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GS리테일, '속도'버리고 '방향'택했다
남혐 논란 의식한 '메시징 전략' 분석도
최근 유통업계 화제의 중심은 GS25의 남성 혐오(남혐) 논란이었습니다. GS25의 캠핑 이벤트 포스터에 그려진 집게 손가락 모양이 한 커뮤니티의 로고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죠. GS25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포스터를 삭제하고 대표 명의의 사과도 이어졌음에도 여론은 쉽게 잠잠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매운동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에게는 대형 악재입니다. GS리테일은 다음달 1일부로 GS홈쇼핑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습니다. 통합 후 5년 내 취급액 25조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내놨습니다. 자체 이커머스 플랫폼 '마켓포'의 출격도 앞두고 있죠. 통합 GS리테일이 소비자들의 긍정적 관심을 끌고,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선보여야 할 시점에 큰 위기가 찾아온 겁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 침묵했던 GS리테일이 최근 조직 개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기존 GS25·GS더프레시·랄라블라 등 오프라인 점포를 총괄하던 '플랫폼 비즈니스 유닛(BU)'에 2개의 BU가 더해졌습니다. 이커머스를 담당하는 '디지털커머스 BU', 홈쇼핑을 담당하는 '홈쇼핑 BU'가 신설됐습니다. 통합 시너지를 이루기 위한 조직 개편이라는 설명입니다.
GS리테일의 이번 조직 개편은 '신속성'보다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선택으로 보입니다. BU는 사업을 여러 분야로 나누고, 특정 시장 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각 BU 운영은 전문경영인이 맡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본부가 여러 사업을 진행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새로 출범할 GS리테일은 BU의 전문 분야에 따라 3개 계열사가 모인 '그룹사'처럼 운영됩니다.
보통 BU는 조직이 비대해져 특정 사업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질 때 도입됩니다. 기업 내 권력이 한 곳에 집중돼 '비선 조직'이 떠오르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GS리테일은 통합 후에도 각 사업 부문을 통제하기보다 각자의 전문성을 키우도록 유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 BU가 저마다의 목표를 따라 움직이고 때로는 유기적으로 협업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셈이죠.
다만 BU 체제는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최상위 경영진 아래 BU장이라는 중간 관리자가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큰 틀에서 의사결정에 신중함을 보탤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옥상옥' 구조를 만들어 신속한 대응 역량을 저해합니다.
이커머스 시장은 빠르게 변화합니다. 후발 주자인 GS리테일은 시장 변화에 더욱 빠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GS리테일이 통합 목표인 2025년 취급액 25조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5년 동안 2.5배나 성장해야 합니다. 매년 10%씩 취급액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죠. 그럼에도 GS리테일은 속도보다 전문성에 중점을 두고 조직을 개편했습니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커머스 시장을 공략해 보겠다는 포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편의점 사업부입니다. GS리테일은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편의점 사업부를 플랫폼 BU 내 별도 조직으로 분리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GS리테일의 오프라인 매장은 총 1만5132개입니다. GS25가 1만4688개, GS더프레시가 320개, 랄라블라가 124개죠. 편의점을 별도로 독립시킨다면 플랫폼 BU 직할 매장은 464개만 남게 됩니다. BU의 영향력을 낮추면서까지 편의점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전략입니다.
이는 통합 후 이커머스 전략 내 GS25의 역할을 고려해 내려진 결정으로 보입니다. 편의점은 최근 이커머스 배송을 위한 근거리 물류 거점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점포가 퍼져 있어 촘촘한 물류망이 구축돼 있어서입니다.
이커머스 시장 후발 주자인 GS리테일은 배송 역량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GS25를 배송 기지로 활용해야 합니다. 실제로 GS리테일은 최근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의 지분을 인수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습니다. 부릉을 활용해 근거리 배송에 나서겠다는 구상입니다. 통합 후 편의점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서, 나름의 독자적 권한을 부여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부 분리라는 설명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남혐 논란이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사업부 분리라는 설명입니다. GS리테일은 편의점 사업부 분리를 조직 개편이 적용되는 7월 1일보다 한 달 먼저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남혐 논란을 불러온 포스터 관련 직원 및 담당 팀장을 징계했다고 알리기도 했습니다. 향후 편의점 사업의 변화를 주겠다는 GS리테일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GS리테일은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통합 이후의 사업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기존 사업의 방향이 크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이커머스 속도전보다는 각자의 특화 분야 내 경쟁력을 우선할 계획입니다. 시너지는 각 BU의 유기적 협업을 통해 창출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 과정에서 편의점에는 '특별 관리'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남혐 논란에 대한 GS리테일 나름의 답변으로 보입니다.
다만 GS리테일이 이번 위기를 조직 개편만으로 돌파하기는 어렵다는 예상이 많습니다. 논란에 대한 대응이 늦어지며 골든 타임이 흘러갔습니다. 조윤성 사장이 플랫폼 BU장 자리를 지킨 것에 대해 사실상 영전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습니다.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GS리테일은 이런 상황이 괴로울 겁니다.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예상하기 어려운 위기였고 성별 갈등이 논란의 중심에 있어 마땅한 대응책을 만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갑니다. GS리테일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뒤로 한 채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습니다. GS리테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궁금해집니다.
이현석 (tryo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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