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낳은 역차별.. 15억 집, 노원은 대출 못받고 천안은 6억

정순우 기자 2021. 5. 3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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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 꿈에그린’ 전용면적 93㎡(공급 39평형)가 지난 20일 17억원에 거래됐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래미안위브’ 전용 121㎡(45평형)의 4월 실거래가(15억7000만원)보다 1억원 이상 비싸다. 그런데 집값이 더 싼 답십리 래미안위브 매수자는 주택담보대출을 한 푼도 못 받고, 일산 킨텍스 꿈에그린은 7억원 가까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서울은 15억원 이상 주택의 대출이 전면 금지되는 ‘투기과열지구’인 반면 일산은 이런 규제가 없는 ‘조정대상지역’이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정부는 2019년 ’12·16 대책'을 통해 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을 전면 금지했다. 이 규제 때문에 서울에서 집을 사려는 수요자는 경기도의 더 비싼 아파트를 사는 사람보다 강한 수위의 대출 규제를 받는 ‘역차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고가 주택을 겨냥해 대출을 옥죄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도권 외곽으로 매수 수요가 쏠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면서 집값 역전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규제지역 주택 가격대별 담보대출 가능 비율

◇15억 아파트… 천안은 6억 대출, 서울 노원은 ‘제로’

충남 천안시 서북구 ‘불당지웰더샵’ 전용 113㎡는 지난 3월 15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천안도 조정대상지역이어서 최대 6억45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반면 서울 노원구 중계동 ‘동진신안’(전용 135㎡)은 비슷한 실거래가(15억1500만원)에도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15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을 금지한 것은 고가 주택에 대한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2019년 말 당시 서울 마포·성동구의 30평형대 신축 아파트 가격이 15억원 안팎이었다. 서울 강남 3구나 과천, 성남 분당구 등 투기과열지구를 제외한 지역의 집값은 15억원을 한참 밑돌았다. 투기과열지구에서 대출을 묶으면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 인기 지역의 집값도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는 게 정부 계산이었다.

하지만 ’15억원 대출 규제'가 실행되자 중저가 아파트 값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10억원 안팎이던 아파트 값이 ‘대출 금지선’인 15억원 턱밑까지 올랐고, 중산층이 ‘은행의 힘’을 빌려 넘볼 수 있었던 5~6억원대 아파트는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9억원으로 수렴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가 제시한 대출 제한 기준이 저렴한 집값을 자석처럼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하위 20%의 집값은 41% 급등했다. 같은 기간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등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중저가 아파트가 몰린 지역의 집값 상승률은 고가 주택이 많은 강남 3구보다 월등히 높았다.

◇전문가들 “핀셋 규제,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특정 지역과 특정 가격대 주택을 겨냥해 규제를 집중한 정부의 정책 기조를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소득에 따라 재량껏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투기를 막기 위해 마련한 규제가 현금 부자나 갭 투자자만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무주택·서민 실수요자를 위한 대출 규제 완화책을 7월 1일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15억원 규제는 건드리지 않고 청년·신혼부부의 LTV(담보대출비율)를 10~20%포인트 높여주는 게 전부다. 이마저도 적용 대상 주택 가격이 9억원(투기과열지구), 대출 총액은 4억원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기존 한도(3억6000만원)보다 4000만원 늘어나는 수준이다. 민주당 부동산 특위 관계자는 “협의 과정에서 15억원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집값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의견에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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