펴보면 85.3%가 여성이다. 60대가 27.9%로 가장 많고, 50대가 22.2%로 뒤를 잇는다. 30대(16.6%)와 40대(14.8%) 관객 비중도 적잖다.

11시 콘서트 주 관객층은 오전 문화생활이 가능한 여성이라는 얘기다. 5060세대 사모님들은 오랜 친구·지인끼리 삼삼오오 모인 경우가 많고, 3040세대 전업맘들은 같은 학교 또는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덕에 친해져 함께 음악회를 보러 온다고 한다.

2004년부터 11시 콘서트 단골 관객인 김갑주 씨(77)는 "기왕 친구들과 만나는 거 밥 먹고 차만 마시고 헤어지기보단 좋은 공연 한 편 같이 보는 게 훨씬 남는 게 많다"며 "한 달에 한 번 오전 공연을 보고 예술의전당 근처 맛집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마티네콘서트'의 효시 격인 11시 콘서트는 2004년 9월 시작했다. 마티네콘서트는 낮에 열리는 콘서트를 말한다. 마티네란 아침이란 뜻의 프랑스어 마탱(matin)에서 나온 말이다. 입담 좋은 스타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 직접 곡 해설을 하고, 연주도 펼쳐낸다. 그만큼 굉장히 높은 몰입감과 재미를 선사한다. 클래식 입문자들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일반 저녁 음악회에서 교향곡 한 곡을 연주하면 4악장을 전부 연주하지만 11시 콘서트에선 해설을 곁들여 대표적인 한두 악장만 연주한다.

예술의 전당 `11시 콘서트`에서 연주자가 곡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사진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상반기 모습. [사진 제공 = 예술의전당]
올해로 18년 차를 맞으면서 11시 콘서트만의 고유한 문화도 형성됐다. 공연 전후로 브런치를 하거나 맛집에서 점심을 하는 게 코스가 된 것이다. 일례로 오후 1시 공연이 끝나면 많은 여성 관객의 발걸음은 예당 내 레스토랑인 '모차르트502'로 향한다. 예당을 자주 찾는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선 파스타 맛집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점심부터 커피까지 한자리에서 해결한다. 공연 시작 1시간 전 예당 내 카페에서 만나 브런치를 한 뒤 공연을 보는 전업맘들도 있다. '브런치→공연→점심→커피'로 이어지는 11시 콘서트 문화가 예술의전당 인근 지역 주부들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말도 나온다. 11시 콘서트 문화에 빠진 관객들은 주변 지인을 끌어들이는 데도 적극적이다. 김갑주 씨는 "지인의 소개로 11시 콘서트를 처음 찾았다"며 "공연이 너무 좋아서 예술의전당 회원으로 가입했고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공연을 보길 여러 차례 했다. 내가 11시 콘서트를 소개한 지인만 스무 명은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음악가들과 공연장 스태프 입장에서 11시 콘서트는 상당히 부담되는 공연이다. 오케스트라 단원과 지휘자, 솔리스트들은 저녁 7시 반~8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마치고 오전에 휴식을 취한 뒤 오후부터 연습을 시작하는 패턴에 익숙해 있다.

특히 여성 연주자의 경우 오전 9시 시작하는 무대 리허설 시간에 맞추려면 오전 6시 미용실을 찾아 머리 손질을 해야 한다. 전날 저녁 음악회를 마치고 자정쯤 집에 들어간 극장 스태프들 입장에서도 오전 8시 출근은 매우 가혹한 일이다. 그래서 11시 콘서트를 처음 시작한 김용배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음악가와 직원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11시 콘서트인 마티네콘서트가 한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자, 다른 공연장에서도 오전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성남아트센터 마티네콘서트에는 2015년부터 클래식 마니아로 알려진 배우 김석훈이 해설자로 나서고 있다.

부평아트센터에선 아나운서 서현진이 사회자로 나서는 브런치 콘서트, 고양 아람누리극장에선 첼리스트 박유신이 해설을 맡는 마티네콘서트를 월 한 차례씩 열고 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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